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로딩중입니다.
iggy_one 이기원이 보고, 쓴 것들을 분류해 둡니다.

<변두리 사진 보고서> 제11호

*변두리 사진 보고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진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해 다루는 연재물입니다.

비용과 열정 모두 부담하지만 정작 주인이 될 순 없는 전시
자체동력은 잃고 관성만 남은 졸업전시 (1)


글 이기원
포토닷 2015년 12월호

일반적으로 예술 전공 학생들에겐 학부 졸업요건으로 자신의 작업을 만들어 전시하는 이른바 ‘졸업전시’가 부여된다. 이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결산하는 관문처럼 자리한다. 하지만 예술전공의 특성을 고려하면, 학생들에게 졸업전시는 ‘결산’의 의미보다 작가로서의 첫발을 떼며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선보이는 기회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요즘의 사진학과 졸업전시는 그 면면을 살펴보면 그 목적이 모두 흐릿하다. 일반적으로 졸업전시가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50명까지 참여하는 ‘아트페어’식 단체전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그 어떤 느슨한 기획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매년 해왔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꽤나 치명적이다. 또한 전시 내적으로도 참여작가들이 전시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지도교수에게 떠밀려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내보이지 못하거나 쉽게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교수의 취향이나 스타일에 자신의 작업을 끼워 맞추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로 상당수 졸업전시는 자체적인 동력을 내지 못하고 그동안의 관성만 남아 힘겹게 굴러가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처럼 전시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전시장엔 참여작가들의 지인과 그들이 놓고 간 이런저런 선물만이 경쟁적으로 널려 정작 작품은 이에 묻혀버린 살풍경만 남는다. 결국 요즘의 졸업전시는 당사자들의 지인 이외에는 사실상 아무도 오지 않는, ‘그들만의 초라한 잔치’로 전락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졸업전시’라는 시스템 자체가 변화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관만 할 수도 없다. 

먼저 현재의 졸업전시 시스템이 갖는 핵심적인 문제는 비용과 심사의 문제로 축약된다. 어느 순간부터 ‘졸업작품 심사’는 심사위원이 심사할 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그 가능성을 기준으로 작가에게 보탬을 주는 자리이기보다는 학생들이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작업을 허락 또는 결재를 받는 ‘절차’가 돼버렸다. 이런 구조에서 학생들은 자신을 위한 작업이 아닌, ‘졸업을 위한 작업’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졸업전시에 학교와 교수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데다가, 이에 대한 지원 역시 거의 없어 결국 학생들은 이 ‘초라한 잔치’를 위해 적게는 30~50만 원에서 많게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예견된 초라함을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비용

본지에서는 지난 11월 2일부터 20일까지 19일간 최근 6년 이내 사진학과 졸업생과 2016년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107명이 설문에 참여했으며 이중 졸업예정자(재학생)는 50명, 졸업 후 2년 이내(2014~2015년) 졸업생 26명, 졸업 후 2년 이상(2013년 이전 졸업) 경과자는 28명으로 조사됐다. 또한 응답자의 세부전공으로는 순수사진 41명, 상업·광고사진 27명, 미디어·영상 23명, 다큐멘터리·저널리즘 13명 순으로 나타났다. 그중 졸업전시를 준비하며 들었던 전체 비용(표1)을 구간을 정해 객관식 질문으로 응답을 받았다. 그 결과 1인당 졸업전시 비용으로는 평균 약 154만 원, 졸업전시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 회비(표2)는 평균 약 4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중 평균 이상으로 졸전비를 쓴 200~300만 원, 300만 원 이상 응답자 28명의 세부전공 분포(순수 13명, 상업·광고 10명, 미디어·영상 2명, 다큐·저널리즘 1명)를 살펴보면 전체 모집단 중 졸업전시 비용 평균이상 지출자의 비율은 상업·광고 37%, 순수 31%, 미디어·영상 9%, 다큐·저널리즘 7%로 상대적으로 상업·광고와 순수사진 전공자의 졸업전시 비용이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지출 범위를 좀 더 세분화하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졸업전시비용으로 300만 원 이상을 지출한 응답자는 다큐·저널리즘, 미디어·영상 파트에서는 모두 0명이었지만, 순수사진, 상업·광고파트에서는 각각 7명이었다. 이는 전체 순수파트 전공자의 17%, 상업·광고 전공자의 26%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서 사진학과 2013년도 졸업생 A씨는 “상업·광고 파트 전공자의 경우, 다른 파트에 비해 공간 및 모델 대여료로 지출되는 비용이 크다. 또한 순수사진의 경우 (담당 교수에 따라 다르지만) 3차에 걸친 졸업전시 심사 과정에서 20~30장의 포트폴리오를 최종 작품과 동일한 품질로 프린트해 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심사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 역시 상당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부담해야할 비용은 작품 제작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 소재 사진과의 경우, 이들은 관행처럼 소재지와 서울에서 2번에 걸쳐 졸업전시를 진행한다. 서울전시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교통비, 숙박비, 운송비 역시 자연스레  학생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과연 지역 사진과의 서울전시는 얼마나 실효성을 갖고 있을까? 서두에서 다뤘듯, 졸업전시는 과거에 비해 미술·사진 관계자들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내부적으로도 취업난과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으면서 이를 꼭 챙겨봐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졸업전시를 굳이 2회에 걸쳐 열어야만 하는 당위성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다. 더욱이 온라인을 통해서도 효과적인 홍보가 가능한 요즘의 정보환경을 고려하면, 서울전시를 위해 소모되는 비용을 도록제작비나 홍보비용에 보태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졸전비는 졸전비대로

이어서 졸준위 회비에 대한 설문내용을 살펴보면, ‘졸전회비 액수 책정이 타당한가?’라는 설문(표3)에서 ‘매우 그렇다’와 ‘조금 그렇다’를 택한 비율은 38%, ‘조금 아니다’와 ‘매우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은 26%로 나타났다. 주목할만한 사항은 ‘잘 모르겠다’로 응답한 비율이 34%로 꽤 높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복수의 응답자들이 회비사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못해 판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졸전회비 책정이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한 조사자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항인 ‘졸전회비가 타당하지 않다고 보는 원인은 무엇입니까?’(표4, 복수선택 가능)에서는 교수 선물·사례비(24%), 공간 대관료(24%), 심사비(19%), 뒤풀이 비용(18%), 도록제작비(13%) 순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사진학과 재학생 B씨는 교수 선물 및 사례비와 관련해 “교수님에게 드리는 사례나 선물이 당연시되는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졸업생 C씨는 “전시에서는 인원수에 비해 좁은 공간으로 충분한 양의 작품을 걸지 못했고, 도록 수량 부족으로 드리고 싶었던 분들을 다 드리지 못해 따로 소책자를 제작해 선물했다.”며 내실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 만들기에만 급급한 졸업전시의 현실을 꼬집었다. 이외에도 응답자들이 문항 외 자유 응답 설문을 통해 지적한 사항으로는 “전시장 대관료 등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금액도 있는데, 이를 졸준위가 아닌 학과에서 관리하면서 학생 입장에서는 눈먼 돈이 돼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타 전공에 비해 여러 명목으로 등록금이 더 높게 책정돼 있는데도 졸업에 관련된 학과 지원금이 거의 없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등 졸업전시에 대한 학교 측 지원 미비(부재) 문제가 다수를 차지했다. 본지에서 입수한 A대학 사진학과의 2010학년도 졸업전시 회계자료에 따르면 51명의 학생이 참여한 졸업전시에서 총 지출액은 약 2,170만 원으로 그중 전시관련 비용(약 781만 원, 전시당일 뒤풀이 비용 포함, 공간 대관료는 학과로부터 500만 원 지원받아 제외)이 36%의 비율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으며 이어서 도록 제작비(약 723만 원)가 33%, 사은회 및 교수 선물(약 646만 원)이 30%, 심사비 및 기타비용(약 18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하나의 사례만으로 전체 사진학과 졸업전시의 실상을 이야기할 순 없다. 그러나 A대학의 경우, 학과에서 공간 대관료 500만원을 지원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교수 선물 및 사은회 비용이 전시나 도록 비용 못지않게 쓰인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선물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A대학 학생들이 1인당 부담한 졸전비용(약 42만원) 중 사은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만원에 육박할 만큼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물론 사은회는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행사이지만, 이미 전시 오픈 당일 뒤풀이가 있었음에도, 별도의 사은회가 꼭 필요한 행사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처럼 졸업전시와 관련된 비용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은 졸업전시와 관련된 다른 문제에 비하면 그나마 개선 가능성이 존재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누구도 자신의 졸업을 걸고 문제제기에 나서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한계 역시 분명하다.  

* 다음 호(2016년 2월호)에서 이어집니다.


2016. 9. 26. 16:41  ·  critique    · · ·