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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없는 아카이브 사진

박신영 <Laboratory>, <Material Library

글 이기원(보스토크 편집동인)

보스토크 9호 <뉴-플레이어 리스트 II> 게재



사진으로 피사체의 물질성을 인식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사진의 표면에서 피사체의 형태와 크기, 색상, 질감 등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색상은 카메라의 화이트밸런스나 광원의 색온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스케일 역시 사진을 어떻게 찍고 보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또한 무게나 강도와 같은 성질은 사진으로 판독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질감 역시 하나의 사진만으로 인식하기 어렵다. 덕분에 피사체의 존재 증명을 목적으로 삼는 아카이브 사진은 색상을 파악할 기준이 되는 컬러 체크 차트와 스케일을 가늠할 자를 사물과 함께 촬영하고, 질감을 보여주기 위해 클로즈업을 하거나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보여준다. 무게나 강도처럼 시각적으로 표현이 어려운 요소는 캡션으로 대체된다. 이처럼 비교군을 통해 제시된 정보들은 절대값이 아니라 상대값일 뿐이기에, 우리는 각자 평소 보고 만져본 사물의 크기, 형태, 색상, 질감, 강도, 무게 등의 물질성을 데이터베이스 삼아 이미지에서 사물의 물질성을 추측한다.


박신영의 두 작업 <Laboratory>와 <Material Library>은  각기 다른 지점에서 사물의 물질성을 탐구한다. 이를 구성하는 사진 속 피사체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마치 캡션도 없고, 컬러 체크 차트도 없는 아카이브 사진처럼 어떤 외부 정보도 주지 않고, 프레임 내부의 정보에 대해서도 비교군을 병치시키지 않는다. 이들은 “OO를 찍은 사진”이라는 의미의 차원에서 ‘해석’되지 않고, 이미지의 표면에 남은 정보만을 토대로 (프레임 속) 사물의 형태와 질감만을 보여준다. 작가는 어떤 풍경이나 장면을 포착하면서 의미의 차원에서 사진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기보다는, 사진 바깥에서 개입하는 의미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사물들을 자신의 시각으로 프레이밍하고 재가공한다. 예컨대 박신영의 <Laboratory> 시리즈에서, 우리는 사진 속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아닌 바에야 부분적으로만 드러난 실험기구들이나 부품들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지점에서 사진 속 사물을 언어로 구분하거나 지칭하는 것 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작가노트에선 이곳이 스위스의 한 시계 브랜드의 연구소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이는 작품을 감상하거나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라 볼 순 없다. 이런 맥락에서 박신영이 사물을 기록한 사진은 그 자체로 무척 조형적이기에 이 사진들이 ‘무엇을 보여주는가’는 흥미로운 요소로 기능한다. 그러나 사진 속 사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데이터들은 오히려 잉여 정보가 된다. 이렇게 작가의 사진은 피사체와 연결은 되어 있지만, 피사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자료사진으로서의 의무에서 벗어난다. 사진에서 결국 독자가 어떠한 의심 없이 오로지 사진에서 읽어낼 수 있는 건, 프레임 속 사물이 드러난 형태와 질감뿐이다. 이러한 특징은 스튜디오에서 근접촬영된 물체들에게서 극대화된다. 스튜디오라는 통제된 환경에서 포토 스태킹(Photo Stacking) 기법으로 촬영된 사물들은 형태와 질감을 강조하면서 피사체의 물질성을 시각화한다.


<Laboratory>에서 대상의 물질성을 드러내기 위해 작용했던 소거법은 <Material Library> 시리즈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변주된다. 작가는 스위스 장크트 갈렌(St. Gallen)에 위치한 Sitterwerk의 매터리얼 아카이브(Material Archive)에 분류/진열된 돌 표본을 비롯 채석장이나 석재 가공소의 풍경을 담고, 수집한 돌을 스튜디오에서 같은 배경과 크기로 촬영해 규격화시킨다. 사실 암석이나 광물은 고유한 형태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시각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또한 같은 이유로 질감에 집중하기 유리한 사물이기에, 작업은 사물의 조형적 형태보다는 질감에 집중한다. <Material Library>시리즈는 돌의 질감이나 표면의 패턴만을 남겨두거나 강조하는 방식, 그러니까 아카이브 사진의 방법론으로 돌의 물질성을 제시한다. 물론 사진으로 질감을 인지하는 것은 불완전하기에, 독자는 마치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처럼 각자의 코끼리를 상상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매터리얼 라이브러리에서 매끈하게 잘려져 표본이 된 돌을 찍은 사진과 돌 조각들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 그리고 채석장의 거대한 바위를 찍은 사진은 질감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서로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박신영(Bahc ShinYoung)

이미지를 만들고 수집하며, 나열하고 재구성한다. 

아카이브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맥락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식에 흥미를 갖고 있으며

사진-이미지의 확장적 개념과 그 작동 원리에 대해 탐구한다. ba-h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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