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비디오 아트, 그 경계에 대해 묻다
<Cinema Killed The Video Star>
175 갤러리 / 2014. 2. 18 - 2. 28
경향 아티클 2014년 3월호
글 이기원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예술가와 작품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회화을 기반으로 한 비디오 아트로 볼 수 있는 요소도 갖추고 있다. 이는 외적인 조건이나 형식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적으로도 비디오 아트적인 속성이 드러나기 때문인데, 과연 우리는 영화와 비디오 아트가 구분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175 갤러리에서 열린 <Cinema Killed The Video Star>전의 세 작가(강수연, 김영남, 홍승범)는 비디오 아트와 영화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이 전시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강수연 작가의 <외계인과 소녀>는 작품이 상영되는 공간이 관객이 작품을 수용하는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물음을 던지며, 김영남 작가는 60년대 이후의 우리나라 영화, 소설의 부분들과 자신이 채집하고 연출한 이미지를 결합한 <영자경아명희명숙영희>를 통해 영상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갖는 괴리를 드러낸다. 작가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기록된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홍승범 작가의 <같이 살아간다>는 어떤 단체관광객의 풍경으로부터 철거민 대책 사무실과 재건축지구 철거현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건들을 병치시키면서 카메라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이 엇나가는 지점을 이야기한다.
이들 세 작품은 그들 각자의 형식과 구성을 통해 각기 다른 지점에서 영화와 비디오 아트의 경계를 넘나든다. 관객은 이 두 장르가 교차하고 구별되는 지점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이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게 된다.
+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이 전시 서문을 보았을 때, 나는 문득 어렸을 적 쓸데없이 궁금해했던 것들 중 하나였던 ‘밀크커피’와 ‘커피우유’의 어휘적 차이점에 대한 고민이 떠올랐다. 밀크커피와 커피우유는 단어 자체는 순서만 바꿨지만 그 실체는 확연히 다른 경우이지만, 비디오 아트와 영화의 차이점은 그 실체가 전혀 구별되지 않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또한 어떤 방향에서 작품을 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도 달라진다.
기사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영화 <셜리에 대한 모든 것>은 내게 영화로서는 무척이나 재미없었지만, 이를 비디오 아트라는 측면에서 생각했을땐 흥미로운 작업이였기 때문이다. 같은 영상을 두고 이런 평가가 가능한 것은 그 전제를 어디에 두느냐에 있는데, 아무래도 영화에 대해서는 ‘재미’ 즉 몰입을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고, 영상 작품에 대해서는 몰입도 보다는 아이디어나 표현력에 초점을 맞춰 보게 되는 것이 그 원인이다. 그렇기에 이번 <Cinema Killed The Video Star> 전의 세 작품은 오히려 화이트 큐브의 전시장에서 보았기 때문에 좀더 재미있게 느껴진 ‘단편영화’였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밀크커피와 커피우유의 예에도 적용된다. 이 두가지 음료의 맛을 디테일하게 비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전제가 자판기 종이컵인지, 우유팩인지에 따라 그것이 '우유가 들어간 커피'가 되거나 '커피맛이 나는 우유'가 될 수 있는 것 뿐이다. 그래서 영화와 비디오 아트 역시 그것을 바라보는 전제는 구분지을 수 있지만, 영상 그 자체를 두고 구분하려는 것은 밀크커피에서 커피우유 맛이 난다거나, 커피우유에서 밀크커피맛이 난다고 불평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