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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Charlie Oscar / Echo X-ray> - CO/EX


“김”과 “안”은 취합한 데이터 파일을 토대로 결과물을 만든다 : 압축과 팽창 인터뷰


진행/정리 : 이기원 (보스토크 편집동인)

보스토크 9호 <뉴 플레이어 리스트 II> 게재


안초롱과 김주원이 결성한 사진 듀오, 압축과 팽창은 공동 작업을 위해 계약서를 쓰고 사진을 자재로 활용해 인테리어 시공을 하듯 전시를 꾸린다. 글쓰기처럼 개인 창작에 적합한 사진 작업에서 협업 또는 팀 작업이 어떻게 가능할까? 또한 사진을 자재로 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며, 여기서의 계약서는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일까? 

2016년 첫 협업을 선보인 전시 Open-End(ed)에서 최근 유령팔까지 압축과 팽창의 프로젝트를 짚어보며 공동 작업과 계약서, 시공과 자재에 관한한 압축과 팽창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진과 텍스트, 데이터와 공간 : Open-End(ed) + 압축과 팽창 


이기원 : ‘압축과 팽창’을 결성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주원 : 2016년 5월 전주에서 열렸던 Open-End(ed)[각주:1](서학동사진관+계남정미소) 전시에 저와 안초롱 작가가 각각 섭외 제안을 받았어요. 처음엔 무슨 작업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작가 라인업에 안초롱 작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협업을 생각했어요. 사실 그때까지 안초롱 작가를 실제로 만난 건 지금여기 1주년 행사때 한 번뿐이었죠. 직접 섭외하기도 서먹한 사이라서 김현주 큐레이터를 통해서 안초롱 작가에게 협업 의사를 물어보고 미팅 진행하면서 시작됐죠. 처음 계획은 공동작업이라기 보다는 간단한 협업이었죠. 제 사진으로 안초롱 작가가 피동사물을 한다거나 안초롱 작가 사진으로 제가 도배를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말이죠.


안초롱 :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 먼저 각자의 사진을 살펴보자고 했어요. 1,000장씩 골라서 바꿔보자고 했죠. 근데 그 1,000장이 많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어요. 


김주원 : 그때 초롱씨가 저한테 “열심히 찾았는데 구백 몇장밖에 없다”라고 문자 보냈던 게 기억나요. (웃음) 


안초롱 : 먼저 1000장의 사진에 각자 각주를 달아보고 모여서 각주를 비교했어요. 이미지는 다른데 각주가 같은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같은 각주만 모아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의 순서대로 각주와 대응하는 이미지들을 나열해 보았어요.


김주원 : 그때는 정식 계약서가 없었어요. 협업 규칙을 모은 문서를 작성했어요.


이기원 : 그럼 정식 계약서가 등장했던 건 두 번째 전시인가요?  압축과 팽창[각주:2]은 어떤 계기로 진행하게 되었나요?


김주원 : 당시에 지금여기를 운영하고 있었던 김익현 작가가 계남정미소에서의 전시를 지금여기에서 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저희도 재밌게 했던 터라 제안을 받아들였죠.


안초롱 : 그런데 계남 전시와 온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우리가 전시를 하나의 ‘시공’으로 생각하니까 장소가 바뀌면 아예 다른 그림를 구상하고 만들게 돼요. 첫 번째 전시와 두 번째 전시를 비교하면, 같은 규칙이긴 한데 공간에 맞게 계약과 시공이 달라지는 거죠. 처음엔 기획전 안에 있었던 거고 두 번째는 단독 전시였으니  좀 더 견고하게 계획을 세우게 됐죠.


김주원 : 첫 전시때 보다 더 세심하게 서로의 디렉토리를 좀 들여다 본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하위폴더 작업이 나오기도 했고요.


이기원 : 그러면 계남정미소에서 지금여기로 전시가 넘어오는 과정에서 빠진 것도 있나요?


김주원 : 추가된 것도 ‘시공’의 차원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들어간 거였지 임의로 뭘 빼고 넣고 하지는 않았어요. 지금여기 공간 안쪽에 뚫린 창이 있고 창과 창 사이에 보이는 면이 있는데,  이걸 시각적으로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큰 이미지 두개를 중첩시키려고 했어요.


안초롱 : 전시공간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 어떤 이미지들이 어떻게 보이고 중첩되거나 결합하는지 여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정말 인테리어 ‘시공’ 하듯이 하게 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공’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김주원 : 또 한편으로는 계남정미소에서 전시할 때는 서로 일 얘기를 잘 안했는데, 압축과 팽창때는 업체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해 우리가 인테리어 업계에 종사한다는 걸 공통분모로 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런 요소들을 작업에서 좀 더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 면에서 사진을 인테리어의 자재처럼 다뤄보려고 했습니다.


안초롱 : 기본적으로 둘 다 스냅사진을 찍으니까 일단 양이 많아요. 게다가 합쳐버리면 너무 이미지가 많으니까 어떻게든 분류를 해야 하죠. 이런 맥락에서 계속 분류법이 바뀔 수밖에 없어요.

 

이기원 : 결국 핵심은 각각의 이미지들을 어떤 자재 내지는 데이터로 보고 여러가지 기준이나 규칙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라고 봐요. 마치 문제은행처럼 두 작가가 찍어둔 사진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한 기준이나 규칙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하는게 각각의 작업이고, 이를 시공하듯 물리적인 공간에 구현시킨 것이 전시라고 볼 수 있겠네요. 


김주원 :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압축과 팽창은 개별 이미지에 관심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우리는 개별 이미지를 고르는 것에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어요.


안초롱 : 자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관객에겐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김주원 : 보통 작업을 해서 모이면 그걸 하나로 묶어 전시를 하거나 책을 내잖아요. 저희는 어떤 작업들을 할지 미리 텍스트로 설계해 실행한다는 점에서 다르죠. 어떤 이미지를 찍을 건지, 어떤 전시를 구축할지 전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서를 통해 문장으로 쓰잖아요. 이를 구현하면서 일치시키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인테리어 스튜디오의 업무와 비슷하죠. 설계를 먼저 하고 시공을 통해 구현하는 거니까.






스톡사진과 유사 사진술 트레이닝 사이 : Honey and Tip


이기원 : 이제 세 번째 전시, Honey and Tip[각주:3]을 얘기를 해 볼까요? 이전까지는 김주원, 안초롱이라고 이름을 명시하는 두 작가 사이의 협업이었다면, 이 전시부터는 ‘압축과 팽창’이라는 팀으로 활동하게 된 것 같아요. 이때 작업 구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김주원 : 제가 계절학기 교양수업을 하던 시기였는데, 학생들한테 사진 테크닉 과제를 내준 적이 있어요. 초점거리 달리해서 사진 찍어보기 뭐 이런 거요. 그 과제 리스트를 회의때 안초롱 작가가 우연히 봤는데 본인도 그걸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안초롱 : 저는 사진을 따로 배워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테크닉적인 과제들을 처음 본 거예요. 왠지 저도 저런 미션을 수행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이걸로 같이 작업 해보자고 해서 <Tip> 부분을 구상했죠.


김주원 : 사진 기술서들을 살펴보면서 트레이닝 계획을 세웠어요. 결과적으론 트레이닝은 실제 사진 기술과는 별 상관없는 유사 트레이닝이 되었고  이런 사진의 테크닉들이 가장 잘 구현돼 있는 사진, 가장 전형적인 사진이 스톡사진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Honey> 부분이 구체화 되었죠. 


안초롱 : 어차피 아무리 트레이닝을 해도 스톡사진보다 잘 찍기는 어렵잖아요. (웃음)


이기원 : 공간이 처음부터 주어졌던 첫 번째, 두 번째 전시와 달리, Honey and Tip은 공간도 직접 섭외 한 것이라 시공의 차원에서 전시할 공간의 물리적인 특성과 컨디션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 같아요. 


안초롱 : 아카이브 봄은 건물 자체의 독특한 파사드를 전시에 활용해도 괜찮다고 해서 결정하게 됐죠. 건물이 올록볼록하고 입체감이 있어 외관에 적극적인 시공의 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기원 : 특히 달랐던 건 ‘마테리얼 북’의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마테리얼 북’이라는 개념이 시각예술에서 익숙한 게 아니라서,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주원 :  일단 전시 도록이 두 권으로 나온 건데, 하나는 유사 트레이닝 북인 <Tip> 파트이고, 다른 하나는 <Honey> 파트를 마테리얼 북 형식으로 제작한 거죠. 마테리얼 북은, 인테리어 자재들의 특성을 소개하고 어떻게 시공해야 한다는 간단한 방법도 정리된 자료집이에요. 마테리얼 북은 총 200개의 스톡이미지 중 100개는 전시장에서 반드시 물리적으로 출력해 사용하고, 나머지 100개는 책에만 들어가 있어서 전시를 보완할 뿐만 아니라 더 큰 범주에서 저희 작업에 대한 기록물이기도 해요. 계약서대로 100개의 이미지를 3층 전시장에서 다 털어내기 위해 회의를 많이 했어요. 


이기원 : <Honey> 파트에서 마테리얼 북은 핵심적인 요소였잖아요. 3층 전시장을 둘러보는 거랑 마테리얼 북과 전시장을 대조해가면서 보는 경험은 분명 달랐을 거예요. 마테리얼 북의 존재가 첫번째/두번째 작업하고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같고요. 관객을 ‘관람’의 차원이 아니라 ‘감리’의 차원에서 전시를 보게 만드는 거죠.


김주원 : 중요한 지점이에요. 어떤 키워드를 각각 입력했는지, 그 키워드로 제시된 많은 이미지 중 하나의 이미지를 어떻게 골랐는지. 마테리얼 북을 보면서 서로의 선택을 유추해보는 과정이 저희에게도 재미있었어요. 관객들이 누가 어떤 키워드를 입력해 어떤 사진을 골랐을까? 유추해 보길 기대하기도 했죠.


안초롱 : 계약을 통해 짜놓은 설계를 시행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키워드를 고르며 막연히 “이런게 나올것이다” 떠올렸던 스톡이미지들이 예상과 다르게 도출돼서 흥미로웠어요. 혹은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로 치환되기 어려운 키워드들이 있잖아요. 그런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나오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었죠. 마테리얼 북은 이런 요소들을 관객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고 봐요.


김주원 : 실제로 내가 찍지 못할 이미지나 찍어 본 적 없는 이미지를 생각하며 키워드를 입력하기도 했어요. ‘RPG-7’이나 ‘Santeria’ 같은.



구글의 데이터베이스를 떼어오기 : <Charlie Oscar / Echo X-ray>


이기원 : <Charlie Oscar / Echo X-ray>[각주:4](이하 <CO/EX>)는 압축과 팽창이 화이트큐브가 갖춰진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첫 전시라 할 수 있는데, 준비하면서 어땠나요?


김주원 : 처음 섭외를 받을 때부터 <CO/EX>에 대한 구상이 대부분 완성돼 있었기 때문에 기획전 안에서 조금은 결이 다를 것이라 예상은 했어요. 맨 처음에 홍이지 큐레이터에게 섭외 제안을 받을 때 들었던 키워드는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이었어요. 김정태 작가의 <PICO>나 강정석 작가의 <GAME 1>, 압축과 팽창의 데이터베이스 이런 것들이 데이터와 디바이스 기반인데, 그게 물리적인 공간 그중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있는 미술관의 화이트큐브에서 물리적으로 확장됐을때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하는 전시라고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저희는 구글이라는 방대한 네트워크에 우리가 얼마나 영역표시를 해서 옮겨올 것인가 정도로 유령팔에 접근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그 네트워크에서 우리의 작업으로 얼마나 잘라올 수 있을지요.


이기원 : 유령팔에서 압축과 팽창을 제외한 작품들은 대부분 관객에게 명확한 정보값을 안 줘요. 각 작가의 기존 작업들의 맥락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그나마 더듬어 볼 수 있는 작품들인데, <CO/EX>는 반대로 정보를 관객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정보를 많이 주는 거에요. 오히려 관객이 이들이 작업한 내용을 전시장에서 모두 살펴보는 게 불가능할 또는 무의미할 정도로요.


김주원 : 어떻게 보면은 강정석 작가의 사역마가 물리적인 공간으로 옮겨오고, 김정태 작가의 <PICO>도 전시장으로 내보내기 되고, 김동희 작가의 컴퓨터 안에서 모델링으로만 존재했던 사물들이 전시장에 구현되는 등의 방식이 그들이 작업으로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는 건데, 저희 작업에서 ‘점유’는 잠깐동안 전시장을 실제 사무실로 작동시킨 거였어요. 우리가 가구와 집기가 들어온 다음에 파일을 정리하는 3~4일 동안은 정말 사무실처럼 이용했어요. 컴퓨터도 있고 인터넷도 연결돼 있거든요. 우리는 가상의 사무실을 늘 하던 일처럼 실제 인테리어 스튜디오 업무의 방식과 과정으로 구현을 했죠.


안초롱 : 저는 유령팔 전반에서 룩이 너무 다르니까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장 조도부터 분위기가 너무 다르잖아요. 그래서 공간이 떨어져 있던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강정석 작가의 드로잉도 있고 해서 완전히 단절됐다고 보긴 어려웠고요.


김주원 : 도록 필자였던 윤원화씨와 인터뷰할 때 “이 사무실의 정체성이 작동을 하는 곳인지 작동하지 않는 곳인지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이걸 일종의 모델하우스나 테마파크처럼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지만 작동은 안 됐으면 좋겠다고 답변했어요.


안초롱 : 10,000개의 이미지 데이터를 전시장에 넣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자료 쭉 깔아놓는 아카이브 전시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어요. 또 어느 정도까지 사무실 느낌을 내야 하는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특히 사무실처럼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전시’같은 느낌을 줘야 하는 데 그걸 조율하는 게 제일 큰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정말 말 그대로 ‘느낌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김주원 : 예산의 한도에서 마치 우리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인테리어한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신경을 썼어요. 전시장에 있던 가구와 집기들도 평소대로 도면화 해 제작가구를 발주하고 감리보는 과정을 거쳤고,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기성가구도 구매했어요. 


이기원 :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사무실이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전시하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굳이 사무실을 구현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나요?


김주원 : 인테리어 사무실은 가끔씩 실제로 전시장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클라이언트 미팅을 할때 가령 벽지나 바닥재를 고르는 날이면 벽지나 바닥재 샘플들을 벽이나 회의 테이블에 쫙 깔아놔요.  


안초롱 : 벽에 전에 했던 포트폴리오 뽑아서 붙여놓고, 사무실도 청소 싹 해놓고.

 

김주원 : 이런 맥락에서 고민했던 건 우리가 연출한 사무실에서 어느 순간에 ‘디스플레이 완료’ 시점을 잡아서 ‘일시정지(Pause)’ 버튼을 누를 것인지 였던 것 같아요. 근데 그 타이밍이란 게 미리 정해놓을 수가 없고, 하다 보니까 나오는 거였죠.




해왔던 것들을 끊임없이 배신하기 : 협업, 공동작업, 계약서


이기원 : 제가 압축과 팽창에 대해 가진 가설 중 하나는 ‘이들이 작업을 하면서 관객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건 아닐까?’ 였어요.


김주원 : 맞아요. 서로가 서로의 관객이라서, 따로 관객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관객들이 이걸 어떻게 봐줄까? 보다는 끊임없이 서로의 눈치를 보게되는 게 있어요. 서로가 작업에 대해 만족하거나 납득이 되면 그 이외의 것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요.


이기원 : 관객을 상정한다는 게 반응을 살핀다는 것보다 이 작업이 작동을 하는 데 관객이 필요하냐의 차원이라고 봐요. 그런 면에서 압축과 팽창은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거나 ‘이렇게 해석하라’는 방향은 제시하지 않는 거죠. 


안초롱 : 사실 관객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할 수 없어요. 사진을 1,000장씩 교환하고, 10,000장을 구글 이미지로 검색하는 과정들은 관객이 전시장에 와서 다 볼 수가 없는 것들이잖아요. 작업 전체를 관람을 할 수가 없는 구조니까.


김주원 : 어떤 작가가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발전시켜 작업을 했는데, 차기작이 그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나면 맥락을 잘못 짚었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작업이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거죠. 제가 글을 쓰거나 작업을 발표할 때마다 어떤 덫에 빠져버리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협업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이번에 작업을 잘못했네 잘했네 보다는 계약의 이행여부만으로 이야기하니까. 네 번의 전시를 하면서 ‘덫에 빠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했왔던 걸 배신하는 방식으로 계속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덫에 빠진 걸 넘어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을 무너뜨리는 거죠.


이기원 : ‘해왔던 걸 계속 배신하는 작업’이라는 게 참 흥미롭게 들리네요.


김주원 : 작업을 하는 데 이상한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작업하다보면 한 거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하고 싶은 걸 못 할 때도 있어요. 앞뒤 작업의 맥락들을 고려하게 되니까.


안초롱 : 저도 개인작업과 달리 공동작업하면서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더라고요. 금방 질리는 성격인데, 공동작업에서는 계속 새로운 걸 하니까 지겹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의 계약만 서로 잘 이행하면 되는 거니까요. 


김주원 : 그런데, 왜 계속 같이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물론 각자의 작업도 보고싶다는 의미겠지만.


이기원 : 압축과 팽창의 작업은 팀으로 해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이잖아요.


안초롱 : 그렇죠.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작업들이 서로 상대가 없으면 성립 자체가 안 되죠. 그런 질문을 받을 때서야 개인작업을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지금은 작업을 같이 하지만 그게 팀 작업이라고 따로 구분되기보다 그냥 내 작업으로 느껴지거든요.


김주원 : 가령 Honey and Tip에 있었던 코인 야구장에서 발사되는 야구공을 촬영하는 작업은 제가 오래 전부터 혼자 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Honey and Tip에서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거기서 풀었죠. 제가 개인적으로 실험해보려고 했던 것들이 온전하게는 아니지만 팀 작업을 통해 구현되고, 그 욕구를 해소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안초롱 : 저도 주원씨처럼 제 개인 작업의 서사 안에서 맞지 않는 아이디어들이 있어요. Honey and Tip 때 특히 <Honey> 파트를 즐겁게 했거든요. 사진을 여러 매체에 프린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전시를 통해 많이 해소된 것 같아요.


이기원 : 말하자면 ‘압축과 팽창’은 각자의 부계정이네요?


안초롱 : 그렇죠. (웃음) 보통 ‘내 사진, 니 사진’식으로 생각하는 저작권이라던가 작업의 소유권에 크게 개의치 않아서 가능한 것 같아요.


김주원 : 협업 작업 내에서 아이디어의 소유권을 물어오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구분을 할 수가 없어요. 처음에 한 사람이 제안을 했더라도, 그 조율 과정이 촘촘하게 교환되어 마지막 단계에서는 뭐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구분 할 수가 없어요.


안초롱 : “이게 누구 아이디어예요?”라고 묻는 게 좀 웃긴 거 같아요. 누구 아이디어인지 구분해서 평가하려는 걸까요?


이기원 : 작업 전반을 놓고 세세하게 누구 아이디어인지 소유권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두 작가가 협업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주로 맡거나 각자의 관심사가 어떻게 분화되는지는 짚어볼만 할 것 같아요. 


안초롱 : 확실히 서로 고민하는 지점이나 방향이 다르긴 해요. 저는 의견을 낼 때도 말도 안되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내면 김주원 작가가 그걸 텍스트로 정리를 해주거나 다듬어 주는 편이에요. 또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도 저는 간단하고 압축적인 뭔가만 보여지길 원하는데, 김주원 작가는 좀 더 풀어서 설명하려는 게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이런 두 가지가 절충되서 나오는 결과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김주원 : 초롱씨는 딱 핵심적인 말만 압축적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핵심적인 말을 하려면 달궈서 말을 풍성하게 만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안초롱 : 그런 면에서 압축과 팽창이라는 이름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요. 저는 압축하려고 하고, 주원씨는 팽창시키려고 하죠. (웃음)


  1. ⟪Open-End(ed)⟫(계남정미소, 2016) 안초롱, 김주원의 첫 협업이었던 ⟪Open-End(ed)⟫에서 이들은 각자의 사진 1,000장을 교환하고, 이를 재료로 삼아 각자의 개인 작업(안초롱: <피동사물>, 김주원 : <밝은 세계>)에서의 방법론을 적용해 사진을 분류/재구성했다. 전시장에는 각자의 사진에 달았던 각주 중 겹치는 것을 모아 문장을 쓰고 그 순서대로 사진을 나열한 작업을 비롯해 커튼, 그릇, 접착 시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프린트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또 김주원의 사진으로 안초롱이 작업한 <피동사물> 세트, 각자의 데이터 500개를 흑백으로 변환한 뒤 박스에 담아 뒤섞은 작업 등이 설치됐다. [본문으로]
  2. ⟪압축과 팽창⟫(지금여기, 2016) ⟪Open-End(ed)⟫에서의 협업을 지금여기로 옮겨와 단독 전시 꾸몄다. 서로 교환한 1,000장의 이미지를 각각 SF, 멜로, 판타지와 같은 장르(안초롱)와 노이즈, 노출 부족 등 사진의 기술적 오류(김주원)로 분류한 하위 폴더 작업을 추가했다. 이때부터 현재와 같은 형식의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본문으로]
  3. ⟪Honey and Tip⟫(아카이브 봄, 2017) 김주원, 안초롱의 두 번째 전시 제목에서 따온 ‘압축과 팽창’을 팀명으로 내걸고 선보인 첫 전시. 아카이브 봄의 공간을 각각 사진술 일반에 관한 트레이닝인 파트와 키워드 검색을 통해 스톡이미지를 구매하고 이를 자재로 활용한 파트로 나눴다. 파트는 김주원이 ‘결정적 순간’을 목표로 코인 야구장에서 날아오는 공을 찍은 사진 1,000장과 안초롱이 ‘대상의 본질을 담기 위해’ 100일 동안 촬영한 100장의 극락조 사진 작업 등을 선보였다. 파트에서는 각자 100개씩 고른 키워드를 통해 구입한 스톡이미지를 마테리얼 북을 제작/참조해 시트지, 섬유, 아크릴, 액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출력해 전시장을 시공했다. [본문으로]
  4. ⟪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8) ⟪유령팔⟫에서 선보인 는 압축과 팽창의 4번째 프로젝트다. 김주원과 안초롱은 각자 생산한 200장의 사진 데이터를 촬영시간 순으로 한 폴더로 취합하고, 이를 구글 이미지 검색에 입력해 한 사진당 50개씩 총 10,000장의 이미지를 수집했다. 또한 전시장은 가상의 인테리어 사무실로 구성해 수집한 유사 이미지를 비치된 복합기로 출력하고, 200개의 샘플 북을 제작/비치했다. [본문으로]
2018. 7. 31. 14:45  ·  inter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