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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또 어찌 이리 격렬한가(KT&G상상마당 갤러리,2015) 전시전경


돌기처럼 튀어나온 토템 혹은 굄돌, 어쩌면 그냥 돌덩이 : 변상환 '낙산돌'


포토닷 2016년 2월호

글 이기원


어떤 돌은 건축가의 눈에 띄어 건축용 자재로 쓰이거나 조각가의 손에 들어가 조각상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선택되지 못한 돌은 그저 ‘그냥 돌’로만 존재한다. 변상환이 창신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작업한 ‘낙산돌’에 등장하는 돌덩이들은 적어도 그것이 처음 등장한 순간에는 주차금지 표지나 굄돌의 용도로만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때 창신동에 채석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돌들이 특별히 그곳에만 존재하는 ‘지역특산물’ 같은 것도 아니고, 박물관의 화석만큼 오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돌도 아니다. 어쩌면 공사를 하다 파헤쳐진 짱돌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그저 얼마간의 시간을 머금고 주택가와 골목길 곳곳마다 늘상 존재해 왔지만, 단지 우리의 시선이 닿지 못했을 뿐이다. 이처럼 변상환은 그의 시야에 슬며시 들어온 이런 돌덩이들을 있는 그대로 발굴해 햇빛을 쬐여주는 ‘낙산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낙산돌 작가노트


(..)낙산성곽 아래 창신동에는 커다란 절벽이 있다. 과거 채석장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절개지인데 이곳의 돌을 떼어다 시청과 총독부, 서울역을 지었다. 후

에 폐허처럼 버려진 이 채석장에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지금의

밀도 높은 동네가 형성된 것이다. 가파른 낙산의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

간 길 한편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다른 한편은 높게 쌓아올린 축대 벽을

끼고서 걷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평지의 축대라면 별 감흥이 없겠지만 절개지의

언덕에 10m 정도 쌓아 올린 축대 위에 집들이 올라앉은 모습은 마치 성곽을 보는

듯하다. 어색할 거 없이 멀지 않은 낙산 능선에는 한양 옛 도성이 그 모습을 간직

하고 있다. 태조 이래 오랜 시간 축성과 증축, 보수가 이루어진 고성의 역사를

연결하며 주택가 골목도 그 모습을 닮아 있다


난데없이 주택 대문 앞에 놓여있는 큼지막한 바윗덩이, 코너 모퉁이 화강석. 맨

홀 뚜껑을 지키고 있는 돌들이 최근 내 작업의 주인공이다. 마치 청량한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 바위산처럼 항상 거기 있지만, 어느 순간 뜬금없는 존재

감을 드러내며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들. 철 지

난 전원의 향수인가, 아니면 영험한 힘을 지닌 돌에 대한 정령신앙인가? 그것

도 아니면 주차금지 표지판을 대신하는 주택 시공 당시 파헤쳐진 짱돌이란 말인

가? 마치 이들은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 단단한 형상을 하고 분명, 여기, 묵직

하게 존재하며 자신이 놓여있는 집과 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

는 것은 아닐까?(..)  ‘낙산돌’ 작가노트 중 발췌



그늘 속에 숨어있는 돌에 햇볕 쬐여주기


작업 전반에서 ‘돌’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사진가들이 피사체로써 ‘돌’을 찍는 것과 달리 여러 매체를 통해 ‘돌’을 소재이자 재료로 다루고 있다. 작가에게 ‘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학부 때부터 주로 돌을 다뤘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돌’을 계속 다루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처음엔 돌의 광물적 성격, 즉 단단한 소재로 접근했다. 연약하고 부식이 쉬운 물건들을 시멘트로 만들어 마치 화석처럼 존재시키려 했다. 생명력이 길지 않은 것들에 영속성을 부여한달까? 이런 맥락이 주택가의 돌을 사진으로 찍은 ‘낙산돌’까지 이어지고 있다. 


취미로 암벽등반(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이 작업 전반에서 돌을 다루는 것과 연결되는 요소가 있을까?


3년 전 우연찮게 과거 채석장이었던 창신동으로 이사했고, 2년 전부터 암벽 등반을 취미로 갖게 되었다. 이것들이 모두 개별적 요소이긴 하지만 모두 연결된다는 점에서는 결국 그냥 ‘돌이 좋아서’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하겠다. (웃음) 작건 크건, 돌이 갖는 단단함과 묵직함에 끌린다. 클라이밍 역시 ‘돌을 쫀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조각이라 느낀다. 흔히 조각을 ‘촉감의 예술’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조각에서 재료를 잘 만져서 쪼는 것과, 암벽등반할 때 잘 만지고 잡아서 오르는 것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클라이밍을 시작한 후로 작업을 할 때 돌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이 확장됐다고 생각한다.  


이전 조소 작업에서의 돌과 ‘낙산돌’ 시리즈에서 사진에 담긴 ‘돌’의 차이는 무엇인가?


‘낙산돌’은 이런 돌들이 왜 주택가에 생뚱맞게 놓여있는지, 누군가 의도한 것은 확실한데 꽤 오랜 시간 방치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의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이전 작업이 시멘트를 재료로 돌과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사물에 돌의 특성을 부여한 것이라면, 사진작업에 등장하는 돌은 그 자체로 ‘돌’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존재하는 돌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 봤다. 무채색의 거리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러한 돌들이 일종의 화석처럼 가까운 과거의 한 부분을 기억하는 사물이라 생각했다. 사실 처음엔 막연하게 작업의 소재로 활용해 봐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이후 형식적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했고,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작업 초기에는 야간촬영을 하거나, 레이저 포인터로 빛을 주기도 했다. 한편으론 캐스팅을 하여 입체의 형태로 만들기도 했다. 입체 작업은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또 어찌 이리 격렬한가>(KT&G 상상마당 갤러리, 2015)에서 처음 선보인 적 있었고,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지금여기, 2015)에 전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돌이 있었던 장소를 캐스팅한다는 생각으로 지면에 맞닿아 있는 부분만을 캐스팅하여 입체로 만들고, 제목으로 그 돌이 있었던 장소를 명시하는 방식이었다.

 

돌에 거울을 이용해 자연광을 비춰 촬영했는데, 연극 무대에서의 스포트라이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자연광을 이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낙산돌’ 시리즈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돌에 어떠한 인위적인 개입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가장 자연스런 방식으로  ‘여기에 이것이 있다’고 지목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공조명을 쓰지 않고,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러기 위해 생각한 방법이 둥근 거울을 이용해 빛을 반사시키는 것이었다. 작업의 소재가 되는 돌들의 상당수는 주로 주택가나 골목길 가장자리의 응달에 있기 때문에 하루 중 빛을 받는 시간이 거의 없다. 이처럼 언제나 그늘 속에 숨어있는 돌들에게 ‘빛을 쬐여 주자’, 다시 말해 숨어있는 돌을 조명해 보자는 생각으로 거울을 이용했다. 


초기에는 특별히 지역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작업을 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창신동 일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생겨난 것 같다. 어떤 계기로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낙산돌’ 시리즈 초기는 작업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는 실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엔 서울 곳곳에 있는 돌들을 찾아다녔는데,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뤄야 하는지 스스로도 막막했다. 특히 ‘왜 그렇게 돌을 찍어대느냐?’ 또는 ‘왜 서울에 있는 돌인가?’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 올해 초 <지금여기,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전에 참여하면서 나름대로 기준을 잡았다. 이는 낙산을 비롯한 창신동 일대가 과거 채석장이었다는 측면에서 작업의 맥락과도 연결될 수 있었다. 특히 채석장의 흔적이 내겐 거대한 음각의 형태로 보였다. 그래서 작품에 등장하는 돌들이 그 음각 안에서 파내지 못하고 남은 양각의 돌기처럼 느껴졌다. 이런 맥락에서 이곳의 돌들이 다른 지역의 돌보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 작업영역을 창신동 일대로 좁혔다. 현재까지 50~60%정도 작업이 완료됐다고 판단하는데, 그 과정상 겨울에는 촬영이 어려워 봄이 오면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작업 지역을 창신동 일대로 한정지은 것은 그곳의 지역성, 역사성까지 작업에 포함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는가? 사진가들은 이런 소재를 아카이브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의 입장은 이와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창신동으로 이사오면서 특유의 풍경과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약기간인 3년 동안 작업 하나는 만들고 나가자는 결심을 했다. 한편으로는 이전작업이 지역, 역사적 맥락이 거의 없는 형식이었기에 장소성을 다루는 작업을 시도해 보고픈 마음도 있다.  ‘낙산돌’ 시리즈가 지금까지 내 작업에서 장소성, 역사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인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다큐멘터리나 아카이브 작업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오는 2월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업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전시공간이 사진을 걸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마침 조각 작업을 준비할 작업실도 생겨 전부 조각 작품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런 시도는 처음이라 고민이 많다. 기본적으로는 <굿-즈>(2015, 세종문화회관)에서 판매한 ‘초록 돌’을 좀더 구체화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낙산돌’ 시리즈를 올해 봄이나 늦어도 가을까지는 마무리해 사진 작업으로 개인전을 한 번 더 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변상환 Byun Sang-Hwan

도시에서 생활하며 자신과 관계맺은 대상들을 지목하고 발굴, 변형하는 과정을 통해 유머러스한 고고학적 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 도상이나 오래된 물건들, 익숙한 사물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돌덩이까지 동시대 공존하는 여러 대상을 관찰하고 단단한 형태를 가진 역사적 기록으로 만든다. 사물이 차지하는 공간과 장소를 드러내면서 존재의 확실성을 찾는 변상환의 작업은 자신의 삶의 조건을 확인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창신7길 23-3


창신6길


지봉로 13가길


지봉로 13가길


한남대로 27길, 2015, 실리콘, 36x60x6cm


타인의 선택(갤러리 이즈, 2011) 전시전경


무제 2011 붕어빵, 시멘트 11.5x 1.5x 13cm


무제, 2011, 폐콘크리트 속 조약돌 발굴, 25x14x16cm


2016. 9. 26. 16:44  ·  interview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