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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옥인 콜렉티브 <작전명 - 님과 노래를 위하여> 퍼포먼스 현장 사진, 2014



느낌표로 시작했지만 줄임표로 끝나버린 외침

아트인컬처 2014년 11월호 뉴비전평론상 - 비엔날레 작품론

2014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라> : 최고/최악의 작품을 중심으로


글 이기원


소감이나 감상이 아닌, 비평의 영역에서 작품의 좋고 나쁨을 최고/최악과 같은 확정적 표현으로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일이다. 어떤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는 어떤 시각과 맥락으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있기에 명확한 평가기준과 목적 없이 내리는 판단은 사실상 의미 없는 혼잣말이거나 무책임한 낙인찍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먼저 최고/최악을 가릴 기준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비엔날레와 같은 대형 전시의 경우에 너무나도 많고 다양한 작품들을 한두 가지 잣대로 줄을 세워 좋고 나쁨을 평가한다는 조금은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제 전달 특히 무게를 싣고 있는 이번 비엔날레의 특성상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은주제와 작품 사이의 긴장감이다. 이는 비엔날레의 맥락에 매몰되는 도구적인 작품이나 주제와 동떨어져 단지 관객들에게 소개되기만 하는 것에 그치는 작품이 아닌 비엔날레의 맥락과 개별 작품의 의도 사이의 양극을 줄타기하듯 긴장감있게 중심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말한다. 전시의 흐름에 부합하면서도 작품 자신의 목소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줄 있는가이다.


과격한 지시, 익살스런 대답 - 옥인콜렉티브 <작전명 - 님과 노래를 위하여>, <작전명 - 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옥인콜렉티브(이정민, 김화용, 진시우) 그들의 탄생 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특정한 타자(3세계, 소수자 혹은 어떤 누군가) 다루기보다는지금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혹은 언젠가 해당될 수도 있는) 문제들을 꺼내 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증폭시켜 왔다.

이들은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 개의 작품을 내놓았다. 신작 퍼포먼스 <작전명 - 님과 노래를 위하여> 지난 2011년에 발표했던 퍼포먼스 <작전명 - 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영상 버전(2012)이다. 작품 모두 관객에게 어떤체조 가르치고 유도하는 메뉴얼 형태의 작업이지만 이면에는 최근 한국사회의 가장 고민거리인안전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전명 - 님과 노래를 위하여> 기습적으로 비엔날레 전시장 안팎의 방송 시스템을 통해 비엔날레 도슨트와 전시장 안전요원,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수행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지시에 따라 퍼포먼스를 함께 작동시킬 것인지, 혹은 오롯이 관람자로 남아 이를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척하고 지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관객은 퍼포먼스에 대해 어떤 선택지를 취하더라도 작전속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이른바비상시 사회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안전을 담보로 지시사항들이 과연 실제 상황에서도 매끄럽게 작동할 있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작전명 - 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지금까지 퍼포먼스 자체로 보여지기도 하고 때론 영화관의 스크린을 통해서 상영되기도 하면서 공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맥락과 분위기로 다가왔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의 목적 - 관객이 이를 따라 하며 작동시키는 - 달성하는 것에 있어서는 모두 성공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작품이 1전시실에서 2전시실로 이동하는 동선 한가운데의 통로에 설치된 덕분에 실제로 관객이 이를 따라하며 작품을 작동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작동불가 상태에 놓인 작품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드러낸다. 관객은 작품에 관심이 가더라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자신이 작품을 작동시키는 행위가 도리어 누군가의 전시 관람을 방해하는 일이 있다는 자기검열에 빠져든다. 이는 체제(사회) 앞의 무기력한 개인의 모습을 체험케 하는데 <작전명 - 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작동불능 빠져드는 풍경은 적극적인 참여자(도슨트, 안전요원, 자원봉사자) 주도하에 이뤄지는 <작전명 - 님과 노래를 위하여> 대조를 이루면서터전을 불태우라 주제의터전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옥인콜렉티브의 대답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옥인콜렉티브의 이번 작품들은비엔날레적 맥락 작품 고유의 목소리라는 마리 토끼 모두 잡았기에 주저없이최고의 작품이란 영예를 선사한다.



옥인 콜렉티브, <작전명 - 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스틸컷, 2012



느낌표에서 줄임표로 -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 <M.2062(피츠카랄도)>


비엔날레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5전시실은 다른 4개의 전시실과 달리 하나의 작품이 자리한다. 전반부 전시의 친절함을 고려했을 , 하나의 작품만 있다는 마지막 전시실에 대한 궁금증과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인지 5전시실에 들어서면? 정말 이게 다야?’ 같은 허무한 실망감이 밀려온다. 더군다나 그것이터전을 불태우라 다소 과격하게까지 보이는 명령문의 결론이라는 고려하면 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강렬한 느낌표나 차분한 마침표가 아니라 용두사미식의 맥빠지는 줄임표라고 수밖에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본다면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사실 111개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2062(피츠카랄도)> 광주 비엔날레 최악의 작품으로 고른 것은 높은 기대치에 대한 반작용이 크게 작용한다. 작품 자체만을 놓고 봐도 그렇고, 전시의 결론 부분이라는 맥락에서도 모두 실망감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5개의 전시실 하나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밀 있게 것은 분명 작가에게 많은 권한을 맡긴 것이기에 그만큼의 책임과 기대치 역시 작가가 감수해야 것이기 때문이다.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 지난 2008 테이트 모던에서유니레버 시리즈 일환으로 선보였던 <TH.2058>작업에서 테이트 모던의 거대한 터빈홀을 근미래의 어마어마한 홍수에 맞서는 피난처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2011 뉴욕 구겐하임에서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갑판으로 만들어 오케스트라 연주를 선보인 <T.1912> 통해 작품으로 공간과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하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증명해온 작가다. 그녀는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영화 <피츠카랄도(1982)> 배경이 되는 아마존 정글을 5전시실로 옮겨오려 의도한 같다. 하지만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통로와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외에는 관객을 몰입하게 요소가 드러나지 않는다. 덕분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게 되는 피츠카랄도의 홀로그램은 마치 유년시절 과학관이나 박물관에서 보는 홀로그램 체험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공간과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하고 남겨진 홀로그램 피츠카랄도로 분한 작가의 모습은 (표면적으로는)신디 셔먼(Cindy Sherman) <무제> 사진 시리즈의 3D 영상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M.2062(피츠카랄도)> 작품 자체에서 드러나는 약점 이외에도 과연 작품이 <터전을 불태우라> 주제와 부합하느냐의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혹자는 작가가 연기한 영화 피츠카랄도가 아마존 정글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배를 산으로 올리는 시도를 하고,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결국 이를 성공한 인물이라는 점에서터전을 불태우라 급진적이며 때론 비현실적이기까지 비엔날레 주제 메시지와 연결된다고도 말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끼워 맞추기식 해석에 불과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토록 친절했던 전시의 결말 부분에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다.

또한 작품이 작가가 광주 비엔날레를 위해 만든 신작이고, 그녀가 비엔날레 총감독인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 함께 전시를 꾸려본 경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전시의 주제에 대해 교감을 나누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의 맥락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시리즈<M.2062> 완성해 가는 데만 치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도한 억측은 아닐 것이기에 작업에 ‘2014 광주 비엔날레 최악의 작품이라는 위험한 낙인을 조심스레 찍어 본다.


Dominique Gonzalez-Foerster,  <M.2062(FITZCARRALDO)>, 2014


무엇을, 불태워야 하는가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라는 주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소재, 사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들이 다수 배치되면서 관객들을 전시를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비엔날레의 주제를 곱씹어 있게 하는친절한전시라고 있었다.

비엔날레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 2 전시실은 주제와 부합하는비엔날레적 맥락 작품들이 다수 배치되어 친절한 첫인상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각각 작품의 개성이 비엔날레의 주제 아래 뭉뚱그려지는 듯하고,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소 직접적이라 관객이 겉핧기식 감상에 머물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전시의 후반부는 끝으로 갈수록 전반부의 약점을 급하게 수습하려는 맥락의 일관성이 약해지고 단지 생소한 작가들을 나열하여 소개해주는 듯한 모습이 눈에 띈다.

또한 전시의 표면적인 인상을 겹만 걷어내고, ’집을 불태우라 제목의 당위성이나태워버릴대상에 대한 고민의 측면에서 바라보면일단 태워버리면 뭐라도 되겠지 같은 느낌을 지울 없다. 이런 맥락에서터전을 불태우라 지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광주(한국) 세계를 향해 외치는 함성이라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과연 2014년의 우리가 타자에게(구제도, 관습) 불태우라 말할 있는지, 다시말해터전을 불태워 보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고 이를 광주의 역사성에서 다시 끌어오기에는 2010 <만인보> 너무 가깝기에, 오히려 이를 제시카 모건(서양) 광주(한국 혹은 아시아)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해석하는 것이 설득력을 가질 같다. 사실 이는 어떤 방향으로도 명쾌하게 해소되는 의문은 아니지만.


사진 제공 : 광주비엔날레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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