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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20121218 
광화문 광장, 120×150cm, Pigment Print, 2012


흩날린 풍경을 파고드는 경계인의 시선 : 노기훈 <미장센(Mise-en-Scène)>

지금여기, 15.10.23 - 11.15

포토닷 2015 12월호

이기원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 하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언론이나 SNS 통해 집회 소식을 접하는 과정에서 내용이나 실상과 관계없이정치’, ‘대립’, ‘혼란’, ‘불법’, ‘시민의 불편등과 같은 단어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부자연스런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집회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이처럼집회 바라보는 부자연스런 시각은 그곳에서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더라도 쉽사리 길거리에 나서는 것을 머뭇거리게 하고, 다른 누군가는 집회라는 형식을 취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에 담긴 목소리를 무시하고 반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노기훈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사회에서 벌어진 각종 집회의 풍경을 그것의 내용과 관계없이 담담하게 기록한미장센시리즈를 통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방식으로집회 갖는 실효성과 목적, 그리고 그것이 각각의 개인에게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지금여기에서 선보인 노기훈의 개인전 <미장센>(2015.10.23.~11.15) 집회와 그것이 열리는 광장에 대한 장노출 사진작업미장센’(2009~2013) 시리즈와 작가 주변의 인물을 하루동안 추적하는 영상작업싱크 리셋으로 구성된다. ‘미장센시리즈는 2009 6 노무현 대통령 추모집회부터 2013 12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까지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목적을 가리지 않고 서울 곳곳의 광장에서 열렸던 집회 풍경을 대형카메라로 기록한다.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얻은 집회 정보-장소, 인원, 시간만이 명시된- 기준으로 자신이 촬영하려는 집회가 어떤 행사인지조차 알지 못한 상태에서 광장으로 향한 작가는 사전에 통보된 집회 시간만큼만 필름에 노출을 주어 사진을 찍는다.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3~4시간까지 이어지는 집회 시간동안 열린 셔터는 집회 참가자와 단체에 대한 단서를 무심하게 흩날려 버린다. 이런 지점에서미장센 구성하는 작품은 시각적으로는 다소 익숙한, 또는 식상한 사진처럼 느껴질 있다. 그간 장노출을 작업의 전면에 내세운 작가들(김아타, 이원철 ) 기법에 부여했던 의미와 상징성이 워낙 컸기에, 관객 역시 이에 대한 기시감을 느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은 마치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집회시간동안 광장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존재한다. 이런 지점에서 장노출은 퍼포먼스의 기록을 위한 도구로만 남는다. (이러한 퍼포먼스적 요소는 작가의 다른 작업에서도 이어지는 특징이다)덕분에 관객은 각각의 작품에 붙은 캡션과 홀로 선명하게 남은 집회 장소에 대한 정보만을 기준으로 해당 집회의 성격과 내용을 유추한다. 하지만 각각의 사진에 숨은 집회의 내용을 애써 알아채려고 하는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이번 작업을 통해 던지는 물음은 집회의 내용이나 정치적 성향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행사의 무대가 되는 광장과 그저 흔적으로만 남은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30225 광화문 광장, 120×150cm, Pigment Print, 2013

 

노기훈은 실제 집회나 시위가 제기능을 발휘했던 시기-민주화-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오늘날의 집회를 두루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시민과 단체들이 이미 한계를 실감하면서도, 딱히 대안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집회라는 형식만최후의 보루처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실상을 목격한다. 집회의 목적과 방향성이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연대라는 흐릿한 관성으로 자리를 지키거나, 혹은 어떤 집회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집회를 위한 집회 위해 동원돼 공허한 외침만을 반복하는 무력한 군중의 모습은 그들이 점유한 광장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작가의 카메라에 비춰진다. 그중에서도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철제 설치물에 서로 등을 마주하고 걸려있는 쌍의 사진은 작가의 건조한 시선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2012 대선 전날(12 18) 18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2013 2 25 광화문 광장의 풍경,그리고 2011 한나라당, 2012 통합진보당 당사 집회 모습은 정치·사회적인 시선과 그곳의 사람들을 지워내고집회라는 현상 자체만을 조명한다.이처럼 같은 장소의 사뭇 다른 모습이나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장소의 유사한 풍경은 집회가 열리는광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미장센> 사람을 지워내고 남은 광장의 장소성에 시선을 맞췄다면, 전시장 안쪽에 자리잡은 2채널 영상작업싱크 리셋 초점을 공간에서 사람으로 옮겨온다. 작가는 지난 8 14일과 15, 성국과 재각의 하루를 추적한다. 재각은 같은 대학을 다니며 인연을 맺은 사이고 성국은 작가의 고향인 구미에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다. 하지만 동갑내기 사람이 지난 광복절 연휴(814~15) 보낸 방식은 사뭇 대조적이다. 일본계 공장에서 3교대 생산직으로 일하는 성국은 공장 집회 때문에 통행이 불편하다고 투덜대며 구미 교외로 낚시를 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와선 아이를 돌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날인 8 15,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활동하는 재각은 추모행사와 집회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신 택시를 타고 귀가한다. 번갈아 등장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스크린에서조차 함께 나타나지 못하며 접점이 없는 평행선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평행선 사이에는 서울과 구미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아득한 여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성국에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재각의 하루는 정작 재각에게는 여느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일 있고, 재각에게도 성국의 일상은 묘한 거리감이 작용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오랜 친구로서 재각과 성국이 (비록 서로를 알진 못하지만) 성격도 비슷하고 취향도 닮아있기에 좋은 친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싱크 리셋 앞서미장센시리즈를 통해 작가가 던진 물음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사회에서시위대’, ‘집회가담자’, ‘경상도’, ‘구미등과 같은 단어가 개인에게 분별없이 덧씌워져 선입견과 편견으로 작용하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노기훈은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에 유물처럼 남아있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어떤 현상들을 작업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민주화 이후 하나의 관성처럼 작동하는집회라는 행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미장센’), 근대화의 출발점인 지하철 1호선 주변의 풍경에서 근대화의 흔적을 관찰(‘1호선’)하며 작가의 고향이자 한때 산업화의 전초기지였던 구미의 오늘날을 고향친구들의 초상사진으로 담담하게 기록(‘2 도로’)한다. 이런 맥락에서 각각의 작업은 얼핏 하나의 문제의식으로부터 피어나온 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미장센 이후 작업들과 동일선상에 놓이기 보다는 ‘2 도로 ‘1호선시리즈를 파생시킨 다소 느슨한 뿌리처럼 존재하며, 나아가 동떨어져 보이는 작업의 연결고리로도 작용한다.



왼쪽: #20090930, 서울역 광장, Pigment Print, 120×150cm, 2009

오른쪽: #20131008 서울역 광장, Pigment Print, 120×150cm, 2013



<미장센> 전시전경 ⓒ김익현


 Sync Reset, 23 45 루프, 2채널 비디오, 2015 설치전경 ⓒ김익현


#20131228 서울광장, 120×150cm, Pigment Print,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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