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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100명의 딸과 10명의 엄마> 전시전경, 이미지 제공 : 타이포잔치


<타이포잔치 2017 : 몸>(문화역서울284, 2017)의 주제전 중 하나인 <100명의 딸과 10명의 엄마>에 도록 필자로 참여했습니다. 짤방의 재생산에 관해 짚어보았습니다. 도록은 전시장 배포용으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도록 이미지 제공 : 더블디




짤방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글 이기원


하나의 짤방이 탄생하고, 주목을 받고, 사라지거나 잊혀지는 과정과 그 속성은 싸구려 의복(Poor Cloth)의 그것과 무척 닮아있다. 많은 속성을 공유하는 둘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국내에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2009~2010년 사이, H&M 역시 국내에 런칭(2010년 5월)됐다-를 기점으로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과거 ‘싸구려 의복’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시장과 소규모 쇼핑몰의 옷-이른바 ‘동대문 의류’-들은 국내에 자라(Zara)나 H&M과 같은 해외 SPA 브랜드가 런칭/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위협받기 시작했고, SPA 브랜드들은 동대문보다 훨씬 더 많은 옷들을 더 저렴하고 빠르게 선보이면서 ‘싸구려 의복’의 새로운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들 역시 동대문 의류와 많은 속성들을 공유하지만, 동대문보다 훨씬 빠른 속도와 많은 양이 생산/유통된다는 점에서 몇 가지 차이점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조금만 타이밍을 놓쳐도 전에 봐둔 옷을 매장에서 찾을 수 없다. 오늘 매장에서 본 옷을 내일 다시 갔을 때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오래 사용/지속될 것이 아니기에 대체로 조악한 품질을 지녔으며 누가 만들었는지 파악되지 않고, 그 형태나 디자인 역시 기존의 어떤 것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그 일부를 변형시킨 경우가 많다. 또한 철저히 유행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명력 역시 짧다. 


짤방과 싸구려 의복은 이처럼 많은 속성을 공유하지만 분명 근본적인 차이 역시 존재한다. 아무리 옷이 유행을 타더라도 그것이 ‘유행에 의해서만’ 생산되진 않지만, 짤방은 온전히 유행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다. 누군가 특정한 짤방을 유통시키고 싶어한다고 해서 그것이 의도대로 널리 퍼져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짤방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짤방을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이를 소비한다.  ‘동대문 의류’에 비유될 수 있는 초기 짤방들은 디씨와 같은 게시판 형태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통/소비되면서 그것을 검색해 되돌아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때만 해도 짤방은 몇 몇 커뮤니티가 ‘주생산지’로 기능해왔기에 디씨(dcinside)의 ‘힛갤’처럼 대세 짤방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명확하게 존재했다. 이들 중 어떤 것들은 ‘합성 필수요소’로 여겨지며 무수히 재생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들 짤방은 각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코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자신의 유전적 형질을 가질 수 있었고, 그 형질을 물려받은 짤방 역시 존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커뮤니티 게시판의 짤방들은 주로 영화 포스터나 광고를 비롯한 기존의 이미지에 각자의 필수요소들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생산됐고, 대부분 해당 커뮤니티에서 유행하거나 통용되는 코드를 이해하고 있는 사용자만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인 경우가 많았다. 가령 대표적 합성필수요소였던 ‘개죽이’, ‘개벽이’, ‘고자라니’, ‘적절한 김대기’ 등을 떠올려 보면 그것의 이미지로부터 읽어낼 수 없는 코드가 존재했고, 덕분에 당시의 짤방들은 순전히 디씨 내부에서, 혹은 디씨의 코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유통/소비됐다는 점에서 당시의 짤방은 마치 사투리나 은어처럼, 특정 영역에서만 사용되는 다소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의 서브컬처처럼 기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짤방의 스마트폰 등장 이후 짤방의 주된 활동무대가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타임라인으로 옮겨오면서 짤방이 활용되고 재생산되는 방식은 크게 변화한다. 타임라인은 SPA 브랜드의 출시 주기처럼 빠르고 촘촘하게 이미지를 쏟아내고, 또 흘려보낸다. 과거의 짤방이 포토샵과 같은 합성기술을 갖춘 특정한 사람들만이 생산할 수 있었다면, 타임라인의 짤방은 주로 기존의 이미지에 그것의 맥락을 뒤엎는 텍스트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더 이상 특별한 합성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는 사진을 쉽게 합성/보정하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의 등장과도 연결된다) 게시판의 짤방은 그것이 유통되는 각각의 커뮤니티의 성격이 전제된 상황에서 만들어졌기에 해당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는 코드를 통해 ‘웃긴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모두에게 열려있는 타임라인의 짤방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웃긴 이미지’인 동시에, 마치 이모티콘처럼 작성자의 상황/감정을 표현하거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적 특성이 부각된다. 기본적으로 커뮤니티 게시판의 소통방식이 어떤 명확한 독자와 관객이 상정된 것이었다면, 타임라인은 특정한 관객을 두기 보다는 독백하듯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는 장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의 짤방만으로는 의사전달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타임라인의 짤방들이나 이모티콘/이모지로는 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움짤(움직이는 짤방)은 텍스트 없이도 어떤 메시지나 의미를 수월하게 전달할 수 있기에 그 언어적 속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이미지로 작동하며 이모지(emoji)나 이모티콘처럼 사용된다. 이같은 흐름에 맞춰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GIPHY와 Riffsy와 같은 gif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각자의 감정이나 상황에 맞는 움짤을 검색해 댓글창과 트윗에 삽입하는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GIPHY에 업로드된 대부분의 움짤들은 영화나 TV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홈비디오 등의 한 장면을 잘라낸 형식을 띠고, 타임라인의 짤방 역시 보도사진이나 광고 이미지 등을 가져와 그 맥락을 뒤트는 텍스트와 결합돼 사용된다. 이처럼 타임라인의 짤방들은 예전처럼 탄생/제작되기보다는 ‘발견’ 또는 ‘선택’되는 것에 가깝다. 예컨대 하나의 이미지에 사용자들이 서로의 드립력을 선보이며 캡션을 붙이는 ‘제목학원’의 경우, 각각의 캡션은 모두 이미지와 결합해 하나의 짤방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렇게 생산된 짤방들은 모두가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여기서의 원본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아직 ‘짤방이 되지 못한 것’이기에 이것이 자신으로부터 탄생한 것들에게 (짤방으로서의)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타임라인의 짤방들은 필수요소들을 물려받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재생산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어떤 계보와 위계를 가진 온라인의 서브컬처이기 보다는 하나의 언어이자 타임라인을 흐르게 만드는 연료로 작동하며 동시대 이미지 환경의 일부로 작동한다. 마치 이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SPA 브랜드의 옷을 피해갈 수 없는 것처럼.


도록 이미지 제공 : 더블디





2017. 11. 10. 15:56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