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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고, 붙이고, 칠하고, 태워서 만들어진 어떤 사진

차주용 <’S> 시리즈 


포토닷 2015년 3월호

글 이기원


차주용의 최근 작업인 ‘’S’ 시리즈는 처음 작품을 마주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얼핏 블록쌓기 장난감의 단면이거나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작품은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명백하게 사진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어떤 형태의 작품이라 규정지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쉽게 판단이 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회화처럼 평면의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회화라고 보기도 어렵고, 사용된 재료의 특성이나 제작된 과정을 살펴보면 조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벽에 걸어서 보는 조각’이란 측면에서 조각이란 꼬리표도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작품들이 의미상으로는 명확하게 ‘사진’을 가리키고 있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것 역시 무척 ‘사진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직까지 차주용은 ‘한국적 도시 풍경의 기록’을 모토로 도시의 십자가들을 사진에 담은 ‘The One’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다. 더군다나 ‘The One’ 시리즈는 전형적인 사진작업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이번 ‘’S’ 시리즈는 그 표면만 보면 같은 작가의 작업인지 헷갈릴 정도로 작업 스타일에 큰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업을 처음 발표했던 지난해 11월의 개인전 <’S>에 이어 2월25일부터 3월24일까지 열리는 갤러리 룩스의 재개관전 2부 <장면의 탄생 : 의문의 태도를 지닌 사진들>전을 앞둔 차주용 작가를 고양시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도시 곳곳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작가가 돌과 나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



3947’s, 100 X 100cm, ink on stone, 2014


온전한 사진작업이라 할 수 있었던 이전 작업에 비해 이번 작업은 스타일이 크게 변했다. 계기가 있다면?


사진을 전공할 때부터 작가로서의 자신을 사진가라기보다는 Visual Storyteller라고 생각했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고 어떤 표현양식을 가지는가보다는 내가 어떤 얘기를 풀어내고자 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사진을 배웠으니 사진을 통해 작품을 선보여온 것인데, 그간 ‘사진적인 주제’ 즉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면 그것을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게 가장 아쉬웠다. 설치든 조각이든 다양한 매체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갈증이 있었다. 물론 작가로서 매체에 대한 고집이 필요하긴 하지만, 내가 그 고집을 가져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다양한 매체 중 특히 조소과를 택한 이유는?


다양한 매체 중에서 조각은 물질성이 두드러지는 재료를 다룬다는 특성상 상대적으로 물성이 약하고 가벼운 사진과 가장 상반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소과에 진학하면 자연스레 매체와 재료를 선택하는 데서 사진과 조각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을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앞으로도 사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사진을 찍을 것이고, 조각에 맞는 주제면 조각으로 풀어내려 한다. 조각은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지만 스스로도 점차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 점이 한편으로는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S’시리즈는 물리적인 형태면에서는 사진과 연관될 수 없어 보이지만, 각각의 나무나 대리석 조각 하나하나가 디지털 사진을 구성하는 픽셀처럼 작동하면서 명백하게 ‘사진적인’ 고민을 이끌어낸다고 생각된다. 또한 가장 자연에 가까운 돌과 나무가 자연과 가장 상반되는 성질을 지닌 디지털 픽셀로 구현된다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S’ 시리즈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을 확장시킨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을 배우며 사진에 대한 어떤 강박 같은 것이 있었다. 예컨대 연출을 하면 안 된다거나 포토샵을 금기시 했던 것과 같은 다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사진을 통해 어떤 현실을 반영해야만 한다는 신념 같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사진으로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 수 없다는 한계와 강박을 넘어서고 싶었다. 실제로 촬영한 이미지(현실)를 조각으로 다시 풀어내면서 이것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또한 사진인지 조각인지 그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었다. 특히 어느 때보다 사진 이미지가 쉽고 가볍게 소비되는 요즘, 이미지가 쉽게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그 지점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작품을 볼 때 가까이에서 봐야 더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런데 ‘’S’ 시리즈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면 재료의 물질성만이 눈에 들어오고 반대로 멀리서 봐야 이미지의 형태와 의미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가까이에선 조각이지만 멀리서 보면 사진으로 작동하는 지점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이런 인식구조를 통해 의도한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미지의 대상으로 얼룩말을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이 작업의 구조를 되짚어 보면, 사진을 찍는 행위로부터 시작해 이를 픽셀화시킨 가상의 이미지로 변환하고, 이를 나무나 대리석을 통해 재생산하고, 관객은 이것을 다시 이미지로 인식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를 산화와 환원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갈수록 형태를 인식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싶었다. 그리고 얼룩말을 대상으로 고른 것은 그것이 픽셀화 했을 때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이미지의 인식 여부가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어 관객의 시각적 호기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얼룩말의 얼룩이 그 자체로 보호색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면서 의미상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4433’s, 95 X 95cm, wood, 2014


4433’s 디테일

2016. 9. 26. 16:32  ·  inter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