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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사진 보고서> 제4호
*변두리 사진 보고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진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다루는 연재물입니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다
사진과 카메라를 둘러싼 착각에 관하여 1

글 이기원
포토닷 2015년 5월호


각자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사진을 생산한다는 측면에서, 카메라는 분명 매력적인 기계다. 이같은 이유와 더불어 필름카메라는 필름카메라대로 아날로그의 감성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디지털카메라 역시 최첨단 광학기술의 집약체라는 측면에서 ‘기계’를 좋아하는남성들에게 매력적인 물건으로 자리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난 2006년을 전후로 보급형 DSLR 기종이 대중화(1)되면서 한 동안 DSLR 카메라가 남녀노소를 불문한 하나의 패션 아이템처럼 작용했다. 덕분에 목이나 어깨에 SLR카메라 하나는 걸어줘야 ‘있어 보이는’ 기묘한 유행이 길거리와 관광지를 뒤덮었다. 또한 각 가정의 장롱 속에 유물처럼 처박혀 있던 필름카메라들이 대거 ‘발굴’되었고, ‘출사’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쓰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진 붐’과 더불어 사진동호회 수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록 이러한 선풍적 인기는 2010년대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한풀 꺾이긴 했 지만, 여전히 사진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취미생활의 한 분야로 작동하고 있다. 

‘사진인구 천만 시대’의 허상 
2001년 탄생한 디지털 사진 동호회인 ‘SLR 클럽’의 경우, 2014년 기준 하루 방문자 수가 80만명에 육박하는(2)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 커뮤니티로 성장했으며, 포털사이트 네이버 의 ‘포토갤러리’ 역시 2013년 기준 총 670만장(3) 이상의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다. 이외에도 온·오프라인의수많은 사진 커뮤니티들을 고려하면, (확인된 자료는 없지만) 한국에서 사진을 즐기고 있는 이른바 ‘사진인구’가 최대 1,000만명이라는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정작 천만 명에 육박하는 이들이 생산하는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그 어마어마한 숫자만큼다양하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각종 사진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그곳에 올라오는 대다수의 사진은 주로 ‘피사체의 힘’에 의지하는 그림 같은 풍경과 화보 스타일의 인물사진에 편중돼 있다. 더욱이 이들 사진은 한결같이 칼날로 베어낸 듯한 ‘쨍한’ 선예도와 다소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강렬한 색감으로 보정돼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활동해온 이용자라도 사진에서 아이디나 닉네임을 지우면, 누구의 사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다고 순전히 취미로 사진을 즐기는 이들에 게 당장 ‘사진의 다양성’을 요구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왜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좌 : SLR클럽의 ‘포럼 이슈 게시판’ 캡처. 게시글 제목 맨 앞에 붙는 기호들은 카메라 기종과 렌즈를 뜻한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우 : 네이버 포토갤러리 ‘기종별 갤러리’ 캡처. 이곳에서는 카메라 기종을 기준으로 정렬된 사진을 볼 수 있으며 모델명을 입력해 같은 기종으로 찍힌 사진을 찾아볼 수도 있다. 



보급형 카메라를 과시하는 ‘장비병 환자’의 존재 
사진 동호인들이 사진을 생산하고, 서로의 사진을 소비하는 현상을 살펴봤을 때,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이들 사진의 주체가 (사진을 찍는) 작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카메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사진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카메라’라는 도구를 다루는 인간이지만, 사진 동호인들에게 카메라란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 라기 보다는 자신의 실력을 대변해주는 지표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기형적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이들이 목표로 하는 소위 ‘잘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 사진으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그럴듯하게 기존의 이미지-회화 나 광고,잡지 화보와 같은-를 잘 모방했는지가 그 척도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잘 찍은 사진’이라고 불리는 사진들은 사실 어디선가 보았던 정형화된 이미지에 뿌리를 둔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사진을 찍는 목적이 어떤 의미상의 표현이 아닌, 표면의 매끈함과 화려함에 머물게 된다.그리고 이러한 매끈함을 좇다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카메라와 렌즈, 조명을 탓하게 되고, 결국 ‘잘 찍은 사진’은 더 좋은 렌즈와 카메라가만들어준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는 고가의 전문가급 장비를 가진 사람에게는 카메라가 마치 자신이 전문가가 된 것 같은 우월감을 갖게 하는한편, 보급형 기종 이용자에게도 ‘나도 전문가급 장비를 사야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겠구나’ 하는 편견을 주입시킨다.
간혹 거의 전문가급 기종을 겪어본 사용자가 이를 모두 처분하고 보급형 기종으로 해탈하듯 회귀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중 어떤 경우는 ‘저렴한 기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기술적으로) 잘 찍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우월감의 과시(4)로 작동한다. 이들은 소위 ‘장비병’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이 카메라에 갖는 근본적인 인식만을 놓고 보면,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어떤식으로든 장비가 자신의 사진에 결정적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양자 모두 ‘장비병’을 앓고 있다. 

취미의 서열·계급화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비단 사용자들만의 몫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사진 커뮤니티 역시 구조적으로 이러 한 풍토를 조장하고 있으며, 그보다 더뒤에는 이 모든 현상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카메라 제조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요 사진 커뮤니티의 문제를 짚어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식의 논란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소통의 구조가 사진 자체의 성향이나 특성보다는 각 카메라 제조사를 기준으로만들어져 사실상 사진 커뮤니티라기보다는 ‘카메라 브랜드별 사용자 모임’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카메라 커뮤니티’가 아닌 ‘사진 커뮤니티’라 말한다. 
앞서 언급했던 가장 큰 규모의 온라인 사진 커뮤니티인 SLR클럽의 경우, 크게 ‘커뮤니티’와 ‘포럼’으로 나눠지는데,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자유게시판형태로 자리잡은 ‘커뮤니티’ 섹션과 달리 ‘포럼’은 각 제조사별 게시판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또한 각 제조사 포럼 안에서도 각각의 카메라 기종별로 소모임, 이른바 ‘00당’의 형태로 세분화된 구분 짓기가 작동한다. 이러한 구분 짓기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은 커뮤니티 측에서특별히 이를 강요하거나 규칙으로못박은 것이 아닌데도,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릴 때 어떤 방식으로든 (닉네임, 게시글 제목, 캡션 등) 이것이 어떤 카메라와 렌즈로 찍은 것인지 명시한다.덕분에 자연스레 ‘포럼’ 내에서 한 이용자의 정체성은 자신이 어떤 사진을 찍는가보다는 어떤 카메라를 쓰는가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사진게시판 위주로 꾸려져 상대적으로 커뮤니티적 요소가 덜한 네이버 포토갤러리의 경우에도, 이용자가 사진을 올리면 사진파일의 exif 데이터를 활용해 자동으로 촬영기종이 무엇인지 표기해주고, 나아가 각 카메라 기종별로 사진을 분류할 수있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각각의 카메라들을 서열화, 계급화시키는 동시에 각각의카메라가 갖는 지위를 사용자에게 부여한다. 덕분에 이용자들은 마치 온라인 게임 속 캐릭터(아바타) 의 ‘레벨’이나 그것이 가진 ‘아이템’과 같은 기준으로자신의 카메라를 대하게 된다. 더 비싼 카메라를 쓸수록 더 높은 수준(레벨)의 사진가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서열화와 계급화, 즉 ‘구분 짓기’는 카메라 제조사뿐만 아니라 자동차, 의류, 전자제품 등 거의 모든 상품의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카메라 제조사들은 유명 사진가나 전문가를 내세운 광고를 통해 ‘이 카메라를 쓰면 이들 전문가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환상을 소비자에게 주입해왔다. 최근 몇년 사이에 이러한 광고의 흐름은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여전히 이들은 그들의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유명작가나 연예인, 타 분야 전문가 등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이들 유명인사들이 자사의 카메라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린다. 또한 고급기종의 경우 카메라와 함께 판매되는 카메라 스트랩에 카메라 기종을 새겨두고, 고급형 렌즈에는 겉면 색을 다르게 하거나 선명한 ‘빨간 줄’을 넣는다.이를 통해 멀리서 카메라를 보더라도 한눈에 어떤 기종인지 인식할 수 있게 하면서 장비의 서열화에 일조한다.



카메라 제조사 홈페이지에는 유명인사/전문가들의 인터뷰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사진과 카메라의 관계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어떤 사진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어떤 카메라로 찍혔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진을잘 찍고 못 찍는 것, 어떤 사진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카메라의 종류, 가격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가치평가의요소를 걷어내고, 순수하게 취미생활의 목적에서 보더라도 더 좋은 카메라가 그렇지 않은 카메라보다 취미로서의 사진을 더 즐 길 수 있게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목적의사진이건 근본적으로 사진은 결국 ‘기록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왜 찍었는지가 관건이지 이를 ‘무엇으로’ 찍었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기다른 카메라로 같은 피사체를 찍었다고 해서 그 사진이 갖는 의미나 표현, 맥락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진과카메라의 관계는 마치 회화에서 붓이 갖는 의미이기보다 글과 펜의 관계에 가깝다.더 좋은 붓은 더 섬세하고 정확한 표현을 담보하지만, 값비싼 펜을 가졌다고 해서 좋은 글이 써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른바 ‘동호인 사진’의 정체성이 그것을 찍은 사람의 의도나 표현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카메라에 머무르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잘 찍은사진’, 즉 좋은 사진의 기준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부수적으로는 사진의 다양성 부족과 서로의 사진에 대한 평가, 비판을 꺼리는 정서적분위기 역시 작용한다. 각자의 사진에 대한 주례사스러운 칭찬 외의 주관적인 이야기-비평, 논쟁-가 오가는 것을 꺼리다 보니 이용자들 간의 소통은 자연스레 객관적인 영역, 카메라나 렌즈 등의 장비나 사진을 찍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호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메인사진 캡션 지난 4월19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P&I)의 전시장 풍경 


각주
  1. 2009 3 캐논의 보급형 DSLR EOS 450D 출시 11개월 만에 국내 판매 10 대를 돌파했다. 20032004 캐논과 니콘이 보급형 300D D70 비교적 저렴한 가격(100만원대) 내놓으면서 DSLR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급 카메라의 보급형 출시는 인터넷 미니홈피블로그  등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사진 찍는’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창간 15돌을 맞아 가나다순으로 뽑아본 ‘15 변화 상징 열쇳말들‘, 한겨레21 753 2009 327일자. 
  2. 매일 이 커뮤니티를 방문하는 회원 수만 따져도 80만 명이 넘는다. 월 페이지뷰는 평균 6억이 넘는다. SLR클럽은 지난 2000년 설립 이후 디지털, SLR카메라와 사진 분야에서 14년째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 전체 사이트 순위를 따져 봐도 SLR클럽은 70위권 수준. 대한민국 TOP100 안에 들만큼 수많은 방문자가 이곳을 찾는다. - “월 6억뷰 SLR클럽, 커뮤니티 플랫폼 끝판왕 만든다”, 「전자신문」, 2014년 9월 12일자
  3. 포토갤러리는 사진 동호인와 아마추어 작가들이 촬영한 사진을 공유하는 사진 커뮤니티다. 이용자가 직접 찍은 사진은 물론 전문 사진작가의 작품 등 약 670만여점의 인물·풍경·동물 사진이 테마별로 제공되고 있다. - “네이버 포토갤러리, 모바일 웹 서비스 개시”, 「매일경제」, 2013년 11월 8일자
  4. 그래서 가끔 좀 약간 허세 간지 같은 사람들은 이런 경우도 있어요. 일단 400D를 사요. 저는 이제 기기에 대한 욕심 버리겠습니다. 이러면서 5D, 1D 이런 거 다 팔고 400D를 사서 막 찍어요. 너무 잘 찍는 거야. 사람들이 막 세상에 400D로 이렇게 찍으시다니 정말 능력자다. 막 이러는 거죠. 그러니까 싼 기기로 잘 찍으면 막 영웅이 되는 거예요.’ - 홍남희, ‘카메라를 든 사람들 -DSLR 대중화의 문화적 의미 탐구-‘,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97쪽, 사진동호인/아마추어 모델 박설민의 인터뷰


2016. 9. 26. 16:33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