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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낯선 셀프 카메라, '셀카봉' 사진의 매력에 대해


글 이기원


별도의 촬영자 없이 자신이 직접 자신의 모습을 찍는 셀프 카메라는 이제는 ’셀피(Selfie)’라는 고유명사를 가진 하나의 사진 장르

로써 (아마도)인류가 생산한 모든 사진 중 산술적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진이 되었다. 

 셀프 사진의 탄생은 한 손에 쥘 수 있는 콤팩트 카메라의 등장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발전과정을 돌이켜 볼 때, 그 첫 번째 혁명은 아마 틸트 액정(액정화면이 회전하는 것)카메라의 등장일 것이다. 이전까지는 마음에 드는 셀프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카메라의 뒷면 액정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다시 찍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틸트 액정 카메라가 등장하고서부터는 자신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면서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표정과 각도를 즉각적으로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혁명은 스마트폰의 ‘자동보정 카메라 어플’이라 할 수 있는데, 원더캠(WonderCam)과 같은 카메라 어플은 사진을 찍은 후에 보정할 필요 없이 촬영 단계에서 이미 ‘뽀샤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셀카에 특화된 후보정 기능(눈은 커지고, 턱은 갸름해진다)도 탑재해 셀프 카메라에 한해서는 사실상 포토샵을 익히고 사용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자동카메라의 등장처럼, 누구나 사진 보정을 할 수 있게 해주면서 ‘포토샵 기술의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올여름 휴가시즌을 기점으로 방송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한 ‘셀카봉’은 셀프 사진의 세 번째 혁명을 이끌고 있다. 이제는 길거리나 관광지에서 셀카봉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심심치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셀카봉의 확산은 어떤 ‘유행’이라기보단 하나의 흐름으로 자연스레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셀카봉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변화는 앞서 언급한 ‘혁명’들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셀카봉은 그간 사진 바깥에서 벌어지던 경쟁과 희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1m 정도로 늘어나는 셀카봉의 길이 덕분에 그간 최대 3명이 가까스로 얼굴을 들이밀던 비좁은 화각에서 벗어나, 서로 자신의 얼굴이 작아 보이기 위해 슬금슬금 목을 뒤로 빼던 미묘한 경쟁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또한 8~10인의 단체사진까지 셀카로 찍을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사진을 찍기 위해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한 명의 ‘찍사’가 사진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주변 배경까지 셀카에 담을 수 있게 되면서 셀카의 다양성을 크게 확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셀카봉 열풍의 좀 더 핵심적인 원인은 결국 사진을 ‘잘 나오게’해준다는 것, 즉 그 결과물에서의 혁신에 있다. 획기적으로 넓어진 화각과 더불어 셀카봉 없이는 쉽게 찍을 수 없는 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이 그 결과물에 매력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사진을 볼 때 흥미를 느끼는 지점 중 하나는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일때이다. 이러한 ‘낯설게하기'는 사실 거의 모든 예술장르에서 유효하게 작동하지만, 이를 사진이라는 매체로 한정 지어 생각하면, 현대사진에 와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들은 사진의 크기를 엄청나게 크게 하거나, 포토샵이나 촬영 기법의 변화를 통해 피사체의 형태와 색을 뒤틀어버리거나, 익숙하지 않은 구도(ex. 항공촬영, 초근접 촬영)등을 이용하여 ‘낯설게하기'를 구현한다. 이러한 ‘낯설게하기’를 통해 관람자는 그간 사진에서 보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해석이나 감상이 가능케 한다. 비록 ‘셀카봉 사진’은 낯선 구도를 통해 어떤 새로운 해석까진 만들어내진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간 볼 수 없었던 구도’를 만들어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자신의 모습을 ‘낯선 구도’ 속에서(그것도 이른바 ‘얼짱각도’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셀카봉 사진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다.

 다만 아직까진 셀카봉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사실 셀카봉 이전의 ‘셀프 카메라 찍는 모습’도 그리 우아하진 않았다-특히 꽤나 무거운 DSLR을 한 손에 들고 셀카를 찍기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누군가의 팔을 보고 있으면-는 점을 고려하면 ‘셀카봉 촬영’도 몇 년 이내에 자연스러운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 것이라 생각한다.         


최초 업로드 날짜 : 2014/09/14 21:59              

2016. 9. 26. 16:18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