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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하지만 가혹한 어떤 집, <즐거운 나의 집>

아르코미술관 / 14. 12. 12 - 15. 2. 15.


글 이기원


나는 어떤 예술 작품이든 당대의 사회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또한 좋은 예술작품이나 전시는 관람자의 마음을 (미세하게라도) 흔들어 놓는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아르코 미술관의 이번 협력기획전 <즐거운 나의 집>은 무척 흥미로운 전시였다. 이는 기획 단계에서 그들의 관람 타겟으로 삼았을 이른바 ‘에코 세대’ 즉 베이비 붐 세대의 자식인 1980년대생에 내가 정확히 들어맞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전시의 진짜 타겟은 1980년대생들이기 보다 ‘기성세대’라 불리는 어른이라 할 수 있다.


전시는 세 가지의 ‘집’을 상정한다. ‘살았던 집’, ‘살고 있는 집’, ‘살고 싶은 집’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이라는 개념이 가진 다층적 의미를 탐구한다. 1층의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누구나 들어가 본 적 있는(혹은 본 적 있는) 익숙한 현관문이 관객을 맞이하며(심지어 가까이 가면 불이 켜진다) 첫번째 섹션 ‘살았던 집’의 시작을 알린다. 현관을 지나 거실, 부엌, 작은 방, 다락방, 화장실을 지나 침실까지 이어지는 동선과 독특한 작품 배치를 통해(물리적 형태에서 실제 집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누구나 기억하는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으로서의 집(Home) 분위기를 완벽히 구현한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인상을 남긴 1층을 뒤로하고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관객은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전시장 한 면을 가로막은 10개의 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문 앞의 발판에 쓰여진 각자의 소득 수준에 맞춰 문을 통과하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빼곡한 숫자, 통계와 마주하게 된다. 이 전시의 가장 핵심이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옵티컬레이스의 <확률가족>은 1층의 포근한 분위기에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차갑고 냉정하게(사실 숫자를 통한 줄 세우기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가장 선호해온 방식이다) ‘에코 세대’ 앞에 닥친 주거 현실을 가장 적나라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는 자신의 소득 수준과 부모의 재산 수준에 따른 자녀의 독립자금을 가늠해볼 수 있는, 어찌보면 단순한 형태의 작품이지만 만원 단위로 줄 세워져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관객은 무척이나 비참한 심정에 빠지게 된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비참함은 기성 세대가 추측하는 이유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요소인 ‘의, 식, 주’를 놓고 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입고 먹는 것이 부족한 적이 없었던, 부모세대에 비해 무척이나 풍요로운 성장기를 거쳐왔고 앞으로도 입고 먹을 것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기에 젊은이들의 생존 고민에서 입고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은 과거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주’에 대한 문제는 과거 어느때 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성세대가 그들의 재산증식을 위해 집값을 훌쩍 올려놓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갖가지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몸값을 낮추면서(이를 통해 등장한 용어가 ‘88만원 세대’라 할 수 있다.) 심각해졌는데, 그 결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식 세대가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부유해질 수 없는 구조를 낳았다. 그러므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즐기면서 사는 삶’도 아니고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도 아닌 그저 살아남는 것, 즉 생존 그 자체이다. 이처럼 <확률가족>은 가혹할 정도로 날카롭게 젊은이들의 현실을 파고드는 동시에, 가장 기성세대에게 ‘먹혀드는' 언어로 이들을 대변한다. ‘살고 있는 집’ 섹션에서 이어 마주하는 작품들 역시 젊은이들의 주거 현실을 다루지만, <확률가족>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이들 작품들이 다소 부수적인 느낌마저 드는데, 이는 <즐거운 나의 집>의 전시 구성 측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스페이스 필룩스’에서 이어지는 세 번째 섹션에서는 이러한 뒤틀린 주거 환경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다른 나라 이야기’인 외국의 사례와 실현되지 못한 건축 설계도는 2층에서 받은 충격을 크게 완화하지 못하고, 전시는 씁쓸한 여운만을 남긴다. 이러한 감정은 특히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의자, 테이블과 같은 각종 가구들이 ‘까사미아’의 협찬이라는 것이 문득 떠오르며 상기된다. 비교적 ‘고급’ 가구에 속하는 까사미아의 가구들은 1층에서는 포근한 집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이상적인 가구 형태로만 보였지만, 두 번째 섹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이마저도 다소 야속하게 느껴진다. <서울경제>의 누군가가 칼럼에서 말했듯 1980년대생들은 ‘이케아도 못 사는 세대’이기 때문에.


최초 업로드 : 2014/12/27 22:14



2016. 9. 26. 16:26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