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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한 달간 본 전시들 - 2015년 5월
*리뷰라기 보다는 감상평에 가까운, 한 달동안 봤던 전시에 대한 매우 짧은 관람후기


잭슨홍 <Cherry Blossom>, 시청각, 15.3.19 - 5.3
실제 사람크기로 제작된 작품들은 시청각에 들어서는 순간 '움찔'하게 한다. 전시장 곳곳에 자연스럽게 자리한 인물(작품)들은 시청각이라는 공간을 전시장이라기 보다는 그것의 본래 용도(한옥집)로 작동시킨다. 특히 관람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인 '택배 아저씨'는 조금은 당황스런 일련의 상황들(발버둥치는 아저씨, 인형에 눈깔 붙이는 할머니, 비스듬히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는 아저씨, 구석에 쪼그려 핸드폰만 바라보는 아이, 금발의 선녀)을 지켜보는 외부인으로써 관람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유독 나는 시청각에서 전시를 볼 때, 관람객의 입장 그 이상으로 이방인이 된 느낌을 자주 받는 것 같다.
 

남화연 <시간의 기술>, 아르코미술관, 15.4.10 - 6.28
영상 작업들은 대체로 흥미로웠지만, 전시장 벽면과 영상 작업을 둘러친 가벽 사이에 걸려있는 사진 작업 <개미시간> 시리즈는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공간의 규모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아서 다소 허전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 '허전함'에 딱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지진 않았다. '시각', '눈', '보는 것'에 대한 묘한 집착같은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영상작업 <동방박사의 경배>가 특히 인상깊었다. 


<한반도 오감도>, 아르코미술관, 15.3.12 - 5.10 
괜찮은 전시일 것이라 기대치가 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둘러보니 '아 역시 베니스 황금 사자상은 다르구나..'를 느낀 전시. 사진, 회화, 디자인, 건축, 영화, 책 등 다채로운 분야를 모두 망라하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와 작품들을 전혀 산만하지 않게 배치하고 이를 긴장감있게 조율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처음으로 35mm 슬라이드 필름을 루페로 살펴 봤을때의 경이로움(?)이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안세권 작가의 공간에서 35mm 뿐만 아니라 중, 대형 슬라이드 필름을 루페로 땡겨보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도 무척 즐거웠다.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 <자가해체8 : 신병>, 아트선재센터, 15.4.11 - 7.26
이유를 딱히 꼽을 순 없지만, 아트선재에서 열리는 전시들은(특히 개인전) 아트선재센터라는 공간의 느낌을 서로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전시 역시 이전 전시였던 히만 청 개인전의 첫 인상과 비슷했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자가해체8 : 신병>은 마치 레고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건축 지역 폐기물들을 배치, 조합하여 전시장을 나선형으로 둘러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딱히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한 것 같고, 나선 구조의 가장 끝이자 가운데에 놓인 어떤 희귀동물(이름을 들었는데 까먹었다.)의 존재 역시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나마 흥미로웠던 것은 대우 '탱크' 냉장고 문짝이 작품의 일부분으로써 놓여있었다는 점과 전시장 3층 바닥에서 발견한 스마트폰에서 작품이 상영되고 있는 모습 정도.


<환영과 환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5.2.10 - 5.17
어떤 전시는 각각의 작품만 보면 다소 그저그런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시'로 묶어내는 과정에서 산술적 총합 이상의 것을 보여주면서 '기획력의 힘'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이 전시는 정확하게 이와 반대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환영과 환상'이라는 전시제목과 전시된 작품들을 연관짓기엔 너무나 1차원적이어서, 마치 인사동 대관갤러리의 어떤 단체전 제목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현실-가상 혹은 실체-이미지의 관계나 '환상성'을 이야기하는 전시의 주제에 있다. 서문을 읽어보면 기획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쯤에서 방금 뛰어나와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로봇 에세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5.4.28 - 7.19
첫 인상은 혜화동 국립 과학관의 2015년 버전같은 느낌이었지만 각각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저마다 다른 영역에서 과학기술과 인간, 예술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엿보였다. EXP LAB의 <미래에서 미래주의까지>의 꼼꼼한 리서칭과 아카이빙은 전시 전반을 놓고 봤을 때, 그저 로봇 기술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결산하고 앞으로의 고민을 담는 부분을 담당하면서 전시의 완성도를 더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승백, 김용훈 작가의 <CAPTCHA Tweet>이 재밌었는데, 컴퓨터가 컴퓨터를 속이는 기능을 '프로그래밍'했다는 전제도 그렇지만 문구를 입력해서 나오는 이미지 자체가 조형적이기도 했다. (이는 트위터 계정 @captcha_tweet_2 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 현장제작설치 인터플레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5.4.14 - 8.23
각각의 작품들이 효과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점까지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읽어낼 순 없었다. 거창하게 관객을 압도하려 하는 몇몇 작업들보다 오히려 공간을 가장 '소심하게' 점유한 로스 매닝의 <스펙트라>가 흥미로웠다.


<마크 로스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5.3.23 - 6.28 
추상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그저 로스코의 실제 작품을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목적 없이 설렁설렁 둘러보았다. 작품 앞마다 벤치가 놓여 앉아서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지만 전시장 사방팔방에 쓰여진 텍스트가 너무 과하게 작품감상에 개입하는데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엉성(과한 외래어 사용에 주술호응도 불명확)하여 무척 거슬렸다. 문득 ‘전시장 텍스트 실명제’와 같은 걸 시행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전시장 출구에 다다르면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 떠오를 정도로 감동과 전율, 눈물을 이야기하는 호들갑스러운 감상평이 온 사방에 붙어 '감동'을 주입시켜 부담스러웠는데, 마치 유명인사들과 함께 감동의 대열에 합류하여 통곡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개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외에도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살풍경들이 존재하지만, 역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로스코가 생전에 남긴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된다작품에는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도 안된다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 라는 말이 수많은 설명 텍스트와 함께 전시장 벽에 쓰여있는 모순적인 풍경이었다. 



유목연 <모험도감>, 사루비아다방, 15.5.20 - 6.20 
사실 나는 그간 단 한번도 테마파크의 ‘귀신의 집’에 들어가본 적이 없지만, 전시장 입구의 ‘경고문’을 마주하고는 이 전시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잠시 해보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크게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그동안 본 어떤 전시보다 긴장된 상태에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다. 전시장 입구의 안내문의 마지막 항목인 ‘자신을 스스로 지키라’는 지시는 꽤나 성공적으로 수행(한번도 머리를 찧거나 넘어지지 않았다)했지만, 전시의 마지막 장소에서 마주한 퍼포머 분을 정교한 인형으로 착각해서 그냥 지나쳤다가 갑자기 말을 하시기 시작해서,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의연한 척하며 그녀의 독백을 경청했다.(이때도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 관람객을 전시에 몰입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정말이지 어떤 전시와도 비교가 불가능하다.



홍진훤 <마지막 밤(들)>, 스페이스 오뉴월, 15.5.29 - 6.20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를 다니며 촬영한 작업을 선보이는 홍진훤의 개인전. 나에게 휴게소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은 서둘러서 광활한 화장실과 다채로운 스낵코너를 찍고 15분 안에 돌아와야하는, 사실상 ‘휴식’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었다. 덕분에 당연하게도 휴게소의 화장실과 스낵코너를 제외한 공간들이 어떻게 조성돼 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정확하게는) 알 생각도 없었다. 작가는 기억 속에서 파편적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인 고속도로 휴게소의 구석구석을 밤에 기록하면서 이들의 낯선 모습을 강조한다. 이는 그 자체로도 생소하고 낯선, 거기다 조형적인 풍경이기에 시선을 끈다. 작품들은 엄연히 우리 주변에 존재해왔지만 누구도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어떤 풍경을 단순히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지막 밤들'이라는 제목을 통해 사진의 표면 너머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최초 업로드 : 2015/06/08 21:55

2016. 9. 26. 16:35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