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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S#02, Archival pigment print, 100×100cm, 2010

오래된 골목에 대한 증명사진

김영경 ‘보이지 않는 도시들시리즈

포토닷 2015년 7월호

이기원


우리는 흔히 어떤 사진을 보면 그것이 무엇을 찍은 것인지 판단하고, 다음에는 그것이 어디에서, 언제 찍은 사진인지 궁금해 한다. 덕분에 일반적으로 사진에는 사진이 보여주는 이상의 다양한 정보들이 외부에서 따라붙는다. 그것이 찍힌 장소나 시간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작용하며, 사진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도 의미는 변화한다.

이전작군산 3부작 비롯해 이번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르기까지, 김영경의 풍경사진들은 사진 표면에서 드러나는 골목길의 밤풍경 외에는 특별히 어떤 요소도 부각되지 않는다. 그곳이 어떤 지역의 골목인지,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사진을 찍은 당시의 계절은 언제였는지도 명확하게 알아채기 힘들다. 사실 이보다 작가의 풍경사진이 갖는 가장 특징은 공간을 마주한 작가의 시선조차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 골목길의 모습은 작가가 그저 뜨내기 이방인으로서 골목을 사냥하듯 포착한 것인지, 혹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자신의 추억이 투영된 동네 골목인지도 없게 오롯이 골목길 자체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그녀의 작업은 오래된 공간에 대한증명사진 같은 역할로 작동한다.

김영경의 이번 작업보이지 않는 도시들 전시되고 있는 연희동 B.CUT 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동안의 작업을 살펴보면, 오래된 도시나 어떤 공간의 풍경을 집요하리만치 끈질기게 다뤄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이러한 소재를 파고드는 이유가 있다면?


이유를 명확하게 규정지을 없다. 다만 나는 도시와 같은 어떤 공간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관찰하는 좋았다. 어렸을 적에도 유독 관찰일기 쓰는 것을 열심히 했다. 관찰일기 덕분에 선생님에게 칭찬 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고 사진을 배우기 전에는 지리학을 전공하면서 지역이나 공간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또한 유년기에는 유독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프랑스풍의 양옥에서 전통 한옥까지 다양한 형태의 집에서 거주하게 되면서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그렇기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같은 경험들은 나의 작업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덕분에 사진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관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진 매체 자체에 대한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작업을 구축하고 진행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질문에 이어, 유독 밤에 찍은 사진이 많다. 밤의 풍경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림을 좋아해서 회화적인 색감에 관심이 많다. 또한 작업의 특성상강력한 피사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색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관객의 시선을 공간 자체에 집중시키려면 낮보다는 밤에 찍은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밤에는 인공조명이 가까이 있는 곳과 멀리 있는 곳과의 노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런 지점을 활용하면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사진을 만들어낼 있다. 더불어 명암의 대비를 극명하게 포착할 있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특정 시기에 몰아서 작업을 하지 않고 다른 작업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틈틈이 찍은 것이라 들었다. 시리즈는 언제,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작업의 단초가 것은 2009 북촌의 가회동 60에서 번째 개인전인 <blend-polis>전이 진행 중이던 어느 저녁 문득 전시장 근처 산책을 나섰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관광지로 붐비기 전이라 분위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오래된 골목길 마주하게 되었고, 오래된 공간만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번 시리즈를 시작한 지는 대략 6 정도 지난 같고, 4~5 정도 집중적으로 작업했던 같다.


 

장소의 존재가 부각되는풍경사진 범주에 속하면서도, 지역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김영경의 작업 전반에서 드러나는 특징이라 있다. 이와 관련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공간들을 찾고 고르는 기준은 어디에 두고 있는가?


일단 작품에서 공간 자체의 모습에만 집중하기 위해 지역성을 배제하려다 보니 어떤 랜드마크나, 관광지화된 유명한 지역은 찾지 않게 된다. 주로 작업했던 곳은 서울에서는 북촌이나 창덕궁 정도가 있고, 경주와 안동, 전주 지역의 구도심을 찾아다녔다. 작업 초기에는 주로 직관에 의지해 골목길을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골목길 사진을 하나의 시리즈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즉흥적인 접근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연구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인문학이나 도시, 건축 관련 책을 많이 읽으면서 영감을 받았다. 다만 작업의 주요 소재가 되는 골목길의 경우 관광책자에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온라인 지도에도 정확히 수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책에서 다루는 골목길의 경우, 상세한 주소가 나오기보다는 ‘00 골목길정도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일반적이라, 실제 골목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직접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아무리 철저하게 사전 조사를 하더라도, 막상 공간을 찾아가면 지도나 사진에서 봤던 것과 달라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시리즈를 진행해오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인가?


경주를 자주 갔었다. 보통 번에 작업에만 매달리기 보다는 여러 프로젝트와 작업들을 동시에 틈틈히 진행하는 편인데, 경주는 한번 내려가면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씩 혼자 머무르며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골목을 누비고 다녀야 하기에 차로 다닐 수가 없어 골목길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을 거점삼아 옮겨다니며 작업을 진행했다. 낮에도 쉬지 않고 촬영해 그대로 밤낮으로 작업만 했던 기억이 난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밤에, 그것도 혼자서 촬영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같다


성격상 작업할 누가 같이 있는 불편해서 항상 혼자 다니는 편이다. 그리고 딱히 사람을 무서워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혼자 다니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변보다 걱정됐던 것은 카메라였다.(웃음) 밤늦게까지 촬영하진 않고 늦어도 10시까지만 찍었던 같다. 사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추위였다. 지방 도시의 경우 주로 겨울에 촬영을 했는데, 밤에 혼자 골목길에 있으니 너무 추웠다. 핫팩을 몸에 붙여도 3~4시간 이상 작업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개인적으로 개를 무서워하는 편이라 골목길에서 불쑥 나타나는 강아지나 들개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J#17, Archival pigment print, 100×100cm, 2013


보이지 않는 도시들뿐만 아니라 이전 작업에서도 공간 자체 외의 정보들은 최대한 배제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러한 전제는 얼핏유형학적 다큐 유사한 형식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막상 작품을 살펴보면 유형학적 다큐와는 어딘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나의 작업에서는 그것이 어디서 찍은 것인지 알아보기 어렵게 최대한 지역이나 공간의 특성을 배제해 프레임을 선택한다. 이는 관객이 골목길이라는 공간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어떤 작품은 밤인지 낮인지 모호하게 보이게도 하고, 여름인지, 겨울인지,봄가을인지 불명확하게 표현하려고 신경을 쓴다. 사진 속에서 외부적인 요소(지역성, 계절감, 시간대) 차츰 지워나갈수록 공간 자체의 모습이 오롯이 드러나게 된다. 작품에서 인물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있다. 이외에도 현상 인화 과정에서는 색감에 신경을 많이 쓴다. 밤에 찍은 사진들은 아무래도 건물의 창을 통해 스며드는 불빛이나 가로등 빛의 세기나 색상에 따라 사진 전체의 색감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작업량이 쌓여가다보니나만의 색감 찾게 되었고, 색감은 작품 전반의 미묘한 분위기를 끌어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시 평문을 이선영 평론가가 짚어냈듯이, 이번 작업에서는 특히 담벼락이나 건물의 균열이나 전봇대의 전선과 같은들이 좀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촬영 과정에서 특별히 선의 존재를 의식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런 요소들이 나의 작업에서 유의미한 지점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 시간이 묻어 있는 골목과 공간의 나이테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촬영을 위해 골목을 관찰하다보면, 건물이나 공간이 먼저 나를 건드린다는 오묘한 느낌을 받는다. 아무래도 평면 매체를 다뤄온 작가니 전선과 같은 선들이 서로 얽힌 모습이 각각의 면으로 보이면서 하나의 오브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작업의 소재가 되는 장소들이 모두 오래된 곳이라 전봇대나 전선이 항상 등장할 수밖에 없는 같다.


 

앞으로도 도시공간의 모습을 작업의 소재로 이어갈지 궁금하다. 더불어보이지 않는 도시들이후엔 어떤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가?


작가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도시를 비롯한 공간을 사진으로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온기있게 담아내는 것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전국의 수많은 도시에 매력을 느끼며관광지화되지 않은, 그대로의 오래된 도시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주력하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전국의 모든 오래된 도시들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이 목표다.

요즘은 지난해군산 3부작 발표했던 군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레지던시의 협력작가로 선정돼지역문화 읽기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덕분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군산을 기록하고 있는데, ‘군산 3부작 번째 시리즈였던안녕, 신흥동 확장해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군산의 자연재해지구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순천 1839사진창작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선정되어남해안 기록 프로젝트 참여한다. 여기서는군산 3부작’, ‘오래된 망각 연장선상에서 목포, 순천, 여수, 부산 남해안 도시들의 구도심을 집중적으로 다뤄볼 계획이다



 S#02, Archival pigment print, 100×100cm, 2010



S#03, Archival pigment print, 50×50cm, 2010




<보이지 않는 도시들> 전시전경


2014
 9월에 개관한 서울 연희동의 B.CUT casual gallery & hairdresser's 1 미용실과 갤러리가 결합된 전시공간으로 김영경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전은 이곳의 9번째 전시다. 미용실 내부의 중간중간에 배치된 작품들은 존재감이 묻히지도, 그렇다고  튀지도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배치되어 전시공간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한다.



2016. 9. 21. 16:28  ·  inter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