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간과 장소의 초상사진 : 요네다 토모코

HIROSHIMA PEACE DAY, 2011, C-Print, 65x85cm

어떤 공간과 장소의 초상사진 : 요네다 토모코(Yoneda Tomoko)

글 이기원

사진은 태생적으로 언제나 ‘어떤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여 보여준다.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의 흔적을 더듬지 만, 이는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각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의해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다. 예컨대 장례식장에서 마주하는 고인의 영정사진은 누군가에겐 일생을 함께 해 온 배우자의 모습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어린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의 초상이며, 우직한 스승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떤 개인이 세상 속에서 부여받는 다양한 역할이나 지위만큼이나 한 장의 초상사진도 다양한 감정과 기억을 품고 있다.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일본 작가, 요네다 토모코(Yoneda Tomoko)는 어떤 공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녀의 사진은 관객을 공간의 기억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이며 어떤 장소의 초상(Portraits)이다. 이는 어떤 역사적 사건과 연관된 장소의 모습을 (표면적으로는) 평온한 풍경으로 보여주면서 사진이 촬영될 당시의 사건이 아닌, 이보다 더 먼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작가는 마치 초상사진을 찍듯 담담하게 어떤 공간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아 사진 속 장소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억에 대해 관객 스스로가 풀어갈 수 있게 한다. 이런 지점에서 사진 속 피사체는 기억의 실마리를 향한 이정표로 작동하며 아시아성, 근대, 과거의 흔적과 같은 키워드와 연결되어 이번 미디어시티 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와 2014 광주비엔날레 <터전을 불태우라>의 교집합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귀신 간첩 할머니>에 출품한 <평행하는 타인의 삶 - 조르게 간첩조직과의 조우>, <적운> 시리즈의 경우 2차대전의 어떤 스파이와 후쿠시마 사태를 비롯한 일본의 최근과 연관된 공간의 기억을 불러들인다. 특히 <평행하는 타인의 삶>에서 흐릿하게 찍힌 비밀 접선 장소의 모습은 얼핏 앗제(Eugene Atget)의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앗제의 사진은 19세기 말 당시의 풍경에서 멈춰있는 것과 달리 요네다 토모코의 프레임 안에는 사실 조르게 간첩조직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찍혀 있지 않으면서도 그 ‘기억’만은 남아 사진 속 시간을 촬영 당시인 2008년이 아닌 조르게가 활동했던 19세기 말로 돌려버린다.

또한 <터전을 불태우라>에서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대형 설치작품 <38 E. 1st St.> 내부에 설치된 <기무사>시리즈는 우르스 피셔의 작품과 결합되면서 좀더 흥미로운 지점에서 읽힌다. 과거 기무사령부 건물로 쓰였던, 다소 섬뜩하기도 한 기억을 지닌 공간의 무덤덤한 모습을 우르스 피셔의 아파트 <38 E. 1st St.>에서도 특히 (가장 포근해야할) 침실에 배치하여 작품이 가진 표면과 내면의 대비를 극대화하며 시각적으로는 우르스 피셔의 집에서 ‘창문’의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멀게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에서부터 가깝게는 이라크 전쟁이나 동일본 대지진까지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을 직접 경험했던 어떤 장소를 작업의 소재로 활용한다. 그렇기에 이들 사진은 어떤 공간과 장소에 대한 ‘영정사진’으로 작동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건, 혹은 사건이 끝나버린 장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에 담긴 다양한 관점의 기억과 감정을 이끌어낸다. 전통적으로 사진이 주목하고 내세우는 것은 ‘방금까지 현재였던' 찰나의 과거이지만, 요네다 토모코의 사진이 다루는 시간은 '어떤 찰나'가 아니라 어떤 사건이 일어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긴 범위를 아우른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사진이 마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 만들어진 음식이 차려진 식탁의 모습과 같다면, 그녀의 사진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 빈 접시만 남은 풍경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