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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Pine Trees, Wolcheon, Gangwondo, South Korea, 2007, Michael Kenna





아침을 기다리며, 월천리, 2010, 김성필



마이클 케냐의 <솔섬>을 둘러싼 논란, 사진의 프레이밍은 창작물로 인정될 수 있는가?


글 이기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고, 화면을 보고 셔터만 누르면 노출과 초점이 잘 맞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모든 기능이 자동화된 카메라에서 촬영자에게 남은 선택은 소재와 프레이밍뿐이다. 이중에서도 피사체는 일반적으로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며 특히 보도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해 왔다. 그렇다면 나머지 선택지인 프레이밍는 어떠한가. 프레이밍는 언제나 소재에 뒤따르는 요소로써 존재해왔다. 과거 회화로부터 비롯된 이른바 ‘좋은 프레이밍’는 황금분할과 같은 전통적인 규칙에 얽매여 과거에는 훌륭한 사진의 필수요건이였지만, 이제는 부수적인 기준이나 깨버려야 할 낡은 관습으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진의 프레이밍가 독립적인 창작물로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한 소송이 현재 우리나라 법정에서 진행되고 있다1. 이를 요약하면, 대한항공 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아마추어 사진가의 사진이 2011년 대한항공 광고2 <우리에게만 있는 나라>에 쓰였다. 이에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냐(Michael Kenna)의 한국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는 광고에 쓰인 사진이 케냐가 2007년 발표한 <솔섬>을 표절한 것이라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오는 1월 14일 케냐가 증인 자격으로 국내 법정에 서게 된다. 문제가 되는 두 사진을 보면 한눈에도 비슷한 프레이밍에서 찍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쉽게 표절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논란의 대상이 회화가 아니라 ‘사진’이기 때문이다.


 회화는 작가가 캔버스의 모든 곳에 개입할 수 있다. 풍경화 한쪽 귀퉁이의 잎사귀 하나, 지푸라기 하나까지도 작가의 손길을 거쳐야만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진은 철저하게 렌즈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가져오는데 치중한다. 즉 회화는 그려지지만 사진은 재현한다. 그러므로 회화에서 ‘붓’의 역할과 사진에서 ‘카메라’의 역할은 분명 다르다. 붓은 작가를 돕는 도구인데 반해, 카메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써 작가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회화에서는 점 하나를 찍더라도 이는 작가의 창작에 속하지만, 사진의 구성요소인 노출, 초점, 프레이밍, 피사체는 창조되는 게 아니라 선택지로 존재한다. 각각의 선택이 설득력 있게 결합하면서 작가의 의도가 구현되어야 사진은 비로소 예술적 창작물이 된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케냐의 사진 <솔섬>을 보자. 공근혜 갤러리 측에서는 대한항공 광고에 쓰인 프레이밍이 케냐의 사진과 매우 유사하므로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림 1). 물론 케냐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프레이밍라면 이는 창작물로 여겨져야 하겠지만 <솔섬>의 경우는 다소 억지스럽다. 누구나 그 곳에 가면 그렇게 찍을 수 밖에 없는, 지극히 보편적인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이는 검색엔진에서 ‘솔섬’을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검색결과(그림2)를 보면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수년에 걸쳐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대부분 비슷한 각도에서 촬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네이버의 ‘거리뷰’ 서비스에서도 솔섬 부근의 사진은 이와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그림3). 사방에 카메라가 장착된 거리뷰 촬영차량은 그야말로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고 완전히 자동화되어 사진을 촬영한다. 어떤 사진적 요소도 고려하지 않는, 오로지 기록을 위한 사진 속에서도 솔섬은 케냐의 사진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렇게 케냐의 사진은 솔섬을 찍으려는 누구라도, 심지어 자동화된 기계까지도 우연히 선택할 수 있는 프레이밍이기에 어떤 보도사진이나 관광지 소개 사진과 같은 보편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솔섬>의 프레이밍는 창작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미’라는 한 가지 주제를 심도있게 연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소나무 사진을 선보인 배병우 작가와 같이 소재와 프레이밍를 뛰어넘은 표현이 녹아있다면 케냐의 <솔섬>도 그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케냐의 다른 작업들을 살펴보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어떤 특별한 의도나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고 단지 세계 각국을 돌며 아름다운 풍경을 채집한 사진첩에 가까워 보인다. 


 <솔섬>의 장소인 강원도 삼척 월천교 부근의 이 섬은 본디 지명이 ‘속섬’이었으며 틈틈이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찾아오던 출사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7년 케냐가 <솔섬>을 발표한 이후 유명세를 타 원래 이름 대신 그의 사진에서 따온 ‘솔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작품 발표 이후 더 많은 사진가가 찾게 되어 이곳에 건설 예정이던 LNG 저장기지의 부지변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등 케냐가 ‘솔섬’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항공이 그들의 광고에서 ‘바람이 솔솔, 강물이 솔솔, 구름이 솔솔’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사진의 캡션으로 ‘솔섬[삼척]’을 쓴 것은 케냐의 <솔섬>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기에 이는 법정에서 케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솔섬’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광고에 쓰인 사진의 표절 여부는 분리해서 판단하여야 한다. 만약 소송에서 케냐와 공근혜 갤러리가 자신들의 권위와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솔섬> 프레이밍의 저작권을 인정받고 거액의 배상금을 받게 된다면, 이는 사진의 소재를 땅따먹기하듯 먼저 깃발을 꽂는 저작권 쟁탈전의 시초가 될 것이고 이 때문에 국내 사진계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은 대한항공이나 공근혜 갤러리라는 어떤 기업의 시각이 아니라, 사진을 즐기는 모든 이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판단해야 한다. 




대한항공 CF <우리에게만 있는 나라 - 솔섬[삼척]편>




(그림1) 공근혜 갤러리 보도자료


 



(그림2) 구글 '솔섬' 이미지검색




(그림3) 네이버 로드뷰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최초 업로드 날짜 : 2014/01/10 15:13

2016. 9. 26. 16:05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