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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말을 하지 않는다 
- 2014년 한해동안 특히 주목받은 4장의 사진에 대해 -


글 이기원


2014년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사진을 꼽아본다면, 크게 4장의 사진으로 압축될 수 있다. 고승덕(전 서울시교육감 후보), 김현중(연예인), 문창극(전 국무총리 지명자) 그리고 조현아(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그 주인공들인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아마 이 이름만 봐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사진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이들 사진은 사람들의 큰 관심과 많은 패러디를 낳았다는 측면에서 꼽혔는데, 사실 각각의 사진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이중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화제가 되었던 고승덕의 사진은, 꽤나 치밀한 ‘기획’하에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고 준비된 외침과 절규를 선보였지만 너무나도 부족한 그의 연기력과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표정으로 인해 딸에게 보내는 사과의 진정성 보다는 그의 기괴하고 우스꽝스런 모습만 부각되었다. 이런 '우스꽝스러움'의 기저에는 자신의 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그의 지난 삶에 대한 실망과, 이를 (정치인들의 흔한 모습인)'보여주기식 사과'로 급히 수습하려는 모습에 대한 조롱이 존재한다. 물론 사진 자체의 '기괴함'이 워낙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당시 상황이나 고승덕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직관적으로 이 사진의 핵심을 읽어낼 수 있고 이로부터 파생된 패러디를 이해할 수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런 '그림'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 사진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다음 사진은 김현중이 올해 1월 한 드라마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드라마 속 역할에 맞게 포즈를 잡은 모습인데, 이는 작동하는 방식만 놓고 보면 앞서 다룬 고승덕의 사진과 대척점에 놓인다. 사진 속 김현중의 모습은 무척 평범한 제작발표회의 풍경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8월, 김현중이 과거 연인관계에 있었던 여성에게 상습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보도된지 8개월이나 지난 이 사진이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매서운 눈빛과 주먹을 쥔 모습이 ‘폭행사건’이라는 맥락과 결합하면서 폭발적으로 패러디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는 사진 자체에 보정이나 합성을 가하는 일반적인 패러디 방식이 아니라, 사진을 올리며 적는 캡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에 이 사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사진 내부의 요소가 아닌 바깥의 맥락에 더 무게를 두고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김현중 폭행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사진에 대한 패러디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이 두 사진을 비교하면, 고승덕의 사진은 전통적으로 사진이 작동해온 방식-순간의 포착이며 피사체의 힘에 의지하는-을 따르지만 김현중의 사진은 사실 사진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함께 붙는 텍스트에 따라 맥락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에 글을 보조하는 도판사진과 같은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이어서 다룰 두 사진(문창극, 조현아)은 공교롭게도 모두 <오마이뉴스> 이희훈 기자가 찍은 사진인데, 평소 보던 보도사진과는 어딘가 다른 결을 품고 있다. 먼저 살펴 볼 문창극 전 국무총리 지명자의 사진은 일반적인 보도사진에서 볼 수 없었던 구도와 노출을 통해 주 피사체인 문창극의 모습을 강조한, 무척이나 조형적인 모습인데 이는 마치 잡지화보에 그대로 실린다고 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사진의 의미는 그 조형성과는 별개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어떤 이는 기자들에게 맞서는 문창극의 당찬 모습을 보았을 것이지만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잘못된 역사관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한 남자의 내면을 보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중요성은 조현아의 사진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유명해진 그녀가 검찰에 출두해 기자들 앞에서 허리를 숙여 사과하는 와중에 눈을 치켜뜨고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도되면서 이 사진은 이미 알려진 그녀의 악행과 어우러져 다양한 패러디를 생산해냈다. 이에 대해 <한겨레>에서는 이 사진으로 인해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조현아라는 한 사람에 대한 외모 비하 및 과도한 화풀이성 조롱이 우려된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물론 <한겨레>의 문제제기는 분명 일리가 있고 ‘마녀사냥’식 비난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이희훈 기자가 찍은 특정 사진 때문이라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녀가 기자들 앞에서 눈물 섞인 사죄를 하는 와중에도 눈을 치켜뜨고 주변 눈치를 살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패러디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소재는 사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의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서 다룬 김현중과 문창극의 경우처럼, 사건과 아무 관계없는 과거의 사진이 다시 불려와 회자될 수 있고, 아무리 피사체를 조형적으로 멋지게 표현했다 하더라도 사진 속 인물에 대한 평가나 패러디의 핵심은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진이 작동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진의 표면에서 보여지는 요소보다 사진 바깥의 ‘맥락’이 더 크게 작용한다. 사진은 그 자체로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사진을 통해 뭔가를 읽어내는 것은 자신의 지식이나 사고방식이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진출처 
고승덕 - 뉴스1
news1.kr/photos/885248
김현중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stock/2014/08/22/1301000000AKR20140822094300008.HTML
문창극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723924#IE001723924
조현아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783213#IE001783213


최초 업로드 날짜 : 2014/12/23 01:37 

2016. 9. 26. 16:26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