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로딩중입니다.
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감시의 눈


글 이기원 (VOSTOK 편집동인)

*VOSTOK 3호 - 사진과 권력 : 빛과 그림자의 연대기 게재



우리가 하루 동안 마주하는 카메라는 몇 대나 될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스마트폰 앞뒤로 탑재된 카메라와 노트북 화면 상단의 웹캠까지 최소 2~3개의 렌즈와 마주하게 된다. 만약 집을 나서게 된다면? 그 숫자는 급격히 늘어난다. 길을 걸으며 지나치는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최소 1개에서 많게는 3~4개의 블랙박스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산속에 살지 않는 한 최소 하나 이상의 CCTV에 자신의 모습이 기록될 것이다. 여기에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하다못해 편의점만 들르더라도) 어떤 건물에 들어서게 된다면 우리가 마주쳐야 할 CCTV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게다가 길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 역시 최소 1개 이상의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다. 하늘 위 까마득히 높은 곳 어디쯤에는 대략 1,400여 개의 인공위성들이 각자의 카메라를 지구로 향한 채 궤도를 돌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이제 우리가 어떤 카메라에도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지 않고 생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돼버렸다.

각기 다른 형태와 기능을 가진 수많은 카메라들이 생산해내는 이미지들은 필연적으로 지나간 순간만을 기록/저장할 수 있고, 또 그중 상당수는 단 한 번도 열람되지 못하고, 존재했다는 사실만 남기고 사라진다. 물론 이들 중 다시 ‘불러오기’ 되는 이미지들은 어떤 사건을 알리는 보도사진이 되거나 때때로 범죄를 증명하는 증거, 학술적 연구에 필요한 자료로도 활용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어떤 이미지는 스토킹, 몰래카메라, 협박 등 범죄의 도구로 악용되거나 ‘조작된 증거’가 된다. 이처럼 이미지가 대척점에 놓인 두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원인은 사진 이미지가 지닌 필연적인 속성에서 비롯된다. 모든 이미지는 주변을 둘러싼 어떤 맥락이나 상황, 수용자의 배경지식, 사진에 따라붙는 텍스트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일상을 포위하고 있는 카메라들이 기계적으로 생산해내는 이미지들은, 다른 어떤 형식의 이미지보다 그 주변에 따라붙는 데이터에 의존적이다.


노트북 웹캠을 스티커나 테이프로 가려놓는 것은 분명 원치 않는 감시를 막을 수 있는 대책 중 하나이지만, 각자에 대한 더 순도 높은 정보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랜선이나 와이파이, LTE 통신망을 통해 흩뿌려진다. 엄밀히 따져보면 CCTV나 웹캠에 찍힌 나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정보 값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그곳이 어디인지, 언제 찍혔는지와 같은 정보가 이미지와 연결될 때 비로소 이 사진은 어떤 상황과 맥락을 증거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데이터들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자신에 관해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누른 ‘좋아요’나 웹서핑을 하다 검색한 키워드, 그리고 충동적으로 누른 뉴스 기사나 쇼핑몰과 같은 웹사이트 방문기록은 내가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유추해 낼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또한 카페나 식당,술집 등 집 밖 어느 곳에서라도 와이파이에 접속했다면, 그 접속기록은 내가 어디에 갔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나마 앞서 열거한 기록들은 비교적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데이터에 속하기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통제와 관리를 할 수 있는 편이다.하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사진 이미지와 결합해 타임라인에 올려졌을 때, 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된 증거가 된다.

‘무한도전’에서 추격전 형식이 처음 시도된 2008년 무렵만 해도, 출연자들은 제작진에게 ‘힌트’를 얻는 방식이 아니라면 스스로 다른 멤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고작해야 각자의 GPS 송수신기를 통해 서로가 몇 미터 반경에 있다는 사실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말에 방영된 ‘무도 공개수배’ 특집의 경우, 부산 경찰을 상대로 벌어진 추격전에서 부산 경찰은 무한도전 멤버들의 위치를 SNS에 올라온 시민들의 ‘인증샷’을 통해 추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 2008년에 촬영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도 출연자들과 인증샷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사진을 즉각적으로 온라인에 올릴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올렸다 할지라도 이를 제3자가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플랫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2008년과 2016년의 인증샷은 이미지 자체로는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흔한 기념사진일 뿐이지만, 2016년의 인증샷은 태그와 함께 업로드 되면서 기념사진인 동시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지나갔던 장소를 알려주는 증거가 되었다. 이는 비단 TV 프로그램이라는 특수한 환경 안에서만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카페에서 찍은 셀카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해당 카페의 장소태그나 해시태그를 첨부하면, 이 포스팅은 내가 언제 어디에 갔는지 너무나 명확하게 알려주는 증거가 된다. 덕분에 우리는 해시태그 검색을 돌리다 본의 아니게 내가 머물던 카페의 옆자리에 있던 사람의인스타그램계정을 알아낼 수 있고,그프로필을 살펴보면 이 낯선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디에 주로 가고,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까지 의도치않게 알아낼 수 있다.


어떤 이미지에 특정한 정보가 따라붙으면서 만들어지는 증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신이 온라인 공간에서 남긴 흔적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도 존재한다. 내가 웹서핑을 하다 충동적으로 클릭한 티셔츠의 이미지는 어느새 내 타임라인에 슬며시 침투해 자리잡고 수시로 나를 유혹한다. 이는 비단 내가 직접 클릭한 이미지만을 보여주지 않고, 내가 팔로우했던 브랜드 페이지들을 기반으로 ‘내가 좋아할 만한 티셔츠’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결국 여기에도 내가 흩뿌린 데이터가 묻어있다. 이런 맥락에서 타임라인은 단순히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포스팅을 모아둔 게시판에 머물지 않는다.내 타임라인에는 내가 친구를 맺거나 팔로잉하는 이들이 올리는 정보뿐 아니라, 내가 관심 있거나 찾아봤던 것들에 대한 이미지가 광고의 형식으로 함께 노출된다. 이 이미지들은 단순히 어떤 티셔츠의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이전에 클릭했다는 정보가 더해지면서 ‘내가 곧 구매할 상품’이거나 적어도 ‘내가 관심 있는 상품’을 지칭하는 증거가 된다. 이렇게 타임라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할 것인지, 나아가 내가 누구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인지도 유추한다. 어쩌면 이제 나의 타임라인은 나 자신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개인의 스마트폰/PC를 통해 생성되고 흩뿌려지는 정보들은 CCTV나 웹캠과 같은 이미지를 통한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한 개인을 감시할 수 있다. 또한 CCTV의 경우,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기록으로써 사후에 의미를 부여받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증거가 되기 어렵지만, 온라인에서 나와 엮이는 데이터들은 사용자의 취향이나 정치성향과 같이 머릿속까지 살펴볼 수 있다. 심지어는 사용자가 앞으로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도 어렴풋하게나마 예측할 수 있다.

지난 4월 미 국토안보부는 미국 입국을 위한 비자심사 때 신청자의 스마트폰이나 SNS 비밀번호 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국가나 기관이 개인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보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소름끼치는 일이지만, 이는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합리화된다.

비록 내게 직접적 위해가 되지 않거나,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의 타임라인까지 열어주어야 하는 것은 몹시 부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지난 10년간 모두의 안전을 위해 몇백 대의 카메라에 의해 수시로 촬영 당하는 것을 용인해 왔고, 이 카메라들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또 다른 10년 후, 감시의 눈이 우리를 어디까지 들여다보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을까? 




2017. 7. 7. 15:30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