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로딩중입니다.
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매체는 우리를 따라오는가? - <매체연구 : 긴장과 이완>
대구미술관, 2017.6.6-9.10


퍼블릭아트 2017년 9월호 Review

글 이기원 

미술비평·『VOSTOK』 편집동인

작가가 자신이 다루는 매체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은 어쩌면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각자에게 주어진 매체의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적 변화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매체의 성질을 짚어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특히 2010년대에 접어들며 액정화면의 납작한 이미지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며 급격히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시각예술을 다루는 동시대의 작가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주제다.
<매체연구 : 긴장과 이완>전은 크게 세 파트, ‘변형과 구축’(권오상, 조재영, 백승우), ‘침잠과 탐구’(정희승, 박정혜, 안지산), ‘변주와 놀이’(백현진, 최성록)로 나뉘어 작품 배치 역시 이에 맞춰 구성됐다. 하지만 전시장을 둘러보면 위의 분류보다는 자연스럽게 참여 작가들을 다루는 매체(조각, 사진, 회화)에 따라 구분하고 이들이 같은 매체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각자의 관점과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비교해보게 된다. 물론 이는 ‘매체연구’를 주제로 하는 기획전을 관람하는 가장 진부한 방법일 수 있지만, 참여 작가들 간의 관점을 비교하며 살펴보기에는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방식일 것이다.


권오상 조재영 전시전경



조각을 주된 매체로 다뤄온 권오상과 조재영은 고전적인 매체로서 조각이 갖는 전통적인 규범과 개념에 의문을 가지고 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권오상은 ‘데오도란트 타입’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사진조각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시키며 ‘사진과 결합한 가벼운 조각’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로 매체를 다루고 해석하는 방식을 제시해 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릴리프’ 시리즈는 이미지를 확대 출력한 평면 판넬 작업으로 단순한 평면 이미지가 아닌, (그 제목의 의미하는 것처럼) 부조의 맥락에서 두께와 층위가 있는 평면 형태의 조각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권오상과 같은 공간을 점유한 조재영의 작품들은 얼핏 일상적인 조각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어딘가 생략되고 단순화된 입체로서 특정한 면을 부각시키거나 위계를 두지 않는, 그러니까 ‘정면’이 존재하지 않는 조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 작품은 모든 측면이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기 때문에 하나의 이미지-도판-으로 압축 또는 요약될 수 없는 성질을 가진다. 조재영이 이미지화되기 어려운, 조각의 고유한 특성을 조명하는 작업을 선보였다면, 권오상의 작품은 평면화된 조각을 보여주지만 그것의 이미지는 (가상의) 3차원 입체를 지시하면서 관람객이 보는 것이 평면의 이미지인지, 입체 조각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 이처럼 두 작업은 동시대의 조각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고, 또 관람객과 어떻게 마주하게 되는지 고민하며 이미지화된 입체라는 교차점을 공유한다.


백승우 전시전경


정희승 전시전경


백승우와 정희승은 모두 사진을 주된 매체로 다뤄온 작가이지만, 이들에게 ‘사진가’라는 호칭은 다소 어색하게 다가온다. 기본적으로 ‘사진가’가 사진이 가진 특성, 그중에서도 객관성과 기록성을 토대로 순간을 포착하거나 장면 또는 풍경의 특정한 부분을 강조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은 여기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에게 ‘사진가’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서로 조금 다르다. 백승우는 그의 초기 작업부터 일관되게 사진의 태생적 특징으로 여겨온 사진의 객관성, 다시 말해 사진에 따라붙는 ‘진실을 기록하는 매체’라는 수식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는 단순히 카메라로 어떤 장면을 포착하고 사진 내부에서 그 장면이나 피사체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보다는 이미지를 재구축/재가공하고 사진 바깥의 맥락을 이용해 사진 매체가 가진 특성을 짚거나, 사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속성의 취약점을 건드리며 사진이 얼마나 무기력한 매체인지 이야기한다. 반면 정희승의 사진들은 표면적으로 정적이고 무미건조한 이미지로 보이지만, 회화적인 이미지로서 조형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마치 문장을 직조하듯 이미지들을 세심하게 배치하고 그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이런 지점에서 디자이너 박연주와 협업한 사진집이나 둘이 함께 운영하는 출판사 ‘헤적프레스’의 작업 역시 정희승이 집중하는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 연구의 연장 선상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정희승은 전시장 벽을 마치 사진책의 지면처럼 다루며 작품을 배치했다. 특히 슬래시(/), 대시(-)와 같은 문장기호를 지시하는 황동 구조물을 사진 사이에 두면서, 전시장을 단순히 11점의 작품이 걸려 있는 공간이 아니라, 11점의 작품이 하나의 지면처럼 이어지며 11점의 산술적 합 이상의 것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정희승에게 사진은 어떤 기록이나 객관적 사실이기보다는, 하나의 시각언어로 자리하며 관람객에게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을 고민하고, 새로이 바라보게 한다.
백승우의 공간은 ‘유토피아’와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리즈로 구성됐는데, ‘유토피아’ 시리즈는 일본에서 구입한 북한의 이미지들을 재가공한 작업이다. 전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Utopia-#032’는 백승우가 사진에 대해 던지는 물음과 고민이 가장 명확하게 시각화된 작업 중 하나다. 이는 얼핏 우리가 관념적으로 상상해온 북한의 건물을 찍은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사진의 객관성이나 기록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작가는 자신이 재조합한 이미지를 13개로 쪼개 13개국에 보내면서, 같은 인화지에 같은 데이터로 프린트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작가의 요청에 맞춰 어떤 보정도 가하지 않은 채 출력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의 출생지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각기 다른 색상으로 출력됐다. 이렇게 백승우는 사진의 안팎에서 여러 의문을 던지고 그것의 허점을 지긋이 찌른다.


안지산 전시전경


우리가 보는 것들이 대부분 액정화면을 매개로 한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동시대 회화의 가장 큰 고민은 “회화는 (사진 이미지와 다른)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로 좁혀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감각하는 이미지의 비중이 디지털 이미지로 넘어오면서 더 이상 온/오프라인이 가상/현실과 맞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환경이 더 이상 가상의 무엇이기보다 그 자체로 현실로 인식되기에, 이미 카메라를 거쳐 재현된 이미지를 다시 복제해 회화로 그려내는 것은 마치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회화 작가들은 가장 직관적인 매체로서의 회화가 자신이 감각하는 것을 어떻게 액정화면 속 이미지와 다른 방식과 형태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안지산은 작가가 인식한 특정한 이미지를 매개로 작업을 구성하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구상한 행위를 바탕으로 그것에서 감각한 촉각적 경험을 캔버스에 옮겨온다. 이를 위해 물감을 직접 신체에 묻히며 물감의 물성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회화가 무엇을, 어디까지 시각화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와 마주 보고 배치된 박정혜의 작업도 위와 유사한 물음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박정혜는 자신이 감각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각 체계를 구축해 이를 캔버스 위에 풀어낸다. 이는 표면적으로 파편적인 점, 선, 면으로 구성되어 관객 입장에서 ‘쉽게 읽히는’ 회화는 아니지만 이미지에서 무엇인가를 꼭 읽어내야만 한다는 욕망을 걷어내고 작품을 바라보면, 작가가 세계를 인식하고 이를 캔버스에 풀어내는 방식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안지산, 박정혜가 상대적으로 매체에 대한 고민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작업이라면, 이에 반해 백현진의 회화는 대단히 무심한 것으로 보인다.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는 것도, 나름의 시각체계를 정립하려는 시도도 없이 작가 자신의 즉흥적 감각에 집중해 그려낸다. 덕분에 과연 이 작품들이 어떤 맥락에서 ‘매체연구’라는 주제에 부합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데, 추상과 구상 사이를 맴돌며 작가의 머릿속을 순간순간 스쳐 가는 감정과 개념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어쩌면 카메라와 액정화면이 재현해낼 수 없는 가장 회화적인, 다시 말해 회화의 가장 고유한 영역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짚어볼 만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성록의 <스크롤 다운 저니>는 앞서 살펴본 회화 작가들과 가장 상반된 접근방식으로 동시대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캔버스에 그려진 회화 작업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익숙해진 위성-드론 시점과 디지털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우리의 눈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카메라 렌즈가 역으로 우리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짚는다. 이와 동시에 작품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상하 스크롤 방식을 통해 위성-드론의 시점으로 마치 2D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처럼 질주하는 자동차를 따라간다. 러닝타임 내내 화면 가운데 놓인 자동차는 무한히 뻗어있는 길을 질주하는 것인지, 오히려 자동차는 고정돼 있고 마치 SNS의 타임라인처럼 그 주변 풍경만이 밑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면, 이 전시 전반을 떠돌고 있는 고민인 ‘매체가 우리를 따라오는 것인지 혹은 우리가 따라가는 것인지’에 대해 참여 작가들의 작품과 거기서 드러나는 그들 각자의 관점을 토대로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  


백현진 전시전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