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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현대적 사진가로서 갖는 고민과 시도들


<VOSTOK> 2호 : 뉴-플레이어 리스트 

큐레이션 02

(un) real – skin/data

글_이기원(VOSTOK 편집동인)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빠르게 변화했고, 여전히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측면에서 사진을 매체로 다루는 작가들에게 ‘사진가’라는 정체성은 어떤 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기능하지만, 또 어떤 작가들에게는 특유의 고루한 이미지 덕분에 벗어나고픈 굴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진의 성격과 양상은 계속 변하고 있지만, ‘사진가’라는 호칭에 따라붙는 의미는 여전히 필름 시대에 멈춰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필름 시대의 ‘사진가’에 대해 돌이켜보면, 이는 예술가보다는 공예 장인에 가까워 보인다. 지금처럼 누구나 카메라를 소유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자신이 원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암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프린트를 직접 뽑아낼 수 있는 이들만이 ‘사진가’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들이 다루는 장비가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으로 옮겨왔다 하더라도, 필름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사진가’의 지위는 여전히 카메라와 사진 시스템 내부에서 이들을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는지로 평가받는 기술자로서의 사진가 즉, 오퍼레이터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이들에게서도 사진매체를 탐구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연구의 범위가 ‘사진이 진실을 말하는가?’, ‘사진은 재현인가?’ 와 같이 사진 이미지 바깥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것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이러한 한계는 지금까지의 ‘사진가’에게 기본 탑재된 전제조건인 ‘자신의 눈과 카메라 렌즈(뷰파인더)를 동일시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분명 눈으로 본 것과 카메라를 통해 본 것 사이에는 꽤나 명확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는 마치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보지 못한 것으로 치부된다. 이렇게 (자신이 뷰파인더를 통해 본) 카메라가 포착한 시각을 자신의 시각에 끼워 맞춘 사진은 ‘사진가의 눈’으로 본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사진가의) 카메라로 본 것을 사진으로 옮겨오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종의 과몰입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체계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두가 쉽게 사진을 찍고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사진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사진가’라는 역할이 일상적으로 사진을 찍는 다른 모든 이들과 특별히 구분되지 못한다면, 동시대의 사진가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이런 지점에서 EH(김경태)와 김익현은 사진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눈으로 인식한 대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최종 결과물인 사진 이미지에 동기화하며 현대적 ‘사진가’로서의 역할을 고민한다. 









이상적인 실재(Reality)로서의 이미지

EH가 그동안 선보여온 작업들은 얼핏 보면 그저 특정한 사물이나 건축물 일부를 건축사진의 문법에 따라 기록한 자료사진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이런 측면에서 그를 전통적 사진가의 맥락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그의 사진을 바라보면, 어딘가 어색하고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은 돌멩이를 찍은 ‘On The Rocks’, 책과 너트를 찍은 ‘IMG’ 시리즈의 사진들은 마치 사진 속 피사체를 눈 앞에 가져다 놓고 보는 것처럼 시선이 향하는 모든 지점마다 초점이 쨍하게 맞아 있고, 각 부분의 디테일 역시 명확하게 살아있다. 또한 건축물의 특정 부분을 촬영한 ‘Cathédrale de Lausanne’이나 ‘Angles’의 경우에도 사진 속 공간은 마치 3차원 건축 도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그러나 여기서의 기이함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IMG’ 시리즈의 경우, 사진 속 사물이 실제 사이즈보다 훨씬 크다는 것에서 기이함의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그의 작업이 사진적 리얼리티를 뛰어넘은 현실성을 보여준다는 점이 훨씬 크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 그의 사진은 ‘사물 사진’을 보는 게 아니라 사물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전해준다.

사물을 찍은 작업에서 그는 포토 스태킹(Photo Stacking) 기술을 통해 평평한 면으로 존재하는 카메라의 피사계 심도를 피사체의 표면을 따라 감싸듯 부분 촬영하고, 이렇게 촬영한 수백 장의 이미지를 이어붙인다. 최종 이미지는 피사체의 각 부분을 따로 촬영하고, 초점이 맞은 부분만을 모아 정교하게 이어붙여 만들어진, 2차원으로 보는 3D 폴리곤에 가깝다. 이에 대해 작가는 “IMG 시리즈에서의 사진은 인간의 눈을 뛰어넘은 디지털 환경의 모사가 아니라, 맨눈으로 실제 사물을 살펴 2차원에 그려내는 경험을 다른 스케일에서 포착한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시도는 책으로 발간된 『On The Rocks』(유어마인드, 2013)에서 먼저 선보였는데, 작가가 이 책을 자신의 사진들을 묶어낸 ‘사진집’이기 보다는 돌멩이 자체를 보여주는 카탈로그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맥락을 함께 한다. 그리고 이런 지점에서 EH를 사진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현대미술작가라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사진가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공유하지만 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나가려는 ‘현대적 사진가’로 읽어낼 수 있다. 이에 대해 건축가 정현(aka 판상형)은 “이 작업은 대상을 놓고 그대로 담는 전통사진가의 자세를 고수하면서도, 또한 알고리즘과 같은 불가해한 기술에 의존적”이라고 이야기한다. 『On The Rocks』 이후 발표한 『Cathédrale de Lausanne 1505–2022』(미디어버스, 2014) 역시 스위스 로잔 대성당의 특정 부분들을 촬영한 이미지를 건물의 모서리와 명암에 따라 배치하여 마치 건축 도면을 살펴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이어서 최근 출간한 『Angles』(프레스룸, 2016)는 얼핏 건물 모서리를 찍은 이미지들이 물리적 물체로서의 책의 표피에 덧씌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역시 건물의 모서리와 벽 이미지가 책 지면과 접합부분을 통해 2차원의 이미지 묶음으로서의 책이 아닌, 3차원 오브제로 작동하면서 카메라의 시점과 별개로 자신이 인식한 공간을 펼쳐내면서 새로운 시각성을 실험했다. 이처럼 EH가 대상을 사진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의 원본 또는 기준점은 단시점의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이리저리 살펴본 경험, 즉 이상적인 실재에 가깝다.    



데이터 혹은 스킨으로서의 이미지 

앞서 다룬 것처럼, EH와 김익현 두 작가는 카메라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인식한 이미지를 결과물에서 재현한다. 하지만 김익현은 EH와는 다른 기준점에서 재현을 시도한다. EH의 기준점이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직접 살펴본 경험이라면, 김익현의 기준점은 데이터로 존재하는 사진 이미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가 지난해 발표한 두 작업 ‘LINK PATH LAYER’와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는 이미지에 찍혀 있는 피사체나 그 촬영방식에서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 놓인 작업으로 보이지만, 전시를 통해 시각화하는 방식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금광 동굴을 찍은 ‘LINK PATH LAYER’의 경우, 촬영 과정에서 작가는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 금광의 어둠을 있는 그대로 포착했지만-사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사진가들이 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최종 결과물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은 금광의 어둠 섞인 풍경을 전시장에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바라본 모니터 화면 속 이미지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동굴의 깊이는 액정화면 위에서 하나의 레이어로 완전히 납작해졌고, 칠흑 같은 동굴의 어둠은 LED 발광 소자가 되어 검은빛을 발산한다. 이렇게 하나의 데이터로 변환된 이미지는 흑백이 반전되거나 가로세로가 뒤바뀌어 전시장 벽면에 납작하게 달라붙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그가 모니터 앞에서 목격한 장면을 온전히 전시장에 구현하진 못하지만 이는 충분히 유의미한 시도로 해석된다.

김익현이 <미디어시티 서울 2016 -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서울시립미술관, 2016)에 발표한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는 구글 스트릿뷰를 생산하는 알고리즘에서의 오류(정확하게는 이를 작동시키는 사용자의 오류)를 활용한다. 구글의 알고리즘을 통해 서울 도심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며 의도적으로 오류를 발생시킨 이미지들은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려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포토샵에서 다시 틸팅(Tilting)하여 ‘LINK PATH LAYER’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장에 납작하게 부착한다. 이는 오류를 바로잡거나 왜곡을 가한 것이기보다는 또 다른 재현의 과정에 가깝다. 작가가 재현하려는 대상은 촬영 과정에서 자신의 눈으로 본 도심의 풍경도, 스마트폰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본 장면도 아닌, 오로지 알고리즘과 연결된 액정화면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스킨으로서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익현에게 ‘사진’은 인화지에 흩뿌려진 잉크 방울이나 약품에 의해 씻겨 내려가고 남은 은염이 아니라 액정화면을 지지체 삼아 일시적으로 구현된 (데이터 또는 스킨으로서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현대적 사진가로서의 매체탐구

두 작가는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어떤 대상을 사진으로 충실히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전통적 의미의 사진가들이 가졌던 태도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하지만 각자의 이미지와 지지체(인화지, 책)를 분리해 바라보고, 자신의 눈과 카메라 렌즈 사이의 동기화를 끊어버리면서 재현의 기준점을 다른 시각적 경험으로 옮겨간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사진 작업을 통한 매체연구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갖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두 작가 모두 성장 과정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리고 스마트폰 이후의 이미지 환경을 두루 경험한 세대에 속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이들은 각자가 경험한 변화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시각성을 보완하고 업데이트하며 자신만의 기준점을 찾아내며 현대적 사진가로서 활동을 이어간다. 덕분에 우리는 두 작가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작업량과 완성도를 높여가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새로이 변화할 환경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며 자신의 연구/작업을 변화시킬지에 대해 기대와 관심을 모아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이미지 환경 속에서 특정한 기준점을 고수하지 않고, 변화에 맞춰 각자의 시각과 방향성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동시대 사진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일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 : EH + 김익현 

앞선 글에서 다룬 바와 같이 EH와 김익현은 ‘현대적 사진가’의 맥락에서 어떤 지점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대상을 접근하고 시각화하는 방식이나 재현의 기준점 역시 서로 다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어떤 중간 지점에서는 교차하는 두 작가에게 몇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졌다.



작업과정에서 액정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이미지와 그 최종 결과물인 물리적인 작품(프린트)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EH : 모니터뿐만 아니라, 데이터로 구현되는 이미지는 네게 그 자체로 이상적인 실재(reality)다. 여기서 최종결과물이란 이미지가 질료나 공간과 같은 제한된 요소에 따라 변형된 형태라고 본다. 하지만 종종 작품을 구현할 때 앞서 말한 과정과는 반대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최근 출간된 『Angles』의 경우가 그렇다.


김익현 : 필름으로 촬영 후 스캔을 통해 만든 디지털 파일로 작업을 한다. 전시 프린트는 모니터 액정화면에서 봤던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다. 물론 액정과 종이는 물리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같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액정화면에선 내가 원하는 실물 사이즈를 한눈에 볼 수가 없다. (그만한 크기의 액정이 있으면 좋겠지만) 부분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종이 출력물과 다르다. (종이 출력물 역시 한계가 있지만) 마치 중력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처럼 느낀다.


작업을 오프라인으로(전시 또는 책) 내보낼 때 고려하는 사항들은 무엇인가?


EH : 질료와 공간에 대해서 우선 고민한다. 이런 것들은 작품의 외형뿐 아니라 내적인 의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 우선 액정화면으로 확인하던 톤, 질감(인 것처럼 보이는)이 종이에 잉크로 뿌려질 때의 차이를 고려한다. 그리고 액정 너머 중력이 작용하는 공간에 그것이 필요할까 고민한다. 'LINK PATH LAYER'의 경우 지금여기에서의 개인전과 플랫폼-엘에서의 <Push, Pull, Drag> 양쪽 모두 시리즈 전체를 보여주진 못했다. 제한된 조건 안에서 한쪽은 아주 납작한 사진, 텍스트와 아카이브를 보여주고 한쪽은 아주 납작한 사진, 설치를 보여줬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에서 보여준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 작업은 몇 개의 가상적인 소실점을 설정하고 배치했다. 납작한 사진이 그 자체로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두 작가 모두 촬영 과정에서 어떤 수행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맥락과 방식은 서로 다르게 보인다. 각자가 생각하는 (작업과정으로서의) 사진촬영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EH : 촬영행위는 풍부한 작업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단계다. 이를 위한 촬영은 다양한 주제어로 분류 가능한 자유로운 수집일 수도 있고, 조합된 이미지를 위해 계획된 소스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행착오는 라이브러리를 위한 수집과 계획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익현 : 사진촬영의 의미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볼 수 있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난 찍는 행위 자체에 큰 애정이 있지 않다. 실제로 많이 찍지도 않고. 무엇을 찍고 싶을 때는 우선 구글 이미지, 플리커(Flickr), 아카이브 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과거 혹은 동시대 사람들이 그 대상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그 이미지들이 어떤 환경에서 보여지고 있는지, 어떻게 떠돌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미지들로 둘러 쌓인 지금 내가 보고 기록한 사진이 필요할지, 혹은 아카이브가 필요할지 그렇게 선택한 이미지를 어디에 침투시킬지를 고려한다. 촬영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 또한 여러 가지다. 바꿀 수 없는 자연환경, 촬영/현상 과정의 기술적 오류, 내가 만들어낸 오류 등이 있다. 내가 생각한 이미지를 얻을 때까지 촬영/재촬영을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 때가 있지만 상상하고 생각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즐겁다. 


두 작가 모두 사진 이미지를 픽셀로 구성된 스킨으로 인식하고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인식 방식/태도의 출발점(또는 전환점)은 무엇인가?


EH : 내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접했을 당시, 촬영기기 대부분의 촬상면은 화학필름에서 디지털 센서로 변하고 있었다. 이런 극적인 변화의 틈에서 사진 이미지에 대한 나의 태도가 처음부터 일관적일 수는 없었다고 본다. 한편, 특정한 물성으로서의 공간이나 구성을 인식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보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 자체로는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상의 형태나 구조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포착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특정한 내러티브를 담기보다는 내러티브를 담는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작업이 모텔건물의 장식조명을 촬영한 ‘Model Line’(2012–2013)과 거리의 인공조명이 비친 건물의 부분을 기록한 ‘Light Composition’(2012–2013)시리즈다.


김익현 : 사진 이미지는 대상에 반사된 빛을 정착시키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빛이 지지체(필름 혹은 CCD)와 반응해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이를 대상에 반사된 빛으로 만들어진 스킨으로 본다. 촬영한 필름을 스캔하고 포토샵에서 확대해 보면 필름의 입자가 보인다. 꽤 아름답다. 입자를 볼 수 있는 배율을 넘어가면 픽셀이 도드라져 보인다. 이젠 모든 사진 이미지가 픽셀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배율에 따라 사실같은 것이 되기도 하고 스킨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줌인과 줌아웃의 감각을 즐기면서 이러한 방식/태도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현대적' 사진가로서의 실험과 고민이 엿보인다. 그러나 서로 각기 다른 지점에서 ‘전통적 사진가’의 태도나 자세가 존재한다고 본다. 사진을 매체로 작업하게 된 계기나 (매우 상투적인 질문처럼 보이지만) 각자에게 ‘사진’이라는 매체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EH : 시각예술은 모두 정보를 다루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래픽디자인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사진을 직접 촬영하거나 건네 받은 사진들을 배치하고 살피는 일들이 생기는데, 이런 일들이 당시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나에게 피로감보다는 성취감으로 다가오는 일이 많았다. 이를 계기로 사진가로의 전향을 결심하게 됐다. 사진은 촬영 행위와 그 재현에 있어 정보를 다루는 당대의 기술과 기기의 영향이 훨씬 절대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한편, 건축사진이나 제품사진과 같은 특수한 영역에서는, 기록의 역사와 양식, 컨벤션의 유형을 탐구하는 사진가의 태도가 남아있다고 본다. 


김익현 : 뭔가를 하고 싶었을 때 사진이 제일 쉽게 보였다. 매체로써 어떤 한계 혹은 제약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사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할 수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게 사진은 경계를 넘어서 할 수 있/없는 일에 관해 생각하게 하는 탐구의 대상이다.  


디지털 이미지와 관련해서 현재 가장 고민하시는 주제/관심사는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다음 작업에 대한 구상 또는 올해 활동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EH : 그간 촬영해 놓은 디지털 이미지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장기 보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김익현 : 하루에도 수많은 사진을 보기 싫어도 보게 된다. 대부분 그것들은 나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주 착한 이미지이다. 다시 말해 무해한 이미지들인데 그것들이 모이면 꽤 유해한 것 같다. 영원히 jpg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고, 결국엔 흘러가버린다. 서버에는 남아 있겠지만. 이렇듯 수없이 많은 이미지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이미지를 침투시킬지 또는 꺼내 올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미지 차원에서는 아주 ‘납작’하고 ‘무해’한 것들을 찍어 보고 싶다. 그것들을 역으로 침투시킬 수 있을까 생각한다.





EH(김경태)

건축사진가. 크고 작은 사물을 촬영한다. 건축가와 제품 및 그래픽 디자이너와 협업한다. 출간된 사진집으로는 『On The Rocks』(2013, 유어마인드), 『Cathédrale de Lausanne 1505–2022»(2014, 미디어버스), «Angles』(2016, 프레스룸.) 그리고 건축가와 협업한 출판물로  『PBT』(2014, 초타원형), 『BGIMG』(2016, 초타원형) 가 있다.


김익현(Gim Ikhyun)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것들을 조사, 연구하며 선별하고 구조화한다. <세마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서울시립미술관, 2016>, <Push, Pull, Drag>(플랫폼-엘, 2016)등의 그룹전에 참여 했으며, 개인전 <LINK PATH LAYER>(지금여기, 2016)을 열었다. 2014-2016년 공간 '지금여기'를 운영했다.


2017. 5. 23. 16:50  ·  critiqu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