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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한 달간 본 전시들 - 2015년 6월

*리뷰라기 보다는 감상평에 가까운, 한 달동안 봤던 전시에 대한 매우 짧은 관람후기



<오토세이브 : 끝난 것처럼 보일 때>, 커먼센터, 15.6.4 - 7.19 

16명의 작가, 16명의 디자이너 그리고 16명의 비평가가 16개의 팀으로 묶여 커먼센터의 16개의 방을 점유하고, 각 작가에 대한 포스터와 도록, 평문을 선보이고, 발전시키는 전시. 16인의 단체전이라기 보다는 16개의 개인전 모음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형식은 그간 커먼센터에서 해온 어떤 전시보다 공간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 전시가 16명의 개인전 묶음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16명의 작가가 어떤 맥락에서 선정되었는지 모호한 측면이 있고, 16개 개인전의 총합 이상의 어떤 것은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타임라인의 바깥>, 지금여기, 15.6.5 - 6.28 

 지금여기의 직전 전시였던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은 참여한 작가도 많았고 개관전이라는 특성상 기획력 자체가 드러나기 쉽지 않은 전시였던 점을 고려할때, <타임라인의 바깥>은 지금여기의 실질적인 첫 기획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는 이시대에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일로 치부되는 예술에서도 특히 더 집요하고 무모하게 무의미한 행위를 작업의 소재로 삼는 5인의 작가들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 작업이 ‘예술’의 탈을 쓴 헛짓거리와 민폐로 점철된 대학 1~2학년생들의 처참한 과제와 같은 ‘무의미의 밑바닥’까지 추락하지 않는, 매우 영리하게 ‘적당히’ 무의미한 지점을 짚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60~70년대생 작가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선배 세대가 (상대적으로) 일단 밀어붙이고 보는, 이른바  ‘끝장’을 보자는 태도로 작업에 임했다면, 80~90년대생 작가들의 경우 리스크가 큰 ‘한 방’을 노리기보다는 ‘지속 가능성’에 중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는 느낌을 늘상 받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이 전시는 젊은 작가들의 ‘조심스러움’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을 때의 결과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권도연 작가의 영상작업에서 영상미가 가장 돋보였고, ‘재미’의 측면에서는 공석민 작가의 <속임의 기술>과  강정석 작가의 <콩알탄 사나이 교집합>이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역시 <콩알탄 사나이 교집합>이 압도적으로 재미있었다.       



<피스마이너스원>, 서울시립미술관, 15.6.9 - 8.23

 사실상 지드래곤이 전시의 주제이자 소재로 작동하는 새로운 형식의 블록버스터 전시. YG가 참여작가의 작품제작비를 지원하고 전시 종료 후 작품을 모두 구입하기로 했다는 사실에 비춰 참여작가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작가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철저히 손해보지 않을 '안전한' 선택을 한 것으로 읽힌다. 이에 13,000원이라는 다소 비싼 입장료의 존재까지 고려하면, 결국 YG는 이번 전시를 '지원'한다기보단 '투자'의 맥락에서 바라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립미술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개인적으로는 과거 블록버스터 전시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던 시립미술관 앞 ‘티켓 박스’의 부활이 괜시리 거북했다. 

전시 자체만 놓고 보면 '블록버스터'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국내 어떤 전시보다 완성도는 높은 편이다. 사실 전시가 열리기 전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혹여나 GD 자신이 끼적거린 스케치나 그의 인스타그램 사진이 전시되는 풍경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를 두고 ‘연예인 예술가’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초점이 한참 나갔다고 생각한다. 또한 각종 일간지가 그동안 수많은 블록버스터 전시기획사들의 호들갑에 동조해왔다는 걸 고려하면 그들의 공격(?)역시 얼토당토 않을 뿐더러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이정도 퀄리티에서 입장료만 어느정도 개선된다면, 이런 돈벌이용 전시도 격년에 한 번 정도는 용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과연 국내에서 GD를 제외하고 '현재 작동하는 문화적 아이콘’의 지위에 오를만한 이가 또 누가 있을까 싶다.  



<은밀하게 황홀하게>, 문화역서울 284, 15.6.10 - 7.4 

전시되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유적지로 작동하는 구서울역사와 힘겨루기를 해야하는 이 공간의 특성상 평면 작품들, 그중에서도 사진을 전시의 중심으로 가져가기는 무척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시장 곳곳에 작품의 존재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엿보이지만 그 한계 역시 남아있다. '빛'이라는 시각예술의 만능키를 주제로 뽑아든 것은 다소 순진하게 느껴진다. 전시 제목도 마찬가지. 하지만 공간에 완전히 묻힐 것만 같았던 케르테츠와 만레이를 비롯한 20세기초 흑백사진들로 전시의 가장 인상깊은 공간을 만들어낸 것은 주목할만하다. 포토닷 7월호에 리뷰를 실었다.


김영경 <보이지 않는 도시들>, B.CUT 캐주얼 갤러리, 15.6.3 - 6.30

오래된 골목을 찍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김영경의 골목 사진들은 ‘장소성’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면서 오로지 공간 자체의 모습에만 집중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한편 이 전시가 열린 연희동의 B.Cut 갤러리는 1인 미용실과 갤러리가 결합된 다소 생소한 형태의 공간인데 작품이 미용실 집기에 묻히지도, 그렇다고 확 튀지도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배치되어 새로운 형식의 대안적 전시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포토닷 7월호에 이번 작업과 관련한 인터뷰가 실렸다.


<B면>, 더텍사스프로젝트, 15.6.20 - 6.30

작가들의 숨겨놓은(혹은 타의에 의해 숨겨진) 작품들을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이렇게 숨겨졌던 작품에 대해 쓰는 표현인 'B Cut'과 'B Side'는 얼핏 비슷한 개념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작품 자체의 문제(완성도, 일관성)로 시리즈에 묶이지 못하고 결국 '작품이 되지 못한' 것을 'B Cut'이라 한다면, 'B Side'는 말 그대로 '다른 면' 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작품으로 작동하는데 별다른 문제 없는, '공개되지 못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동안 몇가지 키워드로만 규정되어 'OOO 작가'로 이미지가 굳어진 작가들의 새로운 작업들은 인상깊었지만, 몇몇 작품들은 작가의 이면을 보여주지도, 그렇다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지도 못하는 'B Cut'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박진영+강홍구 <우리가 알던 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5.5.19 - 10.11 

‘도시'라는 소재를 다루는 두 작가의 조합과 대비가 무척이나 흥미로운 전시. 또한 마치 ‘이스터 에그’처럼 두 작가가 전시장 곳곳에 숨겨둔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이나,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진전'의 형태를 띤 전시 중 공간활용에 대한 고민과 계산이 엿보이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 자세한 이야기는 포토닷 8월호에 리뷰가 실릴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Untitled(무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5.5.5 - 7.26 

각종 '무제(untitled)' 작품들로 구성된 소장품전. 전시서문에서는 기획자가 '무제'인 전시제목을 관철시키는데 있어 미술관 내부적에서도 반발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보다 더 명확하고 효과적인 제목이 무엇이 있었을까 싶다. 또한 그저 ‘무제’인 작품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제목을 공모한다거나 ‘무제’에 관한 통계와 인터뷰를 보여주는 등 ‘소장품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기획력을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시장 한켠의 통계가 밝히듯 '무제'로 명명된 작품들의 제작연도가 대체로 90년대 이전인 덕분에, 작품들은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아 박물관을 도는 기분이었다. 


<아키토피아의 실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5.6.30 - 9.27

<우리가 알던 도시>와 연계하여 ‘도시’를 주제로 한 건축전. 내게 ‘건축'은 언제나 선망과 경이로움의 대상이지만 그만큼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난해한 분야이기도 하다. 이 전시도 여느 건축전처럼 방대한 자료와 암호처럼 보이는 기호들이 시/지각 기능을 혼미하게 했다. 그나마 인상깊었던 점은 전시장을 한 권의 잡지를 보는 것처럼 공간을 분할하여 어떤 ‘서사’가 느껴지는 건축전이였다는 점 정도.  



최초 업로드 : 2015/07/14 01:24

2016. 9. 26. 16:35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