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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진미술관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공모’에 대한 유감

글 이기원

국내에서 몇 안되는 사진 전문 미술관 중 하나인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젊은 사진가 포트폴리오 공모’를 한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포스터에 따르면 “한미사진미술관은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젊은 사진가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며 공모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젊은 사진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프로그램은 흔치 않았기에 이러한 공모가 생겼다는 점에서 (내가 직접 작업을 하진 않지만) 무척 반가웠고 사진계에 유의미한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원 자격 요건을 보고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 ‘한국 국적을 가진 30, 40대 사진가’라고 굳이 연령대를 한정짓는 것도 시대착오적이지만 ‘젊은 사진가’를 찾는다면서 정작 20대는 제외한다는건 모순처럼 느껴졌다.

물론 20대 사진가의 일부는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한미 측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묻지마 접수' 식으로 몰려드는 수준 미달의 포트폴리오를 처리하느라 시간과 인력 낭비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 역시 충분히 이해는 간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20대 사진가 중에서도 의미있는 작업을 지속해온, 발굴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고, 3~40대 사진가라고 해서 모두 20대보다 완성도 있는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또한 50대나 60대 혹은 그 이상의 연령대의 작가라 할지라도 ‘작가로서의 연령’이 젊고 작업이 참신한 작가라면 이 역시도 그들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일까?

사진이 예술의 다른 매체에 대해 갖는 강점 중 하나는 특별히 학교를 통한 교육이나 오랜시간의 기술적 훈련을 받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사진을 취미로 시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본인만의 뚜렷한 문제의식이나 메시지가 드러나는 진정성 있는 사진작업을 가졌다면 이 역시 충분히 소개될만한 가치가 있고 생물학적 연령에 관계없이 ‘젊은 사진가’라 불릴 수 있다. 

혹여 한미사진미술관이 정말 말 그대로 '생물학적으로 젊은 작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면, 연령으로 지원 조건을 걸지 말고 ‘작가로서의 경력’을 지원 자격으로 삼았어야 했다. 예컨대 (졸업 전시를 제외한) 단체전 1회 이상이라던가 혹은 개인전 1회 이상인 작가로 기준을 잡았다면 그들이 우려하는 수준 미달의 포트폴리오는 어느정도 걸러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어서 이 공모의 또 다른 문제는, 사실 앞서 제기한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는데 “접수된 서류 전체는 반환되지 않고, 한미사진미술관 작가 아카이브에 보관됩니다.”라는 조항이다. 접수를 이메일을 통해 디지털 파일로만 받는다면 그나마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하지만 사실 이 역시 문제의 소지는 남아있다), 우편으로 들어온 포트폴리오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이 역시 반환하지 않겠다는 점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작가들에게 전시 및 도록 지원이라는 미끼(혹은 핑계)를 대고 포트폴리오를 받아내 그들의 아카이브를 손쉽게 채우는 꼼수를 부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디지털 파일은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작가 입장에선 디지털 파일로 접수를 한다면 실질적인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사진이든간에 모니터를 통해 전자신호의 상태로 보는 것과 인화된 종이의 상태로 보는 것은 여러모로 큰 차이가 있다. 특히 디지털 파일 형태의 사진을 볼 때 모니터의 상태나 캘리브레이션 여부에 따라 원본과 모니터의 사진의 색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사진가라도 디지털 파일보다는 인화된 종이 포트폴리오가 더 정확하게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진가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당장 액자에 넣어 전시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사이즈의 차이만 있을 뿐 인화 품질은 실제 작품과 최대한 동일하게)로 제작한다. 당연히 포트폴리오에는 무척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될 수 밖에 없고 포트폴리오가 그 자체로 작품인 경우도 존재한다. 

물론 한미사진미술관이 아르코 미술관의 아카이브처럼 누구나 쉽게 열람할 수 있게 하면서 작가들로부터 동의를 구해 기증받거나 대가를 치르는 방식으로 그들의 작가 아카이브를 꾸린다면,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작가 입장에서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열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현재 운영중인 사진집 자료실인 ‘한미리서치센터’의 경우, 주 2회 오후 2~6시에만 개방하며 복사 및 촬영까지도 금지되는 무척 엄격하고 폐쇄적인 곳이란걸 고려하면, 작가 입장에서는 이를 한미 측에 보관해 두는 것보다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한미사진미술관 링크
http://www.photomuseum.or.kr/


최초 업로드 날짜 : 2015/01/16 00:58

2016. 9. 26. 16:30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