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로딩중입니다.
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서울역역할 바꾸기, 1975


작품은 사라지고 자료만 남은 아카이브 전시 : 홍순태 서울사진아카이브 < 개의 방>

서울역사박물관, 15.2.27 - 5.17


포토닷 5월호

이기원


지난해 하반기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아카이브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단순히 인문학박물관 소장자료를 미술관으로 옮겨 공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료들을 세심하게 선별하고 재구성해 기록물로서의 기능을 넘어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호평을 받은 있다. 특히 그동안 관객에 의해 읽히기만을 기다려온 박물관의 소장자료들이 저마다의 맥락을 가지고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예술작품으로 작동하면서, 기록물과 예술작품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전이 박물관 소장품이 미술관으로 이행되며 해석의 지평의 넓힌 사례라면, 지난 227일부터 517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중인 홍순태 작가의 서울 사진아카이브 전시인 < 개의 > 이와 반대의 구조로 작동되는 아카이브전시라 있다

홍순태 작가로부터 기증받아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온 700여점의 작품들은서울이라는 공간의 록을 중심으로 전시장에 재배치되어 1960~80년대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아카이브의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는 그간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선보여온 기록사진 전시와는 다른 맥락으로 자리한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서울의 모습은 그동안 언론매체나 교과서에서 봐온 풍경과는 어딘가 다른, 좀더 서울의 과거를 보여준다. 가령 한강 다리 염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나 강물에 빨래를 하는 뚝섬의 풍경 등은 젊은 세대나 어린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듣도 보도 못한생소하고 신기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런 측면에서 전시는 간접 시간여행이자,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역사교과서로서 기능한다

사진이 기본적으로 지나간 시간의 모습을 충실히 기록하는 속성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오래된 서울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홍순태의 사진들이 그저 작품으로만 읽히지 않고 교육적 자료나 역사적 기록물과 같은 확장된 의미로 쓰이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지점으로 평가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을 핑계로 작품으로서의 맥락과 의미를 간과한다면 그야말로이도저도 아닌 돼버릴 있는 위험 역시 존재한다


전시는 1960~80년대 서울의 풍경을 기록한 사진이 배치된서울을 걷다 같은 맥락에서 인물사진을 모아둔길에서 만난 사람들그리고 앞선 부분보다는작가 홍순태 초점을 맞춰 기획된 개의 (기록, 기억, 시선의 )’까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앞선 부분의 경우, 전시 사진들은 사진가 홍순태 작품 아카이브라기보다는 과거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박물관적인특성이 두드러진다. 상대적으로 작가에게 초점을 맞춰 구성된 개의 부분 역시 홍순태의 작품세계 전반에서 드러나는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인상이 짙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2013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홍순태 작가의 개인전 <오늘도 서울을 걷는다> 비교하지 않을 없다. 물론 박물관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전시와 미술관 전시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전시장을 채운 작품만 놓고 보면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와 이번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언급은 가능하다.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의 서문을 사진평론가 최봉림은 “...대부분의 사진은 역설, 이율배반, 모순의 수사학을 통해 서울의 현실에 접근하고 있다. 패러독스의 수법으로 파괴 하고 건설하는 개발독재 시대의 에너지와 시대를 호흡하는 도시 서민들의 삶을 포착한다. 파괴와 건설을 어쩔 없는 시대적 요구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야기하는 모순의 현실, 현실의 이율배반을 긍정하는 시각을 견지한다.”[각주:1] 라며 홍순태 사진이 갖는 차별성을 이야기한다. 다시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로 돌아와 논의를 이어가면, ‘기록의 경우 당시 신문 보도사진과 작품을 교차시키는 얼핏 흥미로워 보이는 방식을 택해 관객 스스로 가지 시선을 비교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작가의 사진이 당시 보도사진과 상반된 입장 놓인, 도시개발을 비판하는 이미지로만 해석될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했듯, 홍순태 사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역설과 모순이라는 [각주:2]  고려하면 이번 전시는 기획과정에서 작가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아카이브 전시라는 형식에만 치우쳐 전시된 사진들이역사 기록물이기 전에 작가의 예술작품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 작품이 작품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그저 역사적 기록물로만 느껴지는 현상의 가장 원인은 마치 일간지 보도사진의 제목처럼 자의적 해석이 개입된 작품 캡션때문이다. 미술관의 예술 작품이 박물관의 유물과 다른 하나는 그것이 어떤 가지의 의미로 규정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번 전시는 모든 작품 옆에 따라붙는 캡션이 사진 자체의 내용을 처음부터 규정짓다보니 관객은 어쩔 없이 캡션에 쓰여진대로의 작품 해석과 감상을 강요받게 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들 캡션이 작가와의 논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라 밝혔다. 물론 어떤 예술작품들은 미리 이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가 뒷받침되어야만 이해하고 감상할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 서울의 모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난해하거나 어려운 작업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런 캡션을 달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한미사진미술관 전시를 비롯해 이전 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촬영 장소와 시기처럼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했더라도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마치 답안지를 펼쳐놓고 문제지를 푸는 것처럼 전시를 보는 것이 과연감상이라고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들이 작품의 주변을 둘러싼 맥락의 문제였다면, 작품 자체에서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로부터 기증받은 700여장의 사진이 필름이나 인화된 사진의 형태가 아닌 디지털 파일이라 밝혔다. 모든 작품들이 필름으로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스캔을 거친 파일, 그것도 스캔의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것을 기증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기증된 스캔 파일과 과거 홍순태 작가의 사진집, 이번 전시에 걸린 사진을 교차 비교하면 스캔 품질에 대한 문제는 더욱 확연해진다. 전시된 사진들은 전체적으로 톤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일부는 초점이 미묘하게 맞지 않은 경우도 보이며, 스캔 과정에서 포함된 먼지가 전시 작품에서도 제거되지 않는 스캔 인화과정에서의 미흡함이 특히 두드러진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 책임이 작가에게 있는지, 전시를 기획한 박물관에게 있는지 명확하게 구분지을 없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조금만 세심했었더라면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는 막을 있지 않았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의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라는 공간과 홍순태 작가의 다큐멘터리 사진과의 협업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분명 유의미한 시도라 있다. 평소 홍순태 작가에 대해 모르는 관객이나 1960~80 대를 겪지 못했던 젊은(어린) 층에게는 사진에 나타난 서울의 과거 모습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전시로 작동한다. 그러나홍순태 작가의 사진아카이브 전시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유의미한 기획 의도를 실제 전시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시키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도판 사진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메인사진 캡션 : 서울역, 역할 바꾸기, 1975



남산, 삿갓 노인, 1970


다소 자의적이고 피상적인 해석으로 쓰여진 캡션은 오히려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막아 작품감상을 방해한다또한 위사진처럼 사진 인물이 쓰고 있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삿갓이라고 알고있는 사물의 모양이라기 보다는 그냥 가까워 보여 혼란스럽기도 하다. 또한 첫 이미지 캡션인 '역할 바꾸기' 역시 새로 쓰여진 캡션이라면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어 문제의 소지가 있다. 



2한강교, 그늘에 쉬고 있는 염소떼, 1967


아끼자 우리의 위대한 유산, 1969


왼쪽 : 함박웃음, 1969

가운데영등포구 Yeongdeungpo-gu, Gelatin silver print, 35.5×27.9cm, 1969, 사진제공 한미사진미술관 


왼쪽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기증받은 파일, 가운데는 2013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보도자료로 제공했던 사진 도판이다. 같은 필름을 스캔한것 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특히 위의 사진 가운데에 있는 흰점은 스캔과정에서 포함된 먼지로 추정되는데, 전시장에 걸린사진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전시전경




  1. 최봉림, ‘홍순태 오늘도 서울을 걷는다’, 한미사진미술관 학예실, 2013, 162쪽 [본문으로]
  2. “이미 언급한대로 홍순태의 포커스는 비인간적인 도시개발의 비판에 맞춰진것이 아니었다. 홍순태의 다큐멘터리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도시 권력의에너지와 염치없는 빈민의 삶이 지니는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같은 책, 164쪽 [본문으로]
2016. 9. 26. 16:34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