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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자신의 아우라를 만들어가는 방법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전, <The Masterpieces>, 14. 7. 5 - 9. 6


글 이기원


 사실소장품전이라는 제목을 걸고 나온 전시들은 대부분 이른바박물관식으로 구성되어 딱히 어떤 기획의 힘이 발휘되지 못하고 그저 작품을 나열하는 그치는, 마치 '우리가 가진게 이정도 된다 듯한 자랑과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한미사진미술관의 이번 소장품전 역시 특별히 소장품을 재구성하거나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고 기존 소장품전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소 뻔한 소장품전이라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시를 보러 것은, 비유하자면전시라는 숲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나무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전시장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앗제(Eugene Atget) 사진들을 마주한 순간, <밝은 > 구절에서 롤랑 바르트가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인 제롬의 사진을 보며 했던 감탄- “나는 지금, 황제를 직접 보았던 눈을 보고 있다”- 떠올랐다. 앗제의 손길과 시선이 머물렀던 인화지를(물론 전시장의 모든 앗제 작품이 빈티지 프린트는 아니었지만)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느낌은 처음 앗제 사진의 진가를 발견한 초현실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이후 수많은 사진가, 이론가들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미술작품의아우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있겠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을 보며 느끼는 신비스러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진의 의미와 맥락은 도판으로 때와 원본을 마주했을 ,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회화나 조각과 비교하였을 사진은 자체로는 딱히 어떤 하지 않는다. 다만 슬며시 뭔갈 가리키는 정도(Index) 표현만을 담고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지시 관람자의 경험과 시각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에 오히려 작품을 보는 사람이 사진에 말을 걸게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앗제의 사진은 없는 사진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사례로 꼽힌다. 사실 앗제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이 그의 사진을 본다면, 그저 유럽 어딘가의 거리를 찍은 무척 오래된 사진이라는 해석만 가능하다. 게다가 사진에 대한작가의 의도역시 단지 기록하기 위해 거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제의 사진이 이토록 유명해지고 미적 가치를 인정받게 것은 앗제 사진이 가졌던묘한 기운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이 남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의 아우라는 사진 자체로부터의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바깥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앗제의 사진을 통해 마주하는 아우라는 분명 회화나 다른 예술작품에서의아우라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자체로부터 발현되는 어떤기운이라기 보다는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사람이 사진을 통해 느끼고 해석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감상문' 같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 느끼는 것과 비슷할 있지만, 해석의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소장품과는 차별화된다. 박물관의 유물이 철저하게 어떤 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문제 같은 것이라면, 사진은 어떤 답이 없는, 정확하게는 답을 없는 윤리적, 철학적 문제에 비유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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