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로딩중입니다.
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듣지 않는 소리를 재생하다 

김영섭, re-play 

자하미술관 / 12. 06-2014. 1. 5 


2014년 아티클 1월호

글 이기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소리와 함께 살아간다. 이는 어떤 의미가 담긴 '' 수도 있고, 음정과 박자로 구성되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지 형태의 소리와 달리 흔하게 접할 있지만 그야말로 ' 귀로 듣고 귀로 흘려버리는' 어떤 소리도 있다. 김영섭 작가는 이렇게 생활 속에 부유하는 어떤 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아홉 번째 개인전 <re-play> 자하미술관에서 1 5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이라 있는 설치 작업 <re-play, 2013> 거리에서 흔히 접할 있는 러버콘(Rubber cone) 원통 기둥과 결합한 거대한 구조물로, 각각의 러버콘 속에는 스피커가 부착되어 작가가 도시 곳곳에서 채집하고 재배열한 일상의 소리를 무규칙적으로 재생한다. 일반적으로 통제, 경고, 접근금지의 용도로 쓰이는 러버콘은 작품을 통해 확성기의 고깔과 같은 소통, 확산의 속성을 가진 오브제로 변화하지만 정작 진동판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은 자동차, 환풍기, 바람, 매미 소리 누구도 관심 주지 않는 소음이다. 이러한 소리는 자연에서 비롯된 소리인지 인공적인지 구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로 스쳐 가지만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와 도시의 목소리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관람자는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세상의 단면을 되짚어보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목소리에 주목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들으려 하는 현대인에게 이러한소음 존재는 우리 사회에서 무시당하며 흘러가버린 이들의 목소리와 닮아있다.


경항신문 인터넷판 기사 링크


+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


 부암동은 매력적인 동네다. 조용한 교외에 있는 고즈넉하고 차분하며, 건물들은 서로 자신의 규모를 가지고 경쟁하지 않고, 이웃처럼 옹기종기 자리한다. 억지스럽게 꾸며놓은 핸드폰 가게나 프렌차이즈 카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버스를 타고 고개 하나만 넘어가면 서울의 심장인 광화문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나는 부암동과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보러 자하미술관에 찾아가면서, 나는 나의 ‘드림 타운’ 부암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 자하미술관을 가본적이 없고, 딱히 들어본 적도 없던 터라,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부암동 주민센터에 내린 다음부터는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섰다. 일요일 오전이라 예상대로 한적했다. 지도를 보고 표시대로 가고 있는데 어느순간 나는 그야말로 ‘산으로 가고있었다. 평소 오래 걷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나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경사는 점점 심해지고 과연 이런곳에 미술관이 위치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으며, 혹시 내가 길을 잃거나 지도 앱에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고,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에게 더플코트와 닥터마틴을 신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생각했다. 그렇게 점점 올라가다 보니 도대체 곳에서 일하는 누군가는 매일같이 출근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 궁금해졌다. 경사로 봐서는 차가 있다고 해도 눈이나 비가 오면 그마저도 쉽지 않을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몇분 여를 올라 미술관 건물 - 사실 그보다 올라가면 이상 건물이 없었다 - 도착할 때쯤 나는 의지와 관계없이 담벼락에 주저 앉아 숨을 골랐다. 평정을 되찾은 차분하게 미술관으로 들어가는데, 미술관 주차장에 요즘은 흔히 없는 지프차(코란도) 대가 보였고 출근길에 대한 의문은 그렇게 해소됐다. 헐떡이는 숨을 최대한 잠재우고 차분하게 전시장에 들어서니, 지프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나와 2 전시장 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반쯤 진이 빠져 마주한 작품이 <re-play>였다.


 2층까지 전시를 보고 미술관을 빠져나와 다시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는데 문득 <re-play> 소음들이 떠올랐다작가가 미술관이 위치한 부암동의 장소적 특성을 고려했는지는 없지만작품에서 들려왔던 매미소리, 자동차 소리, 없는 기계소리는 서울의 다른 곳에서는 흔히 들을 있지만 부암동에서만큼은 이질적인 소리였다. 그런 부암동의 가장 깊숙한(실은 높은) 곳에서 외부의 소리를 다시 듣고 그곳을 빠져나와 또다시 그런 소음이 넘실되는 곳으로 향하면서, 전시장에 오고가는 과정까지 작품 감상 과정에 포함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미술은 더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는 신제품 발표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6. 9. 26. 16:06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