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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특별한 기술이 아닌, 일상의 도구로

동시대 사진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하여

 

실천문학 2015년 가을호

특집2|문화생산의 구조변동과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


글 이기원

 

*본 원고는 월간 포토닷’ 2015년 2월호부터 연재 중인 변두리 사진 보고서를 바탕으로 요약, 재정리하고 내용을 덧붙인 원고임을 밝힙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진과 글은 (비록 그 시기적 차이는 크지만) 작동 방식이나 변화의 양상이 무척 닮아있다. 마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백성(평신도)들도 글(성서)를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디지털 사진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모든 현대인이 사진을 찍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불과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사진은 필름을 통해 현상되고 인화된 형태의 종이로만 존재했다. 또한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이나,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것은 하나의 전문기술로 작용했기 때문에 자동카메라가 아닌 수동 카메라(SLR)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도 사진 전문가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카메라는 각 가정에 한 대도 있을까 말까한 귀한 물건이었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한 장의 사진 역시 무척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다. 카메라 자체도 고가였지만,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필름을 사고, 사진관에 가서 비용을 치르고 현상, 인화해야 하기 때문에 그 첫 번째 단계인 셔터를 누르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 완성된 한 장의 사진은 각 가정의 사진 앨범에 차곡차곡 보존되거나 액자로 만들어져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함께 꺼내보고 소개하는 유물처럼 존재했다. 덕분에 필름 시대의 일반인에게 잘 나온 사진의 기준은 얼굴이 작고 피부가 매끈하게 나온 사진이 아니라 그저 노출이 맞아 흔들리지 않고, 사진 속 인물이 눈을 감지 않았는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귀한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보급될 시기에도 여전히 카메라는 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더 이상 필름 값과 현상료, 인화비가 들지 않고,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카메라만 사면 지속적인 추가 비용이 들지 않기에 과거처럼 셔터를 누르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할 필요도, 단체사진의 누군가가 눈을 감았다고 핀잔을 들을 일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작은 혁명이자 앞으로 다가올 커다란 혁명의 전조였다고 할 수 있다.

 

더 큰 혁명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0년을 전후해 대중화된 스마트폰은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는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주었고, 또한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서도 바로 SNS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 업로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에 특히 더 큰 변화를 일으켰다. 거의 모든 사람이 손에 카메라를 쥐고 다니게 되면서, 그 이전 어떤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진이 생산되었으며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스마트폰이 그저 손 안의 카메라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손 안의 포토샵로도 기능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인해 사진 찍는 기술이 대중화됐다면, 스마트폰의 사진관련 어플을 통한 사진보정은 포토샵 대중화를 이루어냈다. 이제 누구나 몇 가지 어플만 사용하면 사진 속 피부의 잡티나 밝기쯤은 아무렇지 않게 보정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젠 모두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시대가 열린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모든 사진이 잘 나올 수 있게 되면서‘(기술적으로)잘 찍은 사진의 종말이 도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표면적으로는 현대사회에서 사진의 영향력을 더욱 넓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의 대중화는 각각의 사진이 지닌 가치를 훨씬 가벼워지게 만들었다. 물론 사진을 통해 떠올리는 추억과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과거에는 그것이 한 장의 사진에 농축돼 있었다면 지금은 적게는 수십 장에서 많게는 수백 장의 사진에 분산된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잘 나온 사진을 인화해 정성스레 앨범에 옮겨두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SNS계정의 사진첩에 저장하고 공유할 뿐이다. 또한 이전에는 카메라로 찍지 않았던 것들을 찍어두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진은 어떤 순간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거울의 용도나 사소한 뭔갈 메모할 때 쓰는 볼펜, 나아가 스캐너나 팩스의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어떤 순간의 추억이 담긴 매체로만 작동하기 보다는 (‘인증샷이라는 용어의 탄생이 말해주듯) 일상의 크고 작은 기록을 위한 볼펜과 같은 도구로 변화하고 있다. 누구나 볼펜을 가지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일상생활에서의 사진만이 아닌 보도사진이나 상업사진,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과 같은 사진의 전문분야까지 이어지고 있다.

 

완전한 소비자도, 창작자도 아닌 무엇 - 아마추어 사진가의 등장

 

다른 매체(음악, 문학, 영화, 만화 등)와 비교했을 때 사진이 갖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예술의 한 분야인 동시에 취미생활의 한 종류로써 기능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를 소비하는 주체가 소비자(관객, 독자)의 역할보다는 또 다른 창작자로써 존재하고 있다. 이른바 아마추어 사진가혹은 '사진 동호인들은 창작자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한국 사진계내의 가장 큰 소비자 집단으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진의 진입 장벽이 예전보다 현저히 낮아진 것과 연결 지을 수 있다. 몇 달만 투자하여 DSLR 사용법을 비롯한 테크닉만 익히면 인터넷 사진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그럴싸한 작품 사진을 따라 찍을 수 있게 되면서 마치 금방 사진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성취감을 받기 때문에 이들에게 사진은 마치 서예와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좋은 붓(카메라)를 가지고 유명한 문구(유명 출사지)를 기술적으로 잘 베껴 쓰면 그 자체로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그들이 찍은 피사체가 얼마나 희귀하고, 조형적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동시대 작가의 전시를 관람하거나 사진집을 사보기 보다는 전국의 유명 출사지를 돌아다니거나 기술적으로 사진을 잘 찍는 방법에만 골몰한다. 오로지 자신의 사진만 보는 것이다.

아무리 비싼 펜으로 글씨를 예쁘게 썼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글인가와는 별개의 요소인 것처럼. 바로 이 지점에서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기성 작가들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 현대 사진에서 좋은 작품의 기준이란 더 이상 한 장의 조형적인 사진(누가 더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인지(누가 더 좋은 글을 쓰는가)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기로에 선 사진가’- 예술에서의 변화

 

현대 미술에서는 작가가 사용하는 매체에 따른 구분이 무의미해지면서, 과거에는 사진가의 사상을 담는 그릇처럼 여겨졌던 사진 역시 화가의 붓이나 조각가의 칼처럼 그저 작가의 용도에 맞게 선택되는 도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에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들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사진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권오상, 정연두, 유현미, 유목연, 금혜원, 정희승 등)나 조각이나 회화, 설치를 통해 사진을 이야기하는 작업(김윤호, 차주용, 하태범, 인세인 박 등)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닌 아카이브나 인터넷이나 벼룩시장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백승우, 장보윤 등) 역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과거에는 사진가의 당연한 전제조건이였던 사진이 이제는 예술가 앞에 놓인 선택지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배경에는 그동안 기술자나 장인에 가까웠던 작가의 역할이 감독과 같은 것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술대학에서 서양화과, 동양화과,조소과와 같은 구분이 조형예술과와 같은 것으로 합쳐진 현상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렇기에 동시대 미술에서 조각가 화가’, ‘판화가라는 표현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사진가역시 원로 작가들이나 다큐멘터리, 상업사진과 같은 특정 영역에서만 통용되는 표현으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포토그래퍼의 종말 - 상업 사진

 

사진이 도구화되는 경향과 더불어 끝없는 카메라 기술의 발전과 같은 최근의 사진환경에서 가장 위기에 놓인 분야는 광고와 패션사진이 속한 상업사진이다.상업 사진은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광고주, 잡지사)’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100% 관철시킬 수 없는 구조를 가졌기에 기술적 변화에도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이는 촬영 시간이나 컷 수와 같은 요소가 비용으로 직결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덕분에 상업사진은 사진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기술의 변화를 수용해온 분야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 기술의 발전은 (예상과는 달리)차츰 사진가의 권한과 주도권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그나마 필름 시대에는 촬영한 사진을 현상하기 전까지 바로 확인할 수 없었기에 사진의 1차 선택권이 사진가에게 있었고 촬영 현장에서도 주도권은 작가에게 놓여 있었다. 하지만 사진환경의 몇 차례 큰 변화(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중형에서 소형카메라로 등)를 거치면서 이제는 사실상 사진가가 자신의 주도권을 모두 빼앗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촬영 현장에서 클라이언트가 모니터를 통해 사진가가 찍는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사진가는 그저 셔터 누르는 사람이 돼버릴 위기에 처했고 이러한 우려는 금세 현실화됐다. “한창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니터 뒤에 선 1~2년 차 잡지 에디터가 사진 다 나왔으니 촬영 그만하자고 하더라, 무척 자괴감이 들었다.”는 한 경력 10년 차 상업사진가의 하소연에는 현재 상업사진가들이 처한 상황이 그대로 비춰진다.그러나 이들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의 기술적 향상으로 인해 동영상으로 촬영해도 화질저하 없이 잡지 양면(스프레드) 사진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고화질의 소형 액션캠이나 드론의 등장으로 인해 셔터마저도 빼앗길 상황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


촬영자에서 편집자로 - 저널리즘(보도)사진

 

앞서 밝혔듯 모든 사람에 손에 카메라가 쥐어지고 이에 더불어 온 길거리를 비추는 CCTV와 거의 모든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과거 그 희소성으로 인해 작용하던 카메라의 특권은 크게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진들이 기록,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도사진은(그간 카메라의 특권을 가장 많이 누렸던 분야이지만) 카메라와 사진의 지위가 낮아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분야가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이제 보도사진의 영역은 사진기자가 갈 수 없었던 현장의 카메라(목격자의 스마트폰, 현장CCTV, 블랙박스)가 생산해낸 사진으로까지 확장됐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는 일반인에게도 어떤 사진기자보다 빠르게 사건 현장의 장면을 알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이제 전통적인 보도사진, 즉 현장감 있는 증거로서의 사진은 굳이 사진기자가 나서서 찍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어떤 사진을 찍는가가 아닌, 이미 찍혀 날아오는 수많은 사진 중에서 보도될만한 사진을 걸러낼 시각적, 윤리적 판단력을 가진 편집자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보도사진의 역할이 촬영자에서 편집자로 넘어간다고 해서 섣불리 사진기자들의 역할이 사라졌다고 볼 순 없다. 그저 텍스트를 보조하는 도판과 같은 역할만을 수행하는 증거로서의 사진이 아닌, 함께 붙는 글이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짚어내는 해석으로서의 사진은 시민들의 스마트폰이나 CCTV, 블랙박스가 찍을 수 없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글자로서의 사진 글로서의 사진

 

사진의 일상화, 도구화는 각자의 일상에서만 유효한 편의의 측면을 넘어서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인식 자체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또한 이는 사진계라 불리는 특정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시대적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바로 이 시점에서 사진매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술로서의 사진을 다루는 이들이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글자와 같은 사진은 이미 마치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빽빽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사진에만 매달리는 것은 더 이상 사진 창작자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 사진 창작자들은 더 이상 어떤 사진을 생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생산되고 소비되는 엄청난 양의 사진 이미지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글자와 같은 사진들을 조합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맥락에서 을 만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설득력 있게 낼 수 있어야 공기처럼 존재하는 무수한 사진 사이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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