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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보호기는 무엇을 보호하는가 : 김희천의 ‘/Savior’에 관하여


글 이기원



<뉴 스킨>(일민미술관, 2015>과 개인전 <랠리>(커먼센터, 2015)에서 김희천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던 방식을 떠올려 보자. <뉴 스킨>에서의 ‘바벨’(2015)을 제외하고, ‘Soulseek/Pegging/Air-Twerking’(이하 S/P/A, 2015)과 ‘랠리’(2015) 두 작업은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이밀기보다는 관객이 작품을 찾아가야 하는 방식으로 배치됐다. <뉴 스킨>에서 작품배치도를 꼼꼼히 보지 않으면 그곳에 작품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만한 작은 방에 배치된 ‘S/P/A’나,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던 한겨울의 커먼센터를 한 바퀴 돌아보고서야 작품과 마주할 수 있게 안내된 <랠리>의 구조에서 이들 영상 작품들은 마치 전시공간이라는 껍데기를 파고들어 찾아내야 할 ‘알맹이’처럼 보인다. <유명한 무명>에서 ‘동시상영’ 했던 ‘S/P/A’와 신작 ‘/Savior’는 좀 더 ‘김희천다운' 방식으로 알맹이-껍데기 관계를 조성한다.?


이처럼 관객이 작품을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구조는 <랠리>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특히 전시공간에 작품 속 레이어(유리 파사드)를 덧씌우면서, 관객이 커먼센터의 1층 한구석에서 영상 작업을 찾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문이 제거된)커먼센터 전체를 ‘랠리’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희천의 이런 보여주기 방식은 <유명한 무명>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작가는 관객이 두 작품 중 무엇을 관람할지 스스로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한다.

관객은 ‘S/P/A’를 관람하는 도중 돌발적으로 등장하는 팝업창-몇 초 안에 컴퓨터가 잠들기에 들어간다는-에서 취소 버튼을 눌러 보던 작품을 계속 감상할지, 슬립 버튼을 누르거나 이를 방치해 ‘/Savior’로 넘어갈지, 또는 이미 ‘/Savior’가 상영되고 있을 때 마우스를 건드려 ‘S/P/A’로 돌아올지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Savior’의 러닝타임이 4시간이 넘어가고, 이것이 20초짜리 스냅 영상을 선형적으로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령 인내심 많은 누군가가 전시장의 마우스를 4시간 이상 건드리지 않고 끝까지 감상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Savior’는 감상해야 하는 영상작품이기보다는 그 제목처럼 화면 보호기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설치작업이나 작품을 보조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Savior’는 독립적인 영상 작품이기보다 <뉴 스킨>의 목재 구조물이나 <랠리>에서 텅 빈 커먼센터와 같은 역할에 가까워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작업 자체에 좀 더 파고들어 살펴보면, ‘/Savior’를 구성하는 짤막한 영상들은 ‘틈틈이, 튼튼히’(2013, 링크)의 기본 단위인 스냅사진과 유사한 지점에 놓인다. ‘틈틈이, 튼튼히’가 자신의 스냅사진을 하나의 통계 데이터로 보고 ‘1년간 찍은 사진’을 분석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Savior’를 구성하는 인스타그램 영상 역시 그가 1년간 본 것을 기록한 ‘영상 버전의 결과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들 스냅 영상을 놓고 어떤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두 가지 스냅 이미지들은 철저히 그가 ‘본 것’ (좀 더 정확하게는 ‘그의 카메라가 본 것’)을 내보이는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와 달리 바벨 3부작의 3D 모델링 된 세계와 납작한 폴리곤들은 그가 ‘본 것’보다는 ‘감각한 것’을 대표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런 지점에서 ‘/Savior’는 3D 모델링으로 만들어진 껍데기(‘S/P/A’)를 감싸는 ‘재현 이미지-직접 촬영된 이미지’로 작동한다. 이처럼 이미지의 무게를 가늠하는 기준의 역전은 김희천이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을 가장 명료하게 지칭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2016. 9. 26. 16:44  ·  re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