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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사진 보고서> 제12호

*변두리 사진 보고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진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다루는 연재물입니다.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하고 취향만 남은 전시

자체동력 잃고 관성만 남은 졸업전시 (2)


포토닷 2016년 2월호

글 이기원

 

얼마  오래된 사진 잡지를 다시 꺼내보다 ‘2008 사진학과 졸업생 포트폴리오라는 주제의 기사를 우연히 펼쳐봤다. 당시 지면에는 10 대학 사진학과에서 추천받은 사진학과 졸업생 28명의 작품과 짤막한 인터뷰가 실렸다. 이들 28명은 당시 학과 내에서는 졸업 후에도 작품활동을 이어갈 유망주로 손꼽힌 예비 작가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8년이 지난 현재, 이들  활동을 이어가는 졸업생은 고작 2~3명에 불과했다이는 최근 사진학과 졸업생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비율이 10%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척 실망스러운 숫자였다. 이처럼 졸업전시가 학생들이 작가로서  발을 내딛는 데뷔의 이기 보다는, 그저 졸업을 위한 행정적 절차로서의 역할만 남게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과제 불과한 졸업작품

 

졸업전시가 최초 부여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한 원인으로는 충분한 사전조사나 구상 기간을 거치지 않고 4학년이 되서야 작업 구상을 시작하는 사진학과 교육과정의 문제, 애초에 30~50명의 작품을 빼곡히 나열하는 졸업전시의 형식적 한계 등을 꼽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졸업심사의 문제가 가장  비중을 차지한다. 작가 자신이 아무리 만족하는 작업이라  지라도, 그것이 졸업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전시는 물론 졸업까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들은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심사 통과여부를 지속적으로 체크할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담당교수는 졸업심사를 통해 수준 미달의 작업을 걸러내야  의무가 있지만, 교수의 조언이나 지시가 실질적으로 해당 작가에게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사진학과 재학/졸업생들은 심사에서 탈락하는 작업이 객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이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 밖에 있는 작업을 꼼꼼히 살펴보고 해석하려 하지않는 일부 교수들의 고집에서 비롯된 사례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졸업심사는 일반적으로 3단계로 나뉜다. 순수, 상업, 미디어, 다큐멘터리 등으로 구분된 각각의 파트끼리 진행하는 내부심사(예비심사) 그리고 내부심사에서 통과한 작업을 대상으로 졸업전시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본심사가 있고, 본심사에서 탈락한 경우에 한해 1회의 재심사가 주어진다. 만약 재심사에서도 탈락한 경우, 졸업전시는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한다. 덕분에 본심사에서 탈락한 학생들은 어쩔  없이 교수(심사위원) 요구대로 작업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016년도 순수파트 졸업 예정자 D씨는 파트 내부 심사(예비 심사)에서는 별다른 문제 없이 통과했지만, 다른 파트 교수들도 참여하는 본심사에서 해상도가 낮다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탈락해 재심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D씨는  작업은 판형이 작은 것이 중요한 의미를갖는데,  맥락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해상도가 낮다며 본심사에서 탈락시켰다. 당시 순수파트 담당교수는 탈락에 반대했지만, 다른 파트 교수들에 밀려 결국 재심사에서 기존 필름 작업을 디지털로 전부 다시 찍어 통과했다. 심사에 참여한 교수들이 학생들의 작업에 대해 깊게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꼬투리를 잡는다는 인상이 강했다.” 밝혔다.

한편 2016 졸업예정자(다큐멘터리/저널리즘 파트) E씨는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했으나 파트 담당 교수가 스타일을 바꿀 것을 요구해 어쩔  없이 교수가 원하는 스타일로 사진을 재선정해 심사를 통과했다.  과정에서 담당 교수가 구도나 피사체를정해주며 다시 촬영하라고 지시하거나, 정치적인 주제를 다룬 작업에 대해 주제를 중립적으로 변경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담당 교수들이 학생들의 작업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외 다른 학생들도 촬영횟수가 너무 적었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떨어졌다거나,“실제 심사 시간이  5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졸업심사 과정에서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같은 문제는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졸업작품이 최초 구상 단계와 비교해서 얼마나 바뀌었는가?’(1) 묻는 질문에서 104명의 응답자  91명이 자신의 작업이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변경되었다 답했으며, 이들에게 작업 변경의원인을 물은 설문(중복선택 가능, 2)에서는 가장 많은 응답자들이 담당교수의 조언’(61) 꼽았다.

이처럼 졸업심사에서 교수의 권한이 막강하게 작용하는 동시에, 졸업 후에도 작업을 지속하려는 학생의 수가 10% 수준에 불과한 최근 사진학과 전반의 분위기가 맞물려 학생들에게는 졸업전시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지 오래다. 졸업 후에도 작업을 지속하려는 소수의 학생들은 현재의졸업전시 시스템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없다고 판단해 사실상 버리는 카드 졸업전시를 준비한다.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작업이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오간다. 나머지 학생들의 경우 주변 친구, 가족, 지인들에게 졸업을 축하받는 사실상학예회 같은 행사로 작동한다.  같은 경향은 설문조사에서 졸업전시와 졸업전시에서 선보인 개인 작업의 만족도를 묻는 설문에서도 나타났다. 졸업전시 전반의 만족도를 묻는 문항(3)에서 졸업전시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38% 여러 응답자들이 다른 문항에서 졸업전시의여러 문제점을 지적한 것과는 다소 상반된다. 이는 졸업전시에 선보인 개인 작업의 만족도를 묻는 문항(4)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자신의 작업에 만족한다는 응답자가 50% 차지한 반면,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한 비율은 17% 그쳤다. 이처럼 사진학과 학생들이 졸업전시의 구조적문제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전시나 개인작업의 만족도를 상대적으로 높게 판단한 것은 애초에 졸업전시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은 것으로도해석될  있다.

 

학풍은 없고 주입된 취향 남은 졸업전시

 

2016년도 다큐멘터리/저널리즘 전공 졸업예정자 F씨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생각과 목적은 뚜렷해도 아무래도 학생 신분이다 보니 자신의 작업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할  밖에 없다. 그렇기에 교수진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담당 교수의취향에 맞춰 작업을 선보이는 경우가 생긴다.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은 교수가 아니라 내가 지는 건데, 그냥 하고 싶었던 대로 해볼  하는 후회가 들었다.” 졸업전시를 마친  느꼈던 바를 털어놓았다.

이처럼 졸업심사 시스템에서 학생들이 원활히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작품을 자기검열하는 현상 역시 존재한다. 또한 학생 자신도 모르게 담당 교수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가령 인물사진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가 교수로 재직 중인 B대학의 경우, 졸업작품 상당수가 스승의 작업을 연상시키는 유형학적 스타일의 인물 사진을 선보였다. 물론 이는 B학교만의 학풍이나 스타일로 해석될  있지만, 스승의스타일을 재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접근해 자신만의 방향성을 가지기 보다는 그저 스승의 스타일이 주입 수준에 머문다는 인상이 강하다.물론 이보다   문제는   다수의 사진학과들은 이런 스타일조차 찾아볼  없다는 것이다.  같은 문제의 가장  원인은 사진학과 교수진이 동시대 시각예술의 경향에 무감각하고, 교육과정 역시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있다. 2~3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졸업작품을 준비하기는 커녕, 4학년이 되서야 급하게 졸업전시를 준비하게 된다. 더욱이 졸업전시와 연관된 워크샵 수업에 1학기와 2학기 강사가 다르게 배정돼  1학기부터 진행한 주제를 2학기에 갑자기 변경시키는 등의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교수진은 자신이 해왔던 사진의 기준과 취향으로만 학생들의 작업을 바라보기에 학생들의 작업을 발전시켜주기 보다는 이를 제한하고 가로막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진학과 출신 작가들 사이에서는 졸업  최소 1~2 동안은 학교에서 배웠던 관습과 태도를 버리고 타인의 작품을 폭넓게 바라보며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를 재정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학교 밖에서 통용되는 포트폴리오 만들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상 작가 양성해내지 못하는 사진학과

 

졸업전시마다 작년에도, 다른 학교에서도  듯한 비슷한 작품들이 매번 등장한다. 특히 최근   사이에  번이라도 사진학과 졸업전시를찾았던 관객이라면, 시장 풍경을 담은 흑백 다큐멘터리나 작가 본인이나 자신의 친구들을 실내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혀두고 찍는 작업들을 번쯤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 각각의 맥락은 서로 다르겠지만 관객 입장에서도, 사진잡지 편집자의 입장에서도 이것이  이상 흥미롭지 않다. 이는 기본적으로 졸업 후에도 작품활동을 지속할 토대를 마련하기 어려운 사회구조로 인해 작업의 주체인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작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꺾여버린 것도 작용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진학과가 안고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집약된 결과라고도   있다. 매체에 따른 장르의 구분이 흐릿해진 동시대 시각예술계에서 현대미술의 흐름에 맞게 학과 시스템을 개편한 미술대학에 비해 사진학과는 여전히 과거의 교육과정에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진학과가 그들의 목표를 순수예술, 상업, 패션, 다큐멘터리, 저널리즘  여러 사진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진인 양성으로 삼고 있다면, 겉으로만 성대한 졸업 전시보다는 학교 밖에서 통용될  있는 유의미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 종종 거론되는 인문학적 소양 강화 같은 추상적인 대안보다는, 포트폴리오를2~3학년때부터 준비할  있는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작가이기 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교수진을 꾸리는 것이   효과를 발휘할것이라 생각한다.  




2016. 9. 26. 16:42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