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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을 위한 변명, <린다 매카트니 회고전>

대림미술관 / 14. 11. 6 - 15. 4. 26 


글 이기원


유독 검은색 챙 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대림미술관의 모습은 다른 미술관이나 갤러리와의 비교를 통해서는 설명할수 없는, 오히려 관광 명소나 소위 '핫플레이스'에서 보여지는 현상에 가까운듯한, 대림미술관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대림미술관에서 전시가 소비되는 모습은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라 불리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곳에서 열리는 대형 대관전의 그것과는 또 다른 양상을 가진다. 이들 대형 전시들이 내용 면에서는 '친숙한(인상파 회화나 다큐멘터리 사진)'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전시 외적 측면에서는 비싼 티켓값에 재입장, 사진촬영 불가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금속 탐지기까지 등장해 관람객 소지품을 검사하기도 하는 등 관객 입장에서는 불친절하다고 느낄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면은 친절하지만 외부는 불친절한 대형 전시의 풍경과 달리, 소규모 미술관이나 국, 공립 미술관, 대안공간, 갤러리의 기획 전시 등 이른바 '현대 미술 전시'는 입장료가 없거나 혹은 3,000원 이하인 경우가 많고 사진촬영도 자유롭기에 외적으로는 친절함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어떤 배경지식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기에는 난해한 경우가 많아 전공자나 미술 관련 종사자가 아닌 일반 관람객에게는 불친절한 전시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잡혀있다.


물론 모든 전시의 성격을 이와 같은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대림미술관은 내/외적인 측면에서 모두 친절함을 가진, 새로운 스타일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선정하는 작품들은 한 눈에 봐도 흥미을 느낄 수 있게 하면서도 기존 대형 전시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작가/작품을 다룬다. 그렇기에 도슨트나 오디오 가이드를 통하지 않더라도 전시가 의도한 분위기에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게 하면서 관객이 전시를 쉽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림미술관이 선보였던 전시들은 칼 라거펠트, 폴 스미스, 스와로브스키 등 주로 작가들의 (작품과 별개인) 인지도와 명성에 기댄 측면이 강하거나 혹은 작가의 인지도 자체는 떨어지지만 작품이 유명한 경우(유르겐 텔러, 핀 율, 스타이들)로 나뉘었다. 그러나 지난해 라이언 맥긴리 사진전의 경우, 국내에서 작가나 작품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의 조형성에 '청춘', '힐링' 등의 이른바 '감성 코드'를 맞물리면서 젊은 관객들을 끌어모아 이를 유행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유례없는 흥행을 거두며 대림미술관이 지금의 지위를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전시 외적인 측면에서의 '배려' 역시 다른 전시공간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사용한 티켓과 함께 전시장에서 찍은 본인의 인증샷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재입장이 가능한 규정을 통해 전시장 내 사진촬영이 허용되는 수준을 넘어 이를 장려한다. 덕분에 관람객은 스텝이나 다른 관람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SNS와 블로그를 타고 자발적으로 전시를 홍보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작동한다. 입장료 역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인데 여기에 다양한 할인 이벤트를 통해 문턱을 낮춰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미술관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런 측면에서 <린다 매카트니 회고전 -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은 흥행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집약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의 사진들은 슈퍼스타 폴 매카트니의 아내라는 그녀의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면 쉽게 찍을 수 없는 피사체 - 비틀즈 멤버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스타들까지 -를 담아낸다. 이처럼 작가와 작품(속의 인물)이 모두 엄청난 인지도와 명성을 가진 덕택에, 전시된 사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이는 어떤 예술적 의도나 맥락을 찾아보기 힘든 그저 누군가의 '가족 앨범'에 불과하지만 작품 자체의 예술성과 가치에 대한 판단은 '폴 매카트니'라는 거대한 명성 앞에 무력화된다. 여기에 지난 '청춘'보다 훨씬 더 절대적이고 광범위한 코드, '가족', '사랑', '추억'을 버무리고 작가에게 '20세기 최고의 여성 사진가'라는 호칭을 부여하면서 그녀에게 (다소 어설픈) 시대의 여성상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매카트니 가족의 사진들은 철저히 예술적 가족 앨범의 맥락으로 해석되고 감상되며, 린다 매카트니는 (최소한 전시장에서만큼은) 위대한 사진작가로 추대된다. 이처럼 전시는 유명인사의 일상 풍경을 조형적으로 '예쁘게' 담아내는 동시에 소중한 추억이 담긴 가족사진의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사실상 감동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렇기에 전시장의 사진들은 어떠한 비평적 관점이나 색다른 시각이 파고들 작은 틈새마저도 없는, '꽉 막힌' 사진으로 남아 관람객을 기다린다. 과연 어느 누가 이 가족사진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최초 업로드 : 2014/11/14 17:08



2016. 9. 26. 16:25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