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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노프에스(STENOP.ES)  20세기 아방가르드 사진 전시전경


노련한 작품을 이끄는 순진한 주제의 아쉬움 : <은밀하게 황홀하게빛에 대한 31가지 체험>

문화역서울 284, 15.6.11 - 7.4

 

포토닷 7월호

이기원


서울역사의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조한문화역서울 284’ 고풍스럽고 이국적이기까지 서울역사 공간을 맘껏 둘러볼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매력적인 장소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서 전시를 꾸려야 하는 작가나 기획자의 입장에선 마냥 신기한 공간으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이곳이전시 공간이라는 현재의 용도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건축물로서 등록된 문화재(사적 284) 덕택에 전시를 위해 벽면에 하나 마음대로 박을 없는까다로운공간이자 자체로 작동하는 근대유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곳에서 열리는 모든 전시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강력한 공간의 힘에 맞서 작품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그나마 대형 설치 작품의 경우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해 영역을 공간까지 확장[각주:1]하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힘이 약한 회화, 사진과 같은 평면 매체는 이곳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나마 회화는 다양한 크기와 재료의 변주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사진의 경우 작품 크기의 한계가 있고, 작품의 물질적 형태가 대체로 일정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전시하기에 가장 불리한 매체에 속한다. 작품이 공간 자체의 힘에 밀려 존재감을 발산하지 못하면 사진작품들은 그저 공간을 장식하는 액자로 전락할 있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황홀하게 : 빛에 대한 31가지 체험> 지난 3, 문화역서울 284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신수진(사진심리학자) 교수가 선보이는 번째 전시이자, 문화역서울 284 자체 기획전을 통틀어 사진의 비중이 가장 높은 전시이기도 하다. 크게 7부분으로 나뉜 전시장은 곳곳에서 작품의 존재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지만, ‘이라는 주제를 작품과 연결짓는 방식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전시는 8개국 31() 작가들의 작품 143점을 전시장 7 부분과 6개의 공연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인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사진, 설치, 영상, 미디어, 가구, 퍼포먼스, 무용까지 아우르는 복합 문화예술 행사로서 기능한다. 전시 전반을 감싸고 있는 주제인, 자체로도 흥미로운 소재이기 때문에 사실상 어떤 시각매체와도 연결될 있는만능열쇠 작용하면서이라는 개념만으로 전시를 묶어내는 것은 다소 순진한 발상처럼(혹은 너무 쉬운 선택으로) 느껴진다. 더불어 전시서문은 올해가광복 70주년이자세계 빛의 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를 전시의 당위성과 연결 짓는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너무 많은 의미부여가 되어버려 정작이라는 키워드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전시장의 부분을 소개하는 7개의 소제목(어둠을 더듬어 빛을 만나다, 빛을 느끼다, 하늘을 만나다, 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탐색하다 ) 해당 공간에 놓인 작품의 특징이나 성격을 단숨에 규정지어버려 다소 김이 새는 느낌이다. 이는 또한 자칫 관객의 감상과 해석의 폭을 제한하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뒤로 하고, 전시장에 들어서서 각각의 작품이까다로운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차츰 전시의 흥미로운 지점들이 드러난다. 특히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 전시되기 가장 어려운 형태의 작품이라 생각했던 흑백사진들은어둠을 더듬어 빛을 만나다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공간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품의 존재감을 발산한다. 주명덕과 민병헌의 흑백사진들은 각자가 오롯이 개별적인 하나씩을 점유하며 공간에 스며드는 전략을 취한다. 작품을 위한 별개의 조명 없이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받으며 설치된 작품들은 다소 밋밋해 보일 있지만, 마치 그곳에 이미 오래전부터 걸려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관객을 맞이한다. 이런 측면에서 공간에 어둠이 내렸을 [각주:2] 풍경은 낮의 모습과는 어떻게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지 기대가 된다.


한편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놓인 앙드레 케르테츠(André Kertész), 레이(Man Ray), 라즐로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Nagy), 브라사이(Brassaï), 라울 유박(Raoul Ubac), 완다 율츠(Wanda Wulz) 20세기 아방가르드 사진들은 그동안 문화역서울 284 전시에서 매번 가장 핵심이 되는 공간인 2 왼편 전시장-과거 고급 레스토랑양식당 그릴 있던 자리- 유럽풍의 사진 살롱으로 꾸몄다. 여기에 높은 층고로 인한 허전함은 프랑스 출신의 사진가 듀오 스테노프에스(STENOP.ES) 핀홀 영화프로젝트 작업을 별도의 스크린 없이 천장에 상영하면서양식당 그릴전체의 분위기를 20세기 유럽으로 되돌린다. 이는 앞서 언급한 최정화의 전시 <총천연색> 사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한다고 있다. 최정화의 대형 설치 작품들이 서울역사의 앤티크한 풍경과 완전히 대비되는 알록달록한 색감과 싸구려 플라스틱 재료를 통해 공간을점령했다면, 이번 전시는 공간이 작품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줬다는 인상이 강하다. 오래된 흑백사진과 핀홀로 만들어진 영상이 각자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은 이번 전시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공간으로 기억된다.

 

이외에도 작품의 성향에 맞게공간의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작은 방에 독립적으로 배치된 작업들(김도균, 이상진, 베른트 할프헤르(Bernd Halbherr), 장태원, 이창원, 박여주, 인세인 , ) 마치 레지던시의오픈 스튜디오처럼 자리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인세인 박의 사진작업들은 포토샵을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시각화했다는 측면에서 그것이 화이트 큐브에 놓였을 때보다 더욱 흥미롭게 작동한다. 1 오른편 전시장을 공유하는 작가(이이남, 하지훈, 조덕현) 조합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들 역시 공간과 싸워 이겨내려고 하기보다는 공간과의 접점을 찾는 접근방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처럼 <은밀하게 황홀하게> 서울역사의 넓고 까다로운 공간에 31()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며 각각의 작품이 갖는 산술적 총합 이상의 공간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선 분명 유의미한 성과로 남는다. 하지만빛에 대한 31가지 체험이라는 부제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과연 이렇게 세심하게 선택된 작품들을 묶어낼 있는 주제가이라는 포괄적인 개념 외에는 없었던 것일까?


사진제공 : 문화역서울 284

이상진, 라이팅 토크 2015, LED, Mixed Media, 160×160×190cm


인세인 , 무제(설치), 2014, c-print, LED spot lighting, 70×50cm 


장태원, 진부한 풍경 005, 2011, Duratrans, Aluminum light box, 123×164cm






  1. 이것의 거의 유일한 사례는 작년에 열렸던 최정화의 개인전 <총천연색>을 꼽을 수 있다. [본문으로]
  2. 문화역서울 284의 관람시간은 오후7시까지여서 평소에는 일몰 후에 전시를 볼 수 없지만, 전시기간 중 단 하루인 6월24일(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본문으로]
2016. 9. 26. 16:36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