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로딩중입니다.
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2015년 3월 1일 미국의 우주 비행사 테리 버츠(Terry W. Virts)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유영을 마치고 찍은 셀카

 출저 : NASA 이미지 아카이브


<변두리 사진 보고서> 제8호
*변두리 사진 보고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진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다루는 연재물입니다.



자화상에서 증거로 변화하는 셀프 카메라

‘내가, 그 때, 거기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진


글 이기원

포토닷 2015년 9월호


사진이 발명된 이후 가장 많이 찍힌 사진은 무엇일까? 물론 명확하게 답을 구할 수 있는 물음은 아니지만, 아마 그 영예(?)는 당연하게도 셀프 카메라(Selfie, 아래 셀카)’가 차지할 것이다. 카메라가 내장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것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한두 번은 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기에 이를 자신있게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사진 기반의 SNS 플랫폼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 셀카 관련 해시태그가 붙은 사진들의 숫자만 보더라도 앞선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2015 8 10일 오후) 인스타그램에서‘#selfie’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사진이 307,749,903, ‘#me’ 해시태그는 399,488,714장이다. 더군다나 이들 사진은 하루에 40만장 이상씩 불어나고 있다. 한국어 사용자들로 범위를 줄인 ‘#셀카 해시태그 역시 현재 2천만 장의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고, 하루에 3만 장 가량의 사진이 끊임없이 추가되고 있다. 물론 위 태그가 달리지 않은 사진, 온라인에 올라가지 않은 사진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셀카는 그동안 가장 많이 생산된 사진인 동시에, 앞으로도 가장 오래 지속될 사진 형식이 될 것이다.

 

장난이나 놀이로 시작된 셀프 카메라

 

최초의 디지털 사진 셀카라 할 수 있는 캠사진은 컴퓨터에 연결된 웹캠으로 찍는 사진이었다. 이는 10~20대 사이에서만 유행하였기 때문에 그저 카메라를 가지고 하는 놀이나 장난처럼 여겨졌다. 이후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셀카를 찍는 연령대는 좀더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젊은 층에서만 유행하는 하위 문화에 가까웠다. 또한 이때만 해도 디지털 카메라의 틸트 액정은 흔한 것이 아니어서, 액정을 통해 찍힐 모습을 미리 볼 수 없었고, 그 결과물은 촬영 후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촬영자(피사체)가 예상 못한 여러가지 변수가 사진에 개입하면서 의도치 않게 우스꽝스런 사진이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의 화가들이 그랬듯 자신의 모습을 직접 기록하는 자화상은 그 자체로써 매력을 가졌기 때문에 셀카는 그저 어떤 놀이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현상이자 새로운 사진 형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카메라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틸트 액정이나, 전면 액정 등을 도입하고 색감을 조절하면서 셀카를 더 편리하고 더 잘 나오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이는 더 나은 셀카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구입하는 소비자층을 형성시켰고, 급기야 셀카용도로 쓰기엔 다소 크기와 모양새가 부담스러운 DSLR에도 180도 회전되는 액정을 장착하게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잘 나온 셀카의 기준은 본인(피사체)의 얼굴이 얼마나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대로 나왔는가에만 있었다. , 스마트폰 등장 이전의 셀카는 주로 자화상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셀카를 찍는 행위 역시 나르시즘이나 자랑과 같은 의미로만 해석되었다.

 

셀카의 혁명,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

 

이처럼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서만 셀카를 찍던 시기에서 스마트폰, 좀더 정확하게는 터치스크린과 영상통화용 전면 카메라가 장착된 터치폰의 등장은 셀카를 더욱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굳이 따로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언제나 소지하고 다니는 핸드폰을 통해 마치 거울을 보듯 수시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더욱 확산되었고, 나아가 셀카를 컴퓨터(포토샵)를 통하지 않고서도 사진관련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손쉽게 보정할 수 있게 되면서 셀카의 혁명을 이루었다.

사실 스마트폰의 등장을 셀카의 혁명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찍고 보정까지 마친 사진을 바로 온라인에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이전까지는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진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이를 언제든지 전송할 수 있게 하고 GPS를 통해 정확한 위치정보까지 함께 기록하거나 사용자의 자발적인 장소태그를 통해 그저 자화상으로만 작동했던 셀카는 시간성과 장소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가령 어떤 공연장이나, 행사에 가지 않더라도 그 시간에 맞춰 인스타그램에서 관련 태그를 검색해보면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공유된 사진은 그것의 오래된 신념과도 같은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롤랑 바르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를 보여주는 지표로도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런 맥락에서 동시대의 셀카는 자화상의 기능도 수행하는 한편 전통적으로 사진의 본질적 기능으로 여겨져 온 기록하고 재현하는 사진의 최전선에 놓인다. 물론 사진에 좀 더 많고 정확한 정보들이 기록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자화상에서 증거로

 

장소성과 시간성을 획득한 셀카의 진화는 셀카봉의 선풍적 인기와도 연결될 수 있다. 셀카봉(Selfie Stick)은 사실 그저 팔 길이보다 좀더 먼 곳에서 셀카를 찍을 수 있게 돕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러한 기능과 촬영자의 얼굴이 좀 더 아름답게 나오는 것은 사실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셀카봉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넓은 화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구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사진(그것도 자신이 등장하는)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셀카봉의 핵심적 기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넓어진 화각이 의미하는 바는 그저 낯선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넓어진 화각은 이전까지 카메라를 손에 쥐고 찍는 셀카에서는 포함될 수 없었던 좀 더 많은 배경과 인물을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게 하면서 사진에서 보여지는 장소성을 강화하고 더 많은 정보들을 사진의 표면으로 끌어들인다. 셀카봉이 유독 관광지의 1인 여행자들에게 각광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어떤 놀이나 하위문화로만 여겨졌던 셀카는 장소성과 시간성을 획득하여 이른바 인증샷이나 기념사진으로서의 기능까지 갖게 되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를 증거하는 셀카의 대표적 사례로는 투표 인증샷이나, 어떤 유명인과 마주했을 때 사인을 받는 대신 함께 찍는 사진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런 맥락에서 이 사진들을 셀카라는 형식만을 보고 나르시즘이나 나를 과시하려는 욕망과 연결짓기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는 형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내용이 갖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셀카는 잘못이 없다

 

셀카의 의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찍은 사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곳에 있음을 지칭하는 사진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오늘날의 셀카는 그저 특정 계층의 놀이가 아닌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인터넷과 뉴스를 통해 알려지는 각종 셀카 논란에는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이 작용했음에는 틀림없다. 이처럼 셀카 현상이 갖는 의미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셀카라는 사진 형식의 문제나 스마트폰 시대의 부작용으로 곧장 연결짓는 것은 온당치 않다.

공교롭게도 셀카에 대한 못마땅한 인식은 셀카봉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셀카봉이 유행하는 원인을 그저 타인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다는 사회성 결여나 젊은 층에서 만연한 개인주의 때문이라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셀카에 대한 부정적 전제만을 기반으로 그 해석을 이어간 것이기에 정당한 비판일 수 없다. 과거에는 그저 흔들리지 않고 인물들이 눈을 감지 않은 사진이기만 해도 잘 나온 사진일 수 있었지만, 사진이라는 도구 자체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앞서 언급한 기준은 더 이상 잘 나온 사진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이젠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이 제일 잘 나온 사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용자들이 부적절한 장소와 상황에서 셀카봉을 치켜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까지 비판받을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어디까지나 셀카봉은 단지 더 나은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로 나쁜 물건이 될 순 없는 것처럼, 셀카 역시 그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어떤 상황을 기록하는 사진일 뿐이다.

물론 이 글의 목적이 셀카나 셀카봉 현상의 긍정적인 측면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셀카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게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서의 셀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고민이다. 다른 모든 사진이 그렇듯, 어떤 사진에 대한 윤리적인 가치판단은 철저히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셀카에 대해서만큼은 그 형식 자체에서부터 못마땅한 시선이 전제돼 있다. 이는 셀카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졌을 때, 새로운 사진의 형식이기보다는 어떤 놀이나 장난에서 출발했다는 선입견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어떤 장례식을 기록한 보도사진이나 다큐멘터리에 대해 촬영자를 비난하진 않지만 만약 그곳에서 누군가가 찍은 셀카가 공개된다면 상황은 급격히 달라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또한 셀카가 아닌 엄숙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모습이 의도치 않게 다른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동안 셀카가 받아온 비난이 모두 정당하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결국 좋은 셀카 나쁜 셀카는 없다.그저 부적절한 상황에 셀카를 찍고 공유한 어떤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각주

 (1) 셀프 카메라를 이르는 영어식 표현, 이는 이른바 스마트폰 혁명이 정점에 다다랐던 2013년 말 영국의 옥스포드 출판사의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6. 9. 26. 16:38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