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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록 'Black Out' 스틸컷

z축 잠금해제 : 드론 사진과 어떤 욕망에 관하여


글 이기원


높은 곳에 서서 어떤 공간을 내려다 보는 것은 대체로 해당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넓은 시야’를 담보한다. ‘전지적 시점’이라 불리는 이것은 무엇이든 자신이 관찰/통제/예측하려는, 다시말해 ‘아는 것이 힘’이라 믿는 인간의 욕망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기록하려는 욕망은 원근법을 만들고 사진을 발명시켰다. 이윽고 카메라 모듈이 손톱만큼 작아져 스마트폰이나 CCTV, 블랙박스의 ‘검은 점’으로 수렴하면서 인간은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 작은 카메라로 더 큰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이를 손쉽게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 어디든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욕망을 위해 우주 궤도로 카메라를 쏘아올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비행기와 헬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같은 맥락에서 더 작고 가벼운 카메라와 결합한 더 작고 가벼운 드론은 인간이 그동안 바라볼 수 없었던 시점에 카메라를 가져다 놓으면서 개인이 소유/관찰 할 수 있는 이미지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 누구나 (원하는 장소에 드론을 띄울 수만 있다면) 차량 번호판까지 판독 가능하다는 군사위성과 꽤 유사한 이미지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성과 셀카봉 사이의 z축


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을 매달 수 있는 가느다란 막대에 불과한 셀카봉(Selfie Stick)이 한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어쨌건 그것이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평소의 셀카와는 확실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연장된 신체’의 기능을 수행하는 셀카봉은 더 높고 먼 곳에 카메라를 위치시키면서 더 많은 신체와 인물, 배경을 프레임 속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프레임은 아니지만, 이를 ‘셀카봉’이라는 도구 하나로 간편하게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은 무척 획기적이었다.

이런 지점에서 드론이 주목받는 이유 역시 근본적으로 셀카봉과 비슷하다. 드론은 셀카봉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결과물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실현은 해보지 못한 프레임을 얻게 해준다. 드론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은 위성사진이나 항공사진과도 다르다. 드론은 항공촬영용 항공기가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고도보다 낮고, 셀카봉이나 삼각대, 사다리를 통해 카메라를 위치시킬 수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을 자신의 활동영역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 높이는 그동안 어떤 카메라로도 정복되지 않았던 영역이기에, 드론은 카메라가 놓일 수 있는 위치를 3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이렇게 잠금해제된 z축은 인공위성이나 촬영용 항공기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었던 개인의 욕망과 결합한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내려다보고 싶은 욕망. 이는 드론이 셀카봉과 달리 한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사진 촬영의 일상적인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의록 'Black Out' 스틸컷, 서울 인근의 비행제한구역이 표기된 구글 어스 지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신화


이의록 개인전 <두 눈 부릅 뜨고>(2016, 지금여기)에 선보인 영상 작품 ‘Black Out’은 나다르(Felix Nadar)의 열기구에서부터 구글 어스와, 드론으로 이어지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발맞춰 점점 멀어지는 인간의 눈과 카메라 렌즈의 거리를 이야기하며 나다르의 욕망과 ‘드론 조종자’의 욕망이 중첩되는 지점을 짚어낸다. 영상에도 등장하듯, 대부분의 지역이 ‘비행 금지구역’인 서울에서 합법적으로 자유롭게 드론을 날릴 수 있는 한강드론공원 또는 광나루 비행장이라 불리는 이 곳은 드론 조종자의 욕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RC 항공기를 날리는 ‘스팟’이기도 한 이곳에서 드론을 날리는 이들은 오로지 드론조종과 드론으로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다.

서울의 다른 장소들(비행제한구역)이 z축이 잠겨있는 곳이라면, 이곳은 z축을 일부 풀어주는 대신 x, y축을 제한한다. 이처럼 정해진 장소에서 드론을 띄워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오로지 ‘드론 날리기’의 결과물로만 존재한다. 이곳은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드론의 시야를 자신의 눈과 동기화하려는 욕망이 충족될 수 있는 곳이다.

이같은 드론 조종자의 욕망은 이른바 ‘출사 명소’에 몰려가 경쟁하듯 사진을 찍는 사진동호인들의 욕망과 유사하다. (실제로 드론 업체들은 사진 동호인을 상대로 한 보급형 드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동호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사실인지 환상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달력이나 애국가 영상 스틸컷, 유명 사진가와 같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를 자신의 카메라로 만들어내는데 주력한다. 스펙타클하지만 익숙한 풍경이나 젊은 여성 모델, 어린 아이들을 그들의 미감에 충실하게 (마치 화가처럼) 자신의 손-카메라와 포토샵-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이들은 셔터를 누르고 포토샵을 실행시킨다. 덕분에 언제나 노을은 불타듯이 새빨갛고,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끈하게 보정된다. 이처럼 사진동호인들에게 ‘자신이 본 것’과 ‘카메라가 본 것’은 등치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카메라 렌즈와 자신의 눈이 연결되어 있다고, 카메라는 자신이 본 것을 충실히 재현한다고 굳게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드론 조종자들이 갖는 환상은 더욱 견고하다. 드론은 어디까지나 무한대로 뻗어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된 삼각대나 셀카봉 같은 촬영도구에 불과하지만,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다른 어떤 촬영도구보다 훨씬 강하게 자극한다. 인간의 눈이 도달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인 카메라 렌즈 그리고 이와 연결된 액정화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VR만큼이나 실감나는 가상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종자가 ‘실제로 보는 것’은 드론 조종기의 액정화면일 뿐이지만, 이 순간 조종자는 자신의 눈을 드론의 시야와 동기화한다. 이렇게 인간의 눈과 카메라 렌즈는 더 멀어질수록 더 단단히 연결되면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린다.

이런 지점에서 이의록이 ‘Black Out’에서 위성사진과 CCTV, 블랙박스 등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신화”는 드론과 결합하며 더이상 신화가 아닌, 현실로 다가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존재하지만 보거나 보여줄 수 없는” CCTV와 블랙박스의 이미지, 비행제한구역의 존재는 이러한 신화를 완전한 현실이 될 수 없게 하면서 모든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을 (실현될 수 없는)신화로 지속될 수 있게 만든다.

만약 인간이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이후의 욕망은 존재할 수 있을까?


이의록 'Black Out' 스틸컷, 서울 '드론한강공원' 풍경

2016. 9. 26. 16:45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