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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낙씨를 데려다 키운 서역인,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5~

낙씨를 키운 서역인은 로마제국 출신이다. 훈족 아틸라 왕이 침공하였을 때 노예가 되어 고대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훈족 아틸라왕은 370년 경에 유럽에 처음 등장해 441년 경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렸다. 450년 경에 고대 중국에 끌려갔던 서역인은 우여곡절 끝에 백제로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한성백제 460년 경에 경기도 의왕 취기산의 모락산성을 짓는데 강제동원됐다. 이후 모락산성 근처에서 살다가 낙씨의 탄생을 지켜보고, 데려다 키우게 됐다. 465년 8월 25일이었다.


까마귀 바위와 적송,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5~

까마위 바위는 낙씨의 무덤에서 5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까마귀 바위 앞에는 적송이 곧게 뻗어있다. 대체로 뾰족한 형상이며 아래로 갈수록 넓어진다. 낙씨가 태어날 때 까마귀가 이 바위에 앉아서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까마귀 바위로 불렸으며, 바위 옆면에는 북두칠성이 역방향으로 새겨져 있다. 북두칠성과 까마귀는 낙씨의 주요한 상징물이다. 



한성 백제시대부터 전해지는 전설에는 이곳이 까마귀가 쉬어 가던 곳이라는 설이 있다. 모락산에는 다양한 낙씨의 전설이 남아있는데, 낙씨가 태어날 때 까마귀가 날아들어 울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까마귀가 날아들어 앉았던 바위는 까마귀 바위라고 불린다. 또한 낙씨가 태어날 때 천둥번개가 친 후에 바위에 낙씨를 품은 상자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낙씨는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후에 까마귀가 날아들어 낙씨의 탄생을 축하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곳은 떨어질 낙, 까마귀 오 자를 사용하여 오낙산(烏落山)이라고 명명되었다. 하지만 오낙산은 발음하기 어려워 모락산으로 변형됐다. - 작가노트 중에서


윤태준의 ‘북두칠낙’ 시리즈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문헌을 통해 그것이 존재했었다고 알려져 있는 낙씨(諾氏)를 추적한다. 작가는 낙씨 탄생설화를 바탕으로 이들이 모여 살았다는 경기도 의왕시의 모락산을 오르내리고, 박물관을 들락날락하며 마치 고대사 연구자처럼 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산신당 근처의 암각화와 아카이브,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5~




낙씨의 겨드랑이에 있는 깃털과 모락산 근처에서 발견된 까마귀 깃털,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5~



남두육성과 낙씨의 발에 새겨진 남두육성,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5~



낙씨의 등에 새겨진 북두칠성 점 , 잉크젯 프린트, 가변크기, 2015~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믿게 되는가 : 윤태준 <북두칠낙>


포토닷 2016년 5월호

글 이기원


길거리에서 마주친 돌멩이는 발에 치이며 굴러다니지만, 어떤 돌멩이는 손끝 하나 댈 수 없는 유리관에 놓여 유물이 되기도 한다. 만약 길거리의 돌을 박물관에 몰래 가져다 두면 어떻게 될까? 고고학자나 박물관 학예사가 아니고서야 이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고, 대부분의 관람객은 그 돌에 어떤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돌멩이든 스스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돌멩이를 유물로 만들어 주는 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외부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돌멩이’를 ‘사진’으로 바꾸면 어떨까? 물론 돌과 사진을 두고 유사점을 찾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어떤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연결될 수 있다. 사진은 때로 그 가벼운 속성 때문에 줏대 없이 나풀거리며 의미가 뒤바뀐다. 이처럼 우리가 윤태준의 ‘북두칠낙’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낙씨에 대한 연구 아카이브’가 아니라, 사진의 ‘줏대 없음’과 그것이 어떻게 증거가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역사에서 잊혀져 있는 부분을 다시 내세우는데 관심이 있어요. 처음엔 성씨설화에 관심을 가졌고, 자연스럽게 제 성인 윤씨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려고 했죠. 그래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윤씨설화 유적을 찾아갔는데, 이걸 유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거에요. 연못 하나, 무슨 산 하나 그게 전부인 거죠. 문득 이게 다른 장소에도 다 통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사를 하다 보니 지금은 없어진 성씨 중에 ‘낙씨’가 있더라고요. 이게 문헌 상으로만 남아있는 건데, 떨어질 낙()하고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발음상 ‘낚시’랑 유사한게 재밌기도 하고요(웃음). ‘북두칠낙’은 이런 사실과 가상을 맞붙여 제가 구상한 세계관으로 낙씨에 대한 설화를 써내려 가는 작업이에요.”


모락산에서 찾아낸 그럴싸한 기록사진과 관리번호를 새긴 돌멩이, 박물관의 유물 이미지는 형식상 아카이브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낙씨의 겨드랑이에 있는 깃털’처럼 낙씨의 신체를 찍은 (다소 비현실적인)사진들은 이 모든 것이 농담이었음을 고백하는 것 같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관객은 ‘북두칠낙’을 아카이브나 다큐멘터리로 봐야 할지, 혹은 온전한 픽션으로 치부해야 할지 혼란에 빠져든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진이 아카이브에 들어가면 그 자체로 하나의 증거물이 된다고 보는데, 그걸 비틀고 싶었어요. 관객이 이걸 사실이라고 느끼면서도 또 어느 정도는 의심스러운 느낌도 받았으면 해요. 이런 측면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전시에서 작품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였어요. 실제와 허구를 자연스럽게 섞으면서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실제 공간에 설치를 해봐야 감이 잡힐 것 같아 학과 갤러리에 테스트 삼아 전시를 꾸렸죠.


이처럼 ‘북두칠낙’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완전한 진실도, 허구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부유한다. 진실과 거짓이 서로의 모습으로 위장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문헌과 기록에 근거한 사실이지만, 또 어떤 부분은 작가가 꾸며낸 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태준이 ‘북두칠낙’을 통해 짚어내려는 건 진실과 허구를 판별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어떤 소재를 자신이 꾸민 세계관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나아가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사진을 믿게 되는지 탐구한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위서(魏書)나 환단고기(桓檀古記 )와 같은 책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역사를 어떻게 사실로 증명하는지 참고했어요. 특히 환단고기의 경우 이를 강력하게 믿는 분들이 사진을 근거로 내세우는 게 신기했어요. 황당하기도 하고. 그런 맥락에서 UFO나 귀신 같은 것들도 사실 그것이 찍혔다고 주장하는 사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논의 자체가 없었을 것 같거든요. ‘북두칠낙’ 역시 제가 마음대로 역사 이미지를 재가공한 건데, 이를 통해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게 흥미로워요.”


윤태준이 그리는 ‘북두칠낙’의 최종 결과물은 전시가 아니라 책이다. 이미지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전시의 특성상, 사진과 텍스트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책의 형식이 그가 의도한 맥락을 보여주기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시는 작업을 컴팩트하게 보여주는 ‘프리뷰’로만 머물 수 있죠. 하지만 책은 내러티브를 명확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의도하는 바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은 사진집이라기보다는 역사서 같은 단행본에 가까운 형태겠죠. 낙씨열전 같은 가상의 이야기, 장소에 대한 기록, 낙씨를 데려다 키운 것으로 상정한 외국인의 연보 등을 써뒀어요. 현재 70~80%정도 완성됐고요. 이게 어떻게 보면 소설 아닌 소설을 쓰는 거죠. 특히 모락산성 관련해 인용한 글은 검증된 사실인데도, 막상 다른 글이랑 함께 배치하면 그것마저도 픽션처럼 보여서 신기해요. 역사라는 게 생각보다 참 말랑말랑한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떤 사실이 어떤 책에 실렸다면, 또는 이를 증명하는 사진이 존재한다면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윤태준은 이처럼 ‘그럴싸한 느낌’을 주는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실재와 허구를 유머러스하게 중첩시켜 믿어봄직한 느낌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결국 ‘북두칠낙’이 일종의 ‘퓨전 사극’같은 팩션(Faction) 형식으로 작가가 꾸며낸 세계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어떤 사진을 볼 때 그 형식이나 권위, 맥락에 너무나 쉽게 속는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윤태준(Yun Taejun)

1987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주로 특정한 사물이나 도구의 속성을 차용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또한 사진 매체의 특성인 사실성과 반대로, 거짓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진의 속성에 주목한다. 역사적인 사건를 사진 이미지를 통해 주관적으로 재현하고, 이를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의 증거로 활용하며 신빙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북두칠낙> 전시전경


<북두칠낙> 전시전경

2016. 9. 26. 16:44  ·  inter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