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로딩중입니다.
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데이터베이스를 생산-가공-정렬

박동균 - <type.fd> / <약한 연결>


글 이기원 (보스토크 편집동인)

보스토크 9호 <뉴-플레이어 리스트 II> 게재


박동균의 사진(여기서의 사진은 최종 결과물 단계에서의 사진이 아니라, 최초의 생산 단계에서의 사진을 뜻한다)은 작가가 직접 채집한 어떤 장면이거나, 관심가는 사물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촬영한 것, 디지털 공간 안에서 온전히 3D 모델링 툴로 구축한 이미지까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작가는 이렇게 생산된 이미지에 스스로 체계화한 코드를 캡션으로 부여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듯 사진을 축적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는 <type.fd>로 명명된다. 축적된 사진들은 철광석 같은 원재료처럼 존재하며, 작가의 의도에 따라 분류/가공된다. 자신이 포착한 장면과 대상에서 포착한 미묘한 감각들을 사진에 덧씌우는 방식으로 가공된 이미지들은  광학적 재현의 결과물로서의 사진이기 보다는, 마치 그래픽이나 회화 같은 온전한 2차원의 레이어로 전환돼 피사체의 미적인 양상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박동균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신의 의도에 맞는 기준으로 분류/선택한 이미지들을 묶어 각각의 시리즈로 정리한다. 이처럼 박동균의 작업 방식은 사진 연작이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는 일관된 촬영 방식도 없고, 시리즈를 묶어내는 단일한 개념도, 명확한 내러티브도 전제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리즈’ 또는 ‘연작’이라 부르는 작업의 단위는 박동균에게 마치 팀 내부에서 유닛 활동을 하는 아이돌 그룹처럼, 그때 그때 필요에 맞게 자신의 작업 데이터베이스에서 선별한 일시적인 ‘정렬 기준’으로 작용한다.   


작가가 캐치를 하는 세계(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졸업전시, 2017)과 미래작가상(캐논갤러리, 2018)에서 선보인 <약한 연결> 시리즈는 먼저 그의 데이터베이스 <type.fd>에서 특정한 정렬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작가는 특정한 공간이나 사물에 설치/장착/연결돼 배경이나 사물의 일부로 인식되는 피사체(계단 손잡이, 수도관, 콘크리트 구조물, 자동차 헤드램프 등)가 담긴 사진에서 이미지와 사물, 또는 이미지와 언어가 맺는 관계를 짚어내고 이를 <약한 연결>을 구성하는 ‘정렬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지 속 사물의 다소 과하게 매끈해 보이는 질감과 묘하게 뒤틀린 색감은 이미지와 피사체 사이의 연결을 흐트리면서, 피사체를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의 표상이 아닌, 온전히 이미지 내부에서만 존재하는 사물-이미지로 갱신한다. 


사진들은 얼핏 (아주 잘 찍은) 인터넷 쇼핑몰의 ‘제품 사진’이거나 어떤 자재의 설치 ‘샘플 이미지’처럼 보인다. 이러한 인상은 그의 작업을 처음 마주한 경로가 전시나 출판의 형태가 아니라, 작가의 텀블러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두 종류의 사진들이 액정화면을 지지체로 삼았다는 점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제품 사진을 살펴봤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여기서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어디이고, 누가 어떤 카메라로 찍었는지와 같은 정보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사진 속 상품의 디테일만을 살펴본다. 이런 맥락에서 제품 사진은 피사체만 존재하고, 그 외의 요소들은 모두 제거되거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는 이미지이다. 박동균이 계단의 난간이나 나무 기둥, 가드레일을 찍은 사진들은 어떤 사물이나 구조물의 부분만을 보여줄 뿐,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에 대한 정보나 내러티브를 암시하는 어떤 여지도 주지 않는다. 설령 사진 속 공간이 자신에게 익숙한 곳이라 어디인지 알아챈다고 해도, 그것이 이 사진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진 못한다. 이렇게 우리는 사진을 둘러싼 정보들이 잘려나간 사진을 볼 때, 제품 사진을 볼 때와는 달리 사진 속 사물이 실재하는지 의심하는 단계부터 출발한다. 덕분에 사물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할 수 없는 박동균의 작품들은 마치 그래픽이나 회화처럼 2차원의 레이어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책이나 인화지처럼 지지체 자체의 물질성으로 변환되는 매개체보다는, 액정화면처럼 이미지 자체의 시각성을 극대화하는 유동적인 지지체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본 원고는 와우산 타이핑 클럽(t-504.tistory.com)에 게재했던 약한 연결 리뷰, “피사체와 분리된 사진”를 일부 재가공하였음을 밝힙니다.



박동균 Vak Dongkyun

현재 서울에 살며 작업하고 있다. 페인팅을 위해 이미지를 참조하는 과정에서 사진의 재현성과 기록성에 매료되어 이를 주요 매체로 사용하게 되었다. 주변에 편재하는 사물들에게서 발견되는 기술의 미적 양상을 사진의 절차를 통해 가시화하였을 때 발생하는 물질과 이미지 사이의 연결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일상적 실천에서 마주하는 사물의 물질성을 현실을 구성하는 일종의 기본 단위로 전제하고, 사물로부터 개별적으로 인지되는 물질적 속성을 사진-이미지로 번역해낸다. 기술과 과학을 매개로 성립된 수많은 물질적 조건 안에서 사물이 독립적으로 만들어낸 또 다른 현실과 그것이 내포하는 시각적 징후를 관찰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type-fd.tumblr.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