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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쓰나미_120x180_pigmentprint & facemount_2012


모순과 죄책감 사이의 예술

하태범 인터뷰 

아트인컬처 2014년 10월호

 뉴비전미술평론상 원고

글 이기원


작가 하태범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재난의 현장을 순백으로 탈색시킨 <WHITE> 시리즈일 것이다. 주로 재난과 재앙을 다루는 작가의 입장에서, 유독 비극이 많이 벌어진 2014년은 작업의 소재가 도처에 널린 고민스러운 한 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틀린’ 추측이다. 

하태범에게 어떤 재난이나 재앙은 작업의 재료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와 비극의 시대를 사는 작가로서 느끼는 죄책감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개인전을 앞두고 전시 준비를 마쳐가는 하태범 작가를 남양주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대화는 자연스레 작업실 한편에 놓여 운송을 기다리는 그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기원(이하 이) : 이번에 발표할 작품은 어떤 작업인가요?


하태범(이하 하) : 이번 전시에는 지금까지 작업해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전시 전까지는 외부 노출에 다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맥락은 여전히 지금까지 해온 것의 연장선에 놓여있습니다. 과거 작업이 사건/사고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난민, 기아 문제를 다루는 구호단체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구호단체의 광고 캠페인을 보면 유독 메인 이미지에는 애잔한 눈빛으로 웃음 짓는 예쁜 소녀가 등장하는데, 사실 이러한 ‘정돈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연출의 힘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번 전시는 그런 점을 꼬집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 대표작인 <WHITE> 시리즈를 비롯해서 새로 발표할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품세계 전반에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현대인의 윤리의식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일상에서 엄청난 양의 이미지를 접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 제기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WHITE>작업이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어물쩍 지나가 버려 놓친 부분들을 다시 짚어주는 느낌이랄까. 작가님께서는 자신 작업의 ‘키워드’를 어떤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하 : 제가 해온 것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반성을 요구하다거나 하는 그런 계몽적(?)인 것은 아니에요. 사실 처음에는 저도 사람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자꾸 막히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WHITE>시리즈는 독일 유학 시절에 시작하게 된 작업인데,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무래도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많은 이미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 스스로가 이런 사진들을 그냥 소비해버리고 있다고 느꼈어요. 마치 전쟁영화나 재난영화를 보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런 모습이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든지 내면에 폭력성을 갈구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하기에, 사람들이 폭력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이미지를 쉽게 소비한다고 보았어요. 저 자신에 대한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에게 내재된 보편적인 감정을 이끌어내 이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제 작업의 방향성이 아닌가 싶어요.



파키스탄 폭탄테러, 120x180, pigmentprint & facemount, 2010


이 : 저는 언론매체가 ‘사실’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자극적인 이미지만을 앞세우면서 사람들이 폭력이나 자극에 무뎌졌다고 보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이미지가 자극적인 방향으로만 소비되는 현실이 우리(수용자)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만 보기는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연예계 가십거리를 다루는 인터넷 매체의 경우, 이른바 ‘팩트'를 굉장히 강조해서 자신들이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하지만, 사실 연예인들이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것 따위의 기사는 그것이 명확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굳이 보도될 필요는 없는 것들이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런 기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개개인에게 내재된 호기심의 영역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인데, 앞서 언급했던 폭력성에 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 어떻게 보세요?


하 : ‘어느 한쪽이 잘못이다.’라고 명확하게 지목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언론매체의 보도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이미지를 연출하거나 가공해서 더 자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는 아니니까요.

가령 제 작품 중에 <파키스탄 폭탄 테러>를 보면, 폭탄테러로 아비규환이 된 현장에 슬리퍼 두 짝이 마치 신발 광고처럼 포개어져 놓여 있어요. 이 슬리퍼를 기자가 의도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죠. <아이티 지진>의 모태가 된 사진의 경우도 햇볕이 폐허 사이로 강렬하게 들어오고, 차량이 절묘하게 잔해 뒤로 지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불필요하게 조형적이죠. 분명 현장의 사진기자는 참혹한 현장 그 자체를 보도할 임무를 띠고 사진을 찍었을 것인데, 이런 사진은 부여받은 임무를 넘어서서 소위 ‘그림 같은’ 모습으로 가공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편 사진기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진이 언론사나 독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좀 더 ‘눈에 띄는’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과장이나 포장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원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씁쓸해요. 사실 이 문제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재난과 재앙을 주로 다룬다는 게 어떻게 보면 기자와 언론사의 입장을 모두 포괄하는 부담스러운 지점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하 : 항상 죄책감을 느끼며 작업을 해요. 앞서 비판했던 언론의 문제처럼 저 역시도 결국 타인의 고통과 슬픔으로 만든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고 또한 그것을 팔아 이득을 취한다는 모순에 놓이면서 ‘이걸 계속 해야 하나’라는 회의와 깊은 죄책감이 들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작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작품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매번 작품을 구상할 때 ‘이 사건을 작품으로 만들어도 되나’라는 고민을 거치는데, 얼마 전 한 동료 작가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작업을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땐 크게 불쾌했어요. 세월호는 지금까지의 어떤 사건과도 비교하기 힘든 측면이 있어서 아직 작업의 주제로서의 세월호는 용납되질 않거든요.


이 : 저도 이성적으로는 재난과 재앙을 작품화하는 것에 동감하지만 이를 지금 시점의 세월호 사건에 대입하여 생각하면 이것이 섣불리 작품으로 다룰 수 없는 주제인 것은 확실해 보여요. 


하 : 사실 <일본 쓰나미> 의 경우는 사건 이후 즉각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쓰나미라는 사건 자체를 다루는 것이라기보단 이 사건을 보도하는 이미지와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것이 작업의 핵심이고, 일본이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점에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필터링’이 가능했지만, 세월호는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어린 학생들이 다수 희생됐다는 점 그리고 충분히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었던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모두가 사건 안에 있기 때문에 객관화할 수 없어요.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라는 점도 그렇고, 저도 머리로는 무엇이든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월호 사건에 있어서는 선뜻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아요. 하지만 세월호가 잊혀질 시점이 오기 전에는 반드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음 속에서는 열불이 나는데, 지금 당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서 답답해요. 더군다나 해온 작업들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제 작품에 대한 회의감도 들어요. 광화문에 나가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 : 이 ‘객관화’라는 게 앞서 이야기한 사진기자와 언론매체의 역할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물론 100% 객관화는 불가능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사진에 개입/보정하는 것은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니까요. 

끝으로 재난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로서 ‘비극 앞의 예술’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하 : 다소 낯간지럽긴 하지만, 작가로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작가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예술이라는 게 사회 비판적인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측면도 있는 것이지만 저로서는 제가 사는 이 세상이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에,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나 개인적인 주제에 대한 작업은 못 하겠더라고요. 제 작업이 다소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품을 통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지면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작가와 필자는 자연스레 어디서 어떻게 찍어야 ‘그림’이 잘 나올지 상의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서로 사진의 가공과 연출에 대한 비판을 쏟아놓고 정작 우리 자신부터도 ‘잘 나올’ 사진을 위해 연출을 하고 있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처럼 우리 삶은 크고 작은 수많은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평도 사건, 180x128, pigmentprint & facemount, 2011




2016. 9. 26. 16:19  ·  inter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