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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 대한 집착과 비물질에 대한 탐닉

디자인 스튜디오 ‘물질과 비물질’의 김종소리와 황은정 

포토닷 2015년 8월호

글 이기원


사진전 포스터나 사진집, 도록, 리플렛부터 사진잡지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연관된 시각물의 표지에는 이른바 ‘대표 이미지’라 불리는 사진 이미지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대표 이미지’라는 것이 정말 어떤 전시나 작품 시리즈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사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사진을 이야기하는데 더 효과적이지는 않을까? 

‘지금여기’의 두 전시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과 <타임라인의 바깥> 그리고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열린 홍진훤 개인전 <마지막 밤(들)>의 공통점은 ‘사진 없는 (사진전) 포스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작업의 배후에는 이를 담당한 신생 디자인팀 ‘물질과 비물질’이 존재한다.

황은정과 김종소리 두 사람으로 구성된 ‘물질과 비물질’은 물질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글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을 생산하고, 디자인을 통해 비물질적인 것을 다시 물질화한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황은정과 김종소리의 명함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김종소리 :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글을 쓰면서 느꼈던 아쉬움 중 하나는 글 쓰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치열하지만, 디자인까지 완전히 자신의 영역에서 작품화 시키는 작가가 (적어도) 국내에는 없는 것 같다. 이러한 갈증이 계기가 되었고, 직접 내 책을 디자인해 보면서 ‘아브락사스’라는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그러던 중 황은정과 만나 연애를 시작할 무렵 우연찮게 디자인 잡지 ‘CA’에서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국내 디자인 환경과 해외 디자인 작업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실무적인 것은 혼자 익히거나 황은정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 시대에선 콘텐츠의 진지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형태라고 본다. 그렇기에 ‘디자인 하는 글쟁이’의 위치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아주 솔직한 이유로는, 경제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글을 쓰는 것과 비교해 디자인이 더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잡지사를 그만두고, 황은정과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인 ‘물질과 비물질’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물질과 비물질’은 디자인 스튜디오나 출판사라기보다는 우리 두 명이 각자 만들어내는 작업물을 하나로 묶는 ‘아카이브’라고 보는 편이 좀더 정확할 수 있다. 그래서 디자인을 계속할지, 혹은 디자인을 쉬면서 글 쓰는데 집중할지 향후 어떤 형태로 ‘물질과 비물질’이 바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황은정 : 사실 입시 때 1지망으로 쓴 건 공예과였다. 하지만 안전하게 썼던 디자인과만 합격하면서 본의 아니게 디자인을 전공하게 됐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딱히 과제 이외의 재밌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김종소리를 만나면서 ‘아브락사스’의 디자인을 한다든지, 연재하는 글의 표지를 그린다든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자연스럽게 작업할 기회가 생겼던 것 같다.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김종소리 :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의 앨범명인 ‘물질세계에서의 삶’을 따온 다큐 영화를 보고 반했다. 어느 날 내가 하는 작업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까를 고민하다가. 물질세계에서 얻은 소재를 가져와서 영감을 받고, 그것을 비물질적인 이야기, 생각으로 만들어서 이를 다시 물질화시키는 과정이 순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성향을 봐도, 황은정은 물질적인 것을 좋아한다. 뭔갈 사고 수집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반면 나는 남들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비물질’의 역할에 어울린다고 봤다. 자연스레 황은정이 ‘물질’을 맡기로 했다.


황은정 : 김종소리가 굳이 역할을 그렇게 나누더라. (웃음)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황은정 : 처음부터 역할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주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개념적인 면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종소리의 역할이다. 손으로 실제 작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시각화의 영역은 주로 내가 맡는다. 하지만 명확하게 나눠서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작업에 따라 서로의 역할이 겹치거나 섞이는 부분도 있다. 


김종소리 : 기본적으로 역할을 나누긴 했으나 실제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섞이는 부분이 존재한다. 클라이언트가 작업 재료를 던져주면, 이를 연결하고 조합해 발전시키는 역할은 내가 했다. 그런데 여러 일이 동시에 들어오면 명확하게 분담하기가 쉽지 않아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웹 관련 작업은 내가 모두 맡아서 하지만 나머지 영역은 완전히 분리돼 있진 않다.     


디자인 내에서 가장 관심있고, 자신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김종소리 : 아무래도 정체성이 글 쓰는 사람이다보니 텍스트의 형태를 다루는 본문 조판 작업이다. 아직 몇 번 해보진 못했지만, 책자나 리플렛 작업을 맡을 때가 제일 좋다.    


황은정 : 텍스트보다는 이미지 작업에 관심이 있다. 굳이 꼽자면 그래픽 분야에 좀더 파고들고 싶다. 김종소리가 텍스트 관련 작업을 잘 맡아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지금여기’ 개관전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 포스터


‘물질과 비물질’이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상봉동의 신생공간 ‘교역소’의 로고 및 <상태참조> 포스터 디자인을 맡았을 때부터인 것 같다. ‘교역소’와의 작업을 비롯해 ‘지금여기’에 이르기까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황은정 : ‘교역소’ 일은 알고 지내던 친구의 소개로 하게 됐다. 그러면서 ‘교역소’를 주축으로 최근 생겨난 신생 공간들이 모여 회의하는 자리에서 ‘지금여기’를 운영하는 김익현, 홍진훤 두 작가를 알게 되어 ‘지금여기’의 공간 로고와 개관전 포스터, 리플렛 디자인을 진행했다. 앞으로도 이 두 공간과는 지속적으로 협업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여기 개관전 포스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사진전 포스터라면 사진 이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전의 포스터는 그런 면에서 참신하게 느껴졌다.


김종소리 : 전시에 참여하는 14명 작가들을 대표하는 한 장의 사진을 고르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14명의 사진을 모두 보여주려다 보면 결국 어떤 사진도 못 보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포스터를 통해서는 사진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해 14장의 사진을 모두 겹쳤다. 여기에 전시 제목인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에 착안해 각각의 사진 위에 장님처럼 눈을 감고 코끼리의 부위를 나눠 그리고 이를 다시 합쳐 최종 포스터가 탄생했다. 

테두리에 꺾쇠 형태로 공간 이름과 로고가 들어갔던 건 카메라 뷰파인더를 형상화한 것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시선은 오로지 사진가만이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포스터 역시 그런 시선이 반영될 수 있게 했다. 또한 이는 시각적으로도, 의미상으로도 ‘지금여기’의 지향점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황은정 : 카메라나 필름, 뷰파인더와 같은 요소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무척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되도록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을 택했다. 꺾쇠 형태를 통해 뷰파인더를 시각화한 방식은 ‘지금여기’에서 앞으로 선보일 시각물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 같다.   



홍진훤 사진집 <마지막 밤(들)> 표지 및 내지


홍진훤 작가의 개인전 <마지막 밤(들)>의 포스터와 사진집은 사진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그래픽적 요소로 구성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했던 것 같다.


김종소리 : 작가가 처음부터 ‘사진을 내세우지 않는 포스터’를 의뢰했다. 그래서 작업을 대표하는 그래픽 이미지를 구상하기 위해 작가와 이야기(계기, 작업과정, 의도 등)를 많이 나눴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표류하던 중 김익현 작가가 휴게소의 위치를 시각화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이에 홍진훤 작가는 모스 부호를 활용하는 의견을 냈다. 이를 조합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포스터가 탄생했다. 

사진집 같은 경우도 사진 선정부터 챕터를 나누고, 맥락을 구성하는 것까지 전적으로 내가 맡았다. 기본적으로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최대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사진 속 장소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진을 고르고, 책 표지나 내지 중간에 등장하는 그래픽도 모스 부호를 활용해 암호처럼 구성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진집이 개별적인 작품들을 단지 한 권으로 묶어낸 ‘작품집’이기보다는 책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작동하길 의도했다. 그래서 판형도 독자가 보기 편하게 세로로 하고, 제본방식도 책이 쫙 펴질 수 있는 PUR 제본을 택했다.



박진영 작가 홈페이지

박진영 작가 홈페이지도 제작했다. 작가 홈페이지 제작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나 소감은?


김종소리 : 작업은 한 달 조금 넘게 걸렸다.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의 역할을 하는 사이트였기 때문에 작가는 누구든 사진과 글을 쉽고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디자인을 요청했다. 내 생각에도 그래픽 요소가 배제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한 작가를 대표하는 그래픽 이미지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작품을 보여주는 역할에만 집중했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한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오랫동안 들여다 본 건 난생 처음이었다. 모든 작품과 평문이 홈페이지에 실리다 보니 계속 감상하고 읽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작가를 이해하게 된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진과 관련된 작업을 할 때, 특별히 고려하는 사항이나 다른 디자인 작업과 차이가 있다면?


김종소리 : 어떤 전시를 대표하는 시각물로 포스터가 존재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이른바 ‘대표 이미지’라는 것이 정말 이 전시 자체를 대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관객에게 전시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더 친절하게 소개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사진 자체만을 보여주기보다는 디자인적인 요소가 개입돼 전시 전반의 느낌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사진 한 장이 작업 전체를 대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관객 입장에서는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질과 비물질의 지향점은 무엇이고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김종소리 : 얼마 전부터 ‘디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있다. 디자인이 딱히 시각적인 결과물에 머무는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상하고 계획만 짜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 내린 결론은 ‘협업’이다. 비유하면, 디자이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클라이언트)는 아니지만, 지휘자와 협업해 시각적인 부분에서의 지휘자와 각 악기 연주자(실무자) 사이를 조율하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황은정 : ‘아브락사스’의 디자인을 하면서 그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기회가 된다면 매거진 아트디렉팅을 맡아 해보고 싶다. 


김종소리 : 나의 숙원사업(?)은 장편소설이다. 그저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까지 모두 맡아서 해보고 싶다. 또한 사진과 관련해서는 디자인과 사진이 함께 진행될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사진 제공 : 물질과 비물질 waterain.kr





지난해 12월 상봉동 ‘교역소’에서 열린 <상태참조> 포스터



올해 6월 <상태참조>의 후속 행사로 열린 <수정사항> 포스터



2016. 9. 21. 17:25  ·  inter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