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글 이기원
지금까지 예술가나 어떤 작품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관점에서 선보여왔다. 이는 위인전기식 구성으로 예술가의 삶을 담은 <프리다>, <취화선>,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등에서부터, 작가 본인만을 다루기보다 예술가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출발한 <팩토리 걸>, <퍼>과 같은 스타일로 나타나기도 하고,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에서처럼 작가가 아예 감독과 주연으로 나서 영화를 자신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마치 예술가 종합선물세트처럼 시대를 통째로 옮겨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지금까지 예술가를 다룬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해당 예술가의 언급이나 출연이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이야기할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하 셜리)>은 철저하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으로부터 비롯된 영화지만 그가 등장하지도 않고, 언급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셜리>는 앞서 소개했던 영화들과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 어떤 영화를 보는 관점 자체에서 벗어나 바라봐야한다.
<셜리>는 호퍼의 작품 13점이 바로 하나의 씬이 되어 13개의 씬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씬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작품을 재현한다. 덕분에 이 영화는 문자 그대로 ‘그림 같은’ 영상미를 통해 어느 순간을 정지시키더라도 하나의 작품으로써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장센을 보여준다. 감독은 호퍼의 작품으로부터 ‘셜리’라는 당대의 무명 연극배우를 창조하여 이미지에서 비롯될 수 있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각의 씬은 원작의 제작년도에 따라 배열되어 그 시대와 배경을 라디오 뉴스로 전하며 시작되고, 1930~60년대 미국을 살아가는 무명 배우의 고민과 고독을 담아낸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어떤 현실을 재현하고 표현해왔지만 <셜리>는 어떤 현실보다는 호퍼의 작품 자체를 재현하는데 주력하며, 다른 영화적 요소(스토리라인)는 주석처럼 덧붙여진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어떤 예술가와 그의 작품으로부터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세련되고 현대미술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져 영화와 비디오 아트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림 같음’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그림 같다’라는 말을 어떤 자연경관 즉 어떤 현실을 보고 감탄하는 표현으로 흔히 사용한다. 하지만 이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자연경관을 그림에 끼워맞추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사실 그림은 자연에 대한 모방 혹은 재현물인 것이 이 논의의 핵심이다. 아직까지 나는 '그림 같음'이란 표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진 못했지만, 이 영화 <셜리>에서의 '그림 같음'은 또다른 지점에서 논의를 연장한다. 영화 속 장면에서 느끼는 '그림 같음'은 어떤 현실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현실로부터의 모방인 그림을 다시 스크린 속으로 재현했기에 느껴지는 '그림 같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림 같음'이란 감탄이 평소 쓰일때보다 이 영화에 대해 쓰일때 좀더 명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가 예술가를 소재로 한 영화 리스트에 새로이 포함되는 것보다는 하나의 비디오 아트로써 바라보고 싶다.
<셜리>는 분명 ‘매력적인’ 영화다. 영상미는 두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예술가를 다룬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한 예술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재밌는’ 영화는 아니다. 13개 가량의 씬이 92분의 러닝타임에 담기면서 각각의 씬이 늘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내용적 측면에서도 특별한 사건이나 변화가 없어 지루했다. 나는 중간중간 감기는 눈커풀과의 싸움에서 몇번이나 패배하고 의식을 잃었지만 이를 포함하더라도 이 영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지루한 예술영화로 잊혀질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